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난 뒤, 인공지능(AI)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폭발했다.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를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이 필요하다. 이때 병렬연산 특징을 가진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직렬연산에 최적화된 CPU(중앙처리장치)보다 적합하다. 이러한 머신러닝의 효율을 극대화하도록 고안된 반도체가 AI 반도체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와 인텔이 주도하고 구글과 비트코인 전용 칩 생산업체 비트메인도 뛰어든 상태다. 소프트웨어의 정통 강자인 IT 공룡들이 시장을 이끄는 상황이지만 국내 반도체 강자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강세를 보이는 분야는 메모리 산업으로 비메모리인 AI 반도체 분야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AI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나선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있다. 백준호 대표는 지난해 8월 퓨리오사AI를 설립하고 AI 반도체 개발을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도 손든 산업에 직원 20명 남짓 작은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개념이 융합된 분야다. 앞으로 AI(인공지능)를 중심으로 시대가 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백 대표는 미국에서 15년간 생활했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AMD에서 반도체 관련 일을 하다가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에서 일했다. 다리를 다쳐서 6개월간 쉬면서 AI를 공부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 함께 일하던 동료와 대학에서 AI 관련 수업을 진행하던 친구를 설득해 지난해 4월 회사를 설립했다. 20여 명 구성원은 모두 박사급으로 채웠다.
‘비즈한국’은 지난 23일 강남역 근처에 위치한 네이버 D2 스타트업팩토리에서 백 대표를 만났다. 백 대표는 우선 퓨리오사AI의 ‘미션’에 대해 “AI의 연산 작동이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실리콘 장치(반도체)를 만드는 것”이라며 “따라서 반도체라는 하드웨어와 AI라는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다뤄야 하는 작업이라면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겐 더더욱 버겁지 않을까. 백 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백 대표는 “우리 팀에서도 크게 하드웨어를 다루는 팀과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팀으로 나뉜다”며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소프트웨어대로 하드웨어 설계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팀 간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보다는 말랑하고 가벼운 스타트업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AI 반도체 개발의 경쟁력은 ‘마이크로 아키텍처’다. 여기에는 고도의 설계 능력이 필요하다. AI 반도체 안엔 100억~20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가고, 각각의 트랜지스터가 각기 다른 기능을 한다. 각 트랜지스터가 서로 호흡하며 ‘한 몸’으로 움직일 알고리즘 설계도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퓨리오사AI가 하는 작업이 그 알고리즘 설계도를 짜는 일이다.
백 대표는 “반도체 산업은 크게 비메모리와 메모리로 나뉜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 강국은 맞지만, 강세를 보이는 분야는 메모리다. 설계도를 보고 그대로 만드는 능력이 우수한 것”이라며 “건축으로 보면 시공 부분이 뛰어나다. 대기업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설계는 상당한 창의력을 요하는 작업이고 상당한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AI 반도체는 어디에 쓰일까? 백 대표는 “일단 앞으로 모든 것에 쓰일 것”이라면서 “현재는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에 쓰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율주행을 하려면 컴퓨터가 사물을 보고 사물이 무엇인지, 피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람처럼 실시간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때 반도체칩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서 AI 반도체는 컴퓨터의 즉각적 판단 능력이 요구되는 모든 곳에 쓰인다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퓨리오사AI는 네이버, DSC, 산은캐피탈 등에 초기 투자를 받았다. 내년 3월을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 ‘인턴’ 면접 연락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백 대표는 말을 이었다.
“AI 반도체가 앞선 기술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인재를 모으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모두가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 자체가 상당한 챌린지(도전)다. 결국 글로벌 기업과 상대해 캐피털(자본)과 체력 면에서 밀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해보는 거다. 상당한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기술을 완성만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영화 ‘매드맥스’ 극중 인물인 퓨리오사에서 회사 이름을 따왔다는 백 대표는 “퓨리오사는 역경을 겪으면서도 자주적이고 이상적인 인물이다. 아주 멋있다고 생각했다”며 “우리 퓨리오사AI의 도전도 그랬으면 한다”고 전했다.
정부에게 바라는 점이 있느냐고 묻자 백 대표는 “돈이 아니다. 창의적인 기업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스타트업의 기술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대기업이 접촉해 기술을 가져가는 구조다 보니 기술 혁신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스타트업이 성과를 끝까지 꽃피울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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