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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법] 법원 앞 시위대와 국회의원은 '다른 국민'인가

헌법기관의 재판개입 의혹 법원 '관행' 치부 더 심각…재판개입한 자 책임부터 물어야

2019.01.21(Mon) 10:08:27

[비즈한국] “○○○ 판사님, 억울합니다.” “사기꾼 ×××를 구속하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위를 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개 억울한 사연을 읍소하거나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자들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이다. 물론 피켓이나 현수막에 적힌 내용 중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닌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하소연할 곳은 법원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소한 그들의 모습에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판사와 친하거나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면 재판에 유리할 것이라고 믿는 의뢰인이 있다. 심지어는 금품을 주거나 접대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의뢰인도 있다. 이럴 때는 판사가 누군가의 재판 청탁을 들어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큰소리를 친다. 99% 진심이었다. 전관 변호사로 인해 절차상 공정하지 않은 경우가 가끔 있었기에 100%는 아니다. 그렇지만 결과에 대한 신뢰는 있다. 비록 패소한 경우라도 입증 부족이라고 스스로 자책한 적은 있어도 재판은 신뢰했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그런데 누군가가 재판에 개입한 의혹이 드러났다. 더구나 재판 개입을 한 당사자가 헌법을 준수해야 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밝혀졌다. 헌법은 국가권력을 입법권·행정권·사법권으로 구분하고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 더해 사법권의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개개의 재판이 법관 외의 어떠한 권력이나 세력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독립하여 행하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재판의 독립을 의미한다. 국회나 정부는 물론 법원 내부에서도 법원장이 개개 법관의 재판에 간섭할 수 없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외교부에 정부 의견서 제출 시기 등 구체적인 지시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위안부 관련 재단이 6월이면 설립되고 6~7월이면 일본에서 약속한 대로 돈을 보낼 전망이니 그로부터 1~2개월 후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모든 프로세스를 8월 말까지 끝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법원행정처에 ​대거 ​재판 민원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특히 지난 15일 검찰의 추가 기소 내용에 따르면, 임 전 차장은 2015년 5월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지인의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사건의 죄명을 강제추행미수에서 공연음란으로 바꾸고, 벌금형으로 선처해달라”는 청탁을 받아 이를 서울북부지법원장을 통해 담당 판사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또 임 전 차장은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을 통해 담당 판사의 재정합의부장에게도 청탁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재판 결과 죄명은 변경되지 않았지만 강제추행미수를 저지른 청탁 대상자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아직은 기소 단계이므로 섣불리 재판 개입이 있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누구보다도 헌법을 준수해야 하는 지위에 있는 자들임에도 이들이 나서서 재판 독립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것이기에 그 충격의 정도가 클 수밖에 없다. 법원행정처로 상징되는 사법 관료 또한 재판 민원에 협력한 오명을 지울 수 없다. 

 

더 심각한 상황은 따로 있다. 재판 개입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정치권은 일종의 ‘관행’으로 치부하고 있다. 헌법 위반이 관행으로 가볍게 넘어가는 순간이다. 헌법이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그나마 국회사무처가 법사위 전문위원을 판사가 아닌 내부 승진 트랙으로 변경한 것이 유일하게 눈에 띌 뿐이다. 

 

대법원 역시 법원행정처 폐지 등 다양한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국민 시각에서는 아직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그동안 외면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해 개혁안을 논의하는 것이 사법 신뢰 회복에 첩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면 법관 선임과정이나 영미 배심제와 같은 재판 과정의 국민 참여는 논의할 가치가 있다.

 

요즘처럼 매서운 날씨에도 누군가는 법원 앞에서 시위를 한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재판에 직접 개입했다. 판사를 직접 면전에 부르기까지 했다. 법 앞의 평등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사무실에 찾아오는 의뢰인에게 재판 청탁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법원은 국민 이해갈등의 마지막 해결기관이다. 법원의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가 운영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법개혁은 정치권이든 법원 내부든 재판에 개입한 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법 신뢰 회복의 첫 단추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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