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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기재부 'EPB 득세·모피아 쇠락' 막전막후

경제기획원 출신, 정부 '성향'과 맞아 요직 차지…노무현 정부 경제 전철 우려도

2019.01.25(Fri) 16:59:36

[비즈한국] 문재인 대통령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2기 경제사령탑으로 임명한 뒤 줄줄이 과거 경제기획원(EPB) 출신들이 고위직에 오르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가 취임한 뒤 기재부에서는 EPB 출신들이 차관보급 6개 자리 중 차관보(방기선)와 재정관리관(이승철), 예산실장(안일환), 기획조정실장(문성유), 네 자리를 차지했다. 나머지 세제실장(김회정)과 국제경제관리관(김병규) 2자리만 모피아(재무부·MOF+마피아)​ 출신에게 돌아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2월부터 2년 10개월 동안 재직해 기재부 역사상 최장수 차관보였던 이찬우 차관보는 보직조차 받지 못하고 퇴임했다. EPB가 전성기를 맡은 것과 달리 모피아는 쇠락의 길에 들어선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 10일 청와대에서 홍남기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EPB는 1961년 기획처를 모태로 재무부 예산국과 부흥부 등이 합쳐져 만들어졌던 경제 부처다. EPB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드는 등 중장기적 경제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이러한 역할을 맡은 덕분인지 EPB 출신들은 국가 발전 종합계획과 예산 편성·집행, 물가 안정 등에서 능력을 발휘해왔다. 이에 반해 모피아는 금융과 세제, 국고를 맡았던 재무부 출신들을 지칭하는 말로, 경제 위기 대응과 경제 안정 등 현실적인 문제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경제 개발 시대에 EPB가 큰 그림을 그리면, 모피아가 이를 집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모피아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할 때는 EPB가 큰 방향을 제시하는 식으로 제동을 걸었고, EPB가 지나치게 거시 경제에 집착해 현실성을 잃을 때 모피아는 구체적 답안지를 내놓는 식으로 견제를 해왔다. 1994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됐지만 두 조직 출신들은 이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관가에서는 “EPB는 하늘을 보고 모피아는 땅을 살핀다” “EPB는 야구, 모피아는 축구”라는 말로 두 조직의 특성을 이야기한다.  

 

EPB가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중용되는 것은 EPB 성향이 정부 성향과 맞기 때문이다. 기획과 예산을 전공으로 하는 덕에 비전 제시에 탁월한 EPB가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중장기적 경제 계획을 마련해 추진하는 데 걸맞다.

 

또 EPB가 개인 개성을 중요시하고 토론을 즐긴다는 점도 정부 성향과 들어맞는다. 노무현 정부 중반부터 권오규 부총리와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등 EPB 출신이 경제 정책을 좌우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6명의 청와대 정책실장 중 변 실장 등 3명이 EPB 출신이었던 반면 모피아는 한 명도 없었다.

 

김동연 전 부총리 역시 대표적인 EPB 라인으로 분류된다. 사진은 김동연 전 부총리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청와대 정책실장은 장하성 전 실장이나 김수현 실장처럼 경제 관료가 아닌 이들이 차지했지만, 부총리는 EPB 출신인 김동연 부총리와 홍 부총리가 연이어 맡았다.

 

특히 홍 부총리가 경제사령탑이 된 뒤 EPB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고, 모피아는 찬밥 신세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 때 터졌던 경제적 상황이 재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EBP 출신들은 경제와 복지 동반성장을 제시한 ‘비전 2030’을 내놓았지만 재원 마련 방안이 빠진 현실성 없는 계획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잡겠다는 목표와 달리 법인세·소득세 인하는 분배 구조를 악화시켰고,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러왔다. 이로 인한 소득 양극화 심화는 정권 교체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EPB 출신들을 앞세워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정책을 가지고 경제 청사진을 마련했지만 양극화 심화라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실업난과 기업 투자 악화는 물론 11년 만의 최악의 소득 양극화가 바로 그것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청사진을 그리는 능력을 지닌 EPB도 필요하지만 국내 위기 속에 세계 경제 둔화, 미국과 중국 무역전쟁 등 대외 위기까지 몰려오는 상황에 위기관리 능력이 좋은 모피아 출신도 고루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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