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커피 한 잔 기부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100여 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의 슬로건이다. 자신의 커피값을 결제하며 불우이웃을 위한 커피값도 미리 내는 기부활동이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타인이 낸 성금으로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은 해외에선 사회 캠페인의 일환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국내에선 2010년대 일부 지역 가게와 프랜차이즈 기업이 동참하며 관심을 모았다. 참여 가게만 500여 곳에 달했다. 지금은 어떨까.
전국에서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이 활발히 이뤄진다고 알려진 곳은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시청앞커피’다. 고객은 자신이 주문한 음료·디저트를 계산대에서 결제하며 불특정 타인이 마실 수 있는 커피값도 함께 기부하곤 한다. 기부만 하는 고객도 있다.
커피 한 잔 값은 2000원이지만, 기부 금액 단위에 제한을 두진 않는다. 카페 운영자는 커피 한 잔 가격의 금액이 모금되면 커피 쿠폰 한 장을 가게 밖 쿠폰함에 넣어, 누구나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한다. 커피를 기부받는 이들은 환경미화원, 노인, 학생들이 대다수다.
시청앞커피는 2014년 개업과 동시에 이 운동을 진행했다. 카페 내부엔 월별 기부자·기부액, 혜택자·사용액을 부착해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시청앞커피 관계자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 운동을 시작했다”며 “‘자금의 여유’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활발히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청앞커피는 사회적 기업인 ‘유한회사 우리함께할세상’이 장애인 일자리 창출 등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 설립한 곳으로 일반 카페와 성격이 다르다. 매출 일부를 커피 기부액으로 할애한다. 지난해 1년간 약 107만 원을 모금했지만, 이보다 많은 130만여 원치의 무료 커피를 제공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1년 중 열 달은 우리가 직접 기부금을 내며 커피를 무료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게에선 이 운동을 중단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경남 산청군이다. 2013년 가게들은 이웃 간 나눔 문화와 상권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돈을 미리 낸다’는 의미 등을 담아 ‘미리내 운동’이란 이름으로 전개했다.
이 운동을 이끈 김준호 동서울대 전기정보제어학과 교수는 “과거 기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참여율이 저조했다”며 “당시 알게 된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을 지역에 도입, 기부문화부터 정착시켜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모금·소비 방식은 앞서의 시청앞커피와 동일하다. 각 가게 사장들은 미리내 알림판에 사용가능한 쿠폰 수량을 기재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초기 10곳에 불과했던 미리내 운동 참여 가게는 전국 400~500곳으로 늘었다. 업종도 카페·음식점·세탁소 등 다양했다. 술집 등 유흥업소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동참했다.
현재 참여도나 후원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미리내 운동 참여 가게들 중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경기권에 위치한 20개 가게를 확인한 결과, 운동을 지속하는 곳은 단 한 곳뿐이다. 그조차 한 달 기부가 평균 10건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운동이기에 후원금 규모 등을 정확히 집계하진 못한다”고 말했다.
미리내 운동에 동참했던 한 카페 사장은 “카페를 정리하기 전까지 지속하긴 했지만 참여도는 저조했다. 1년에 5만 원가량 모금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카페 사장은 “기부문화를 알리는 차원으로 진행하고 있다. 후원금으로 누군가를 돕고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거 일부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들도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로티보이’와 ‘커피랑도서관’이 2013년, 2017년에 각각 동참했다. 현재는 모두 중단한 상태다. 커피랑도서관 관계자는 “당시 직영점 중 석촌호수점에서만 실시했는데 후원규모가 많지 않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매장음악 서비스업체 ‘샵캐스트’는 2014년 이 운동에 동참한 가게들에게 매장음악을 무료로 제공하며 운동 확산에 힘썼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한 요인으로 미성숙한 국내 기부문화를 꼽았다. 2016년부터 3년간 광주시 양림동에서 문화축제 ‘1930양림쌀롱’에서 운동을 전개했던 문화기획·컨설팅업체 ‘쥬스컴퍼니’ 관계자는 “기부 자체가 익숙지 않다 보니 기부하는 것은 물론 받는 것도 부담으로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았다”며 “자연스럽게 모금, 소비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 회장)는 “소비자들의 심리상 자신의 행위로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나길 바란다. 참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회적 운동이 경영성과로 이어지지 않아 기업·가게들이 중단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신호정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장에서 실시되는 사회공헌은 선의로 실시되기보다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이뤄진다. 경제주체 입장에선 비용과 노력을 투입해 매출확대나 마케팅 효과가 적어 보이는 운동을 홍보하고 끌고 갈 이유가 없다”며 “미래 의존적 비즈니스 모델보다 인센티브(수익) 의존적 비즈니스 모델을 선호하는 기업의 경영방식이 이 운동을 사장시켰다. 미성숙한 기부문화는 그 다음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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