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영업 기밀은 스타트업의 생명입니다. 자료 제출 의무 규제만 줄여도 우리나라에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기업이 5~10개는 더 나올 겁니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스타트업 규제 개혁’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이 한 말이다. 이날 토론회는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우려를 나타내는 자리였다. 앞으로 부가통신사업자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요청하는 사업 실태조사를 위한 자료 제출 의무를 갖는다.
토론회 핵심은 ‘정부가 기업에게 정보 공개 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과도한 서류 작업이 동반돼 스타트업에 부담이다’는 한 줄로 요약된다. 이날 토론회 주최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였다. 자료 제출은 스타트업에게도 민감할 수 있는 규제지만 사실 이미 규모가 있는 IT 대기업에게 더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인데 왜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나서야 했을까.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2013년 7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주도 아래 47개 민관 기관이 협력해 만들어진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정보 교류를 원활히 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대표적으로 대외 홍보가 생명인 스타트업 대표들과 기자들을 이어주는 ‘프레스데이’를 분기별로 개최한다. 격주로 ‘커피클럽’과 ‘런치클럽’을 열어 스타트업 관계자들 간의 만남의 장을 형성해 인맥 형성과 학습을 돕기도 한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영리활동을 하지 않는 순수 지원 기관으로 업계에선 이미 없어선 안 될 유일무이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실제 주인’은 네이버로 볼 수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수익 모델이 없는 대신 후원을 받아 운영된다. 2013년 발족 당시 5년간 운영비로 100억 원을 후원받았는데, 모든 금액은 네이버의 전신인 NHN주식회사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 밖에 46개 기관의 지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름 뒤에는 항상 ‘by 네이버’가 따라붙는다.
네이버는 100억 원을 내놓고 스타트업얼라이언스를 운영하면서도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는다. 업계에서도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네이버 후원으로 운영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네이버의 이러한 행보는 사회적 책임 활동(CSR)을 할 때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일반 기업의 모습과 상반된다. 사회적 책임 활동은 대중에 자사 이미지를 제고할 기회지만 네이버는 오히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일례로 지난해 11월엔 인터넷기업협회 소속이던 스타트업얼라이언스를 떼어내 법인을 독립시켰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름 뒤에 따라붙던 ‘by 네이버’도 뗀다. 기존 후원 기간이었던 5년이 끝났지만, 네이버는 금액 제한 없이 스타트업얼라이언스를 여전히 후원하고 있다. 네이버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를 자사 소속 기관으로 편입할 수도 있었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겠지만 중론으로 꼽히는 업계의 시각은 하나다.
네이버가 스타트업얼라이언스를 전면에 내세워 업계의 ‘아젠다 세팅’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며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이름을 빌려 네이버가 하기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네이버의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 후원 기간인 5년이 끝난 지난해부터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네이버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내부 인력을 충원하고 ‘리서치팀’을 신설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기존에 해오던 ‘리포트 발간 사업’의 몸집을 키우는 모양새다. 리포트 주제를 설정할 때도 네이버가 최종 승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포트 발간으로 네이버가 업계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국회에서 열린 ‘기업에게 과도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말로 요약되는 토론회도, 정부 간섭을 비판하는 네이버의 목소리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네이버는 이런 해석을 부인한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사내이사로 등록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소통하는 네이버 관계자는 “사실 네이버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고 자랑하고 싶지만, 임정욱 센터장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스타트업얼라이언스를 운영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23일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미래부(현 과기부)가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네이버에 후원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면서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시작됐다”며 “5년 전만 해도 대기업은 스타트업에 큰 관심이 없었고 네이버도 그랬다. 이제 네이버도 스타트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스타트업이 잘되는 것이 네이버가 잘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네이버가 업계 아젠다를 이끌고 싶어하는 것도 맞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이때까지는 행사를 주최하는 것 위주로 진행해왔는데, 앞으론 리포트를 작성해 좀 더 인텐시브한 메시지를 내려고 한다”며 네이버가 토론회 개최를 주도하고 리포트 최종 승인을 한다는 것에 대해선 “함께 협력해서 일을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업계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관협력으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발족을 이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현재 관련 업무를 중소벤처기업부에 넘기고 손을 뗀 상황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운영 주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누가 운영 주체인지 모른다. 민관협력으로 발족했다고 했지만 시작되고 난 뒤엔 우리 소관이 아니었다. 그리고 민간 법인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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