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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실적회복, 인수합병…한국 조선업의 앞날은?

기술력 개발·노동유연화로 인한 인건비 절감 덕분…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2019.02.03(Sun) 06:00:31

[비즈한국] 최근 조선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2018년 한 해만 놓고 보면 수출이 49.6%나 줄어들었지만, 12월에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92.4% 늘어났다. 이것만이 아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는 가격이 비싸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꼽히는 가스선(LNG 운반선) 수주를 싹쓸이하고 있다. 2018년 세계에서 발주된 143억 달러 규모 가스선 가운데 131억 달러를 수주해, 시장 점유율이 91.3%에 달한다.*  

 

조선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2018년 세계에서 발주된 143억 달러 규모 가스선 가운데 한국 조선 3사가 90% 이상을 수주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의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사진=현대중공업 제공

 

어떻게 한국 조선이 회복되었을까? 

 

최근에 읽은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한국 조선업계가 당면한 현실과 고난 극복의 원동력에 대해 많은 힌트를 제시한다. 

 

1970년대 유럽이 쥐고 있던 조선산업의 패권을 아시아로 가져온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우선 용접을 재발견했다. 리벳이라는 나사를 통해 강판을 조이는 방식이 아닌, 용접을 통해 강판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대형 도크장에서 크레인을 활용한 탑재 방식을 활용해 공정 속도와 효율성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도요타 자동차의 생산혁신 기법으로 유명한 적기 납기(JIT) 미세 작업 관리를 도입해 이익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책 45쪽

 

한국 조선 수출증가율 추이. 자료=관세청

 

이렇듯 강력한 기술 우위를 점한 일본의 조선업도 한국 조선업의 진군을 막지 못했다. 어떻게 한국 조선업계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유할 수 있었을까? 

 

임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선산업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저임금 노동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기술면에서도 세계를 제패했다. 일본의 블록 탑재 공법을 향상해 블록의 대형화와 모듈화를 이끌었다. 

 

또한 옥외의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던 작업들 중 선행 작업들을 실내 공장으로 옮기는 한편, 자동화와 기계화를 달성했다. 야드 공간을 많이 잡아 먹는 블록들을 외부 블록 공장에서 조립을 마쳐 운송해 최종 공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책 45쪽

 

한국 조선업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강화시켜왔던 셈이다. 그런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의 저자, 양승훈 교수는 한국 조선업이 2016~2017년의 극심한 불황에서 살아남아 좋은 날의 초입에 선 원인을 ‘기술력’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조선업의) 노동조합은 생산직의 ‘직영화’를 추진했다. 외부에서 조달하는 자재 제작 등을 제외하면, 야드에서 진행하는 모든 공정은 정규직 직원이 하는 게 원칙이었다. 

 

(정규직 위주의 1차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위주의 2차 노동시장으로 구분된) 이중 노동시장이 다시금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중략) 1990년 전체 사내 하청 인원은 73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인원의 20% 수준이다. (중략) 

 

1992년부터 1995년 사이, 나아가 특히 1999년부터 사내하청은 급격히 증가했다. LNG선 호황이자 일본의 조선산업을 앞서기 시작한 시기에 한국의 조선산업은 대량 수주로 인한 물량 처리라는 과제에 당면하게 되었는데, 이때 택한 것이 바로 사내하청화였다. 여기에는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약화하고 정규직 채용에 따른 비용 증가를 억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책 95~96쪽

 

양승훈 교수의 지적은 한국 사회, 특히 노동시장의 어두운 부분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이제 조금 더 나아가 2014년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자. 

 

2014~2015년, 가장 많은 선박과 해양플랜트 건조를 진행할 무렵에는 조선 3사의 경우 6000~7000명 직영 정규직 근로자와 3만~4만 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각 조선소에서 일했다. 80%에 가까운 생산 공정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맡아온 것이다. (중략) 선박은 직영이 60%를, 해양플랜트는 외주가 90%를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책 97쪽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다 보니, 2016년부터 본격화된 가혹한 불황에 어떤 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13~2014년에는 STX가 위기에 빠졌으며 (중략) 중소조선소도 도산 위기를 겪게 되었다. 그때 실직한 노동자들은 그때그때 ‘품’을 파는 물량팀이나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로 세워진 작은 사내하청업체에서 불안한 고용 상태와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 했다. 

 

2016~2017년에 걸쳐 단행된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직영 생산직 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용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사내하청업체들은 줄도산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동남권에서 3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실직으로 이어졌다. 그 피해는 오롯이 하청 노동자들이 떠안게 되었다. -책 100~101쪽

 

201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한국 조선업황 개선은 (외부 여건을 배제하고 본다면) 다음의 두 가지 요인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불황 속에서도 기술력을 유지하고 또 키워나간 것. 다른 하나는 이중 노동시장 구조에 힘입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 손쉬운 구조조정과 비용절감.

 

끝으로 일본의 조선업계에 밀려 도태되었던 영국 글래스고 사례를 인용해본다. 

 

글래스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선산업의 마지막 순간은 1970년대 초반 클라이드 강변 조선단지 노동자들이 벌인 ‘현장 점거’ 투쟁이다. 당시는 정부 지원이 끊기고 ‘자구안’을 통해 6000명의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노동자들은 야드는 지키겠다고 일어섰다. 노동조합은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때까지 일터를 지키겠다면서 출근했다. 노동자들의 자주관리가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의 이런 투쟁에 비틀스의 존 레논과 유명 코미디언 빌리 코놀리 등 명사들의 지지 선언과 후원이 줄을 이었다. (중략) 그 뒤 글래스고 고반 조선소는 어떻게 되었을까?

 

1960년대까지 세계를 제패했던 고반 조선소 도크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사택과 공동주택이었을 주변 동네는 전혀 정비되지 않은 채 낙서로 가득 차 있었다. 세계 1위 조선 산업 국가의 조선소들은 버려진 채 희미한 흔적만을 남고 있었다. -책 13쪽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31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에 관한 조건부 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사진=이종현 기자

 

세상에 정답은 없다. 

 

영국처럼 정규직 위주의 고용을 유지하다 파국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유연한’ 인력구조를 만드는 게 위기에 강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등 위협적인 경쟁자들이 출현하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고용 구조로 기술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이런 식의 분단 노동시장 구조가 지속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조선사의 인수합병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경쟁 구도의 약화’ 측면에서는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나, 현재와 같은 고용구조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경제(2019.1.31.), “지난해 세계 LNG선 90% '조선 빅3'가 수주”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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