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 세계가 ‘화웨이 포비아(공포증)’에 빠졌다. 화웨이가 수출한 통신장비를 통해 중국이 각국의 주요 데이터와 기술을 수집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경향은 지난해 10월 ‘블룸버그’ 보도로 촉발됐다. 블룸버그는 화웨이가 만든 구글 서버 장비에 좁쌀만 한 슈퍼마이크로집이 있다는 사실을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웨이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딸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됐고, 폴란드에서는 화웨이 간부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다.
미국·호주·뉴질랜드 등에 이어 한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도 화웨이 보이콧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불법적인 데이터 수집은 없었다는 화웨이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글로벌 전자산업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화웨이는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된 걸까.
화웨이는 외부 투자를 받지 않기로 유명한 회사다. “상장은 안 되며, 투자업계 인사를 만나지도 말라”는 것이 런정페이 회장의 지침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가 3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의사를 타진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한 일화도 있다.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는 시장도 성장도 없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룰이다. 그럼에도 화웨이는 해외 자금의 투자를 극도로 꺼리고 있다. 화웨이가 감출 것이 많은 기업이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전자업계 관계자는 “경제성장 초기 전자·통신 기업은 정부 발주를 통해 성장하는 한편 국가 안보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게 된다”며 “사실상 화웨이는 공기업이나 다름없으며, 사업과 투자 모두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자금의 투자를 받으면 기업의 자금 현황은 물론 사업 내용, 인적 구성부터 정부와의 관계 등 사업 행태까지 모두 공개해야 한다. 주주에게 당연히 공개되는 정보다.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으며 통신 등 핵심 장비를 만드는 화웨이로서는 외국인 투자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셈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군 출신으로 공산당과 긴밀한 협력을 맺어왔다.
물론 일본의 도시바 역시 국가 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사업 매각 당시 중국을 배제하는 등 이는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화웨이는 전 세계적인 수출 네트워크를 정보 수집의 창구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중국이 글로벌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군사·통신 등 첨단 기술 발달이 필수다. 그러나 경제 개발이 한발 늦었기 때문에 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국이 가진 기술과 정보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 화웨이는 압도적으로 저렴한 서버·통신 장비를 애플·구글 등 글로벌 기업에 공급했고, 중국 공산당은 화웨이의 수출망을 이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국토안보부(DHS)의 한 사이버보안 관료의 말을 인용해 “화웨이의 장비가 어디에 있고 시장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의 문제다. 이는 모두 중국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대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장비를 구입하기 때문에 특별히 검사를 하지는 않는다”며 “각 장비에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개별 칩이 어떤 작동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를 발견해낸 구글이 대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애플의 경우 자사 제품에 들어간 화웨이 부품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천문학적인 소송이 두려워서 그렇게 밝힐 뿐 지금은 해법 마련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화웨이는 수출 시장을 넓히기 위해 적극적인 인재 영입 및 로비 활동도 벌였다. 애플 출신 디자이너를 영입하는가 하면 퀄컴·버라이즌 등 글로벌 기업 임원을 대거 영입했다. 국내에서도 LG유플러스가 화웨이 통신 장비를 쓰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었는데, 화웨이가 LG유플러스 최고위 임원 출신 인사를 고문으로 영입하면서 영업에 물꼬를 튼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화웨이에 집중된 통신 기술이 자국 내로 퍼지며 2014~2015년 샤오미나 오보·비포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가 대거 등장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정부는 이들 기업에 순차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며 스마트폰 국산화를 꾀했고, 현재는 수출 시장을 두드리는 위치로 성장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국가 체제 유지를 위해 기업을 활용하기도 한다. 중국은 빈부 격차와 공산당 간부의 부패가 심해 당에 불만을 가진 바닥 정서가 팽배하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성공한 ‘흙수저’ 기업인을 앞세워 성공의 기회가 열려 있음을 강조한다. 알리바바의 창업자이자 회장을 지낸 마윈(馬雲) 알리바바그룹 이사회 의장이 대표적이다. 마윈은 무명 대학 출신으로 창업에 열정을 갖고 거대한 온라인 유통 기업을 탄생시킨 신화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항저우 저장성 당서기를 지낸 시진핑이 2013년 국가주석에 오른 뒤 항저우계 기업들이 무섭게 성장한 점을 고려하면 마윈 역시 당의 후원을 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 마윈이 떠오르는 사이 라이벌로 불리던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은 내리막길을 그렸다. 최근 마윈이 공산당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분석이 힘을 얻었다.
화웨이 논란으로 중국 기업에 경계심이 커졌고, 중국 기업인들을 불신하는 기류가 퍼지자 중국 당국도 기업 전략을 선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생활가전 등 중국이 저가에 공급 가능한 생활용품 시장으로 영역을 옮겨 먼저 글로벌 시장에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 중국연구소 관계자는 “미국의 강성 대응으로 중국의 전략이 ‘대국굴기(대국이 일어서다)’에서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로 다시 돌아갔다. 내부적으로도 내부 결속이 먼저라는 판단에 전략 수정이 감지되고 있다”며 “생활가전, 일반소비재 등 부가가치가 적지만 중국이 낮은 제조원가로 커버할 수 있는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아래로부터 중국의 인식을 바꿔나가는 방식을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
김서광 저널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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