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카풀 서비스’ 도입을 반대하고 나선 택시업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한 달 동안 택시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카풀 서비스 도입 찬성은 전체 58.2%로 반대(12.5%)의 4배 수준이었다.
응답자는 ‘카풀 서비스 도입이 택시기사의 생존권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동의47%, 비동의 33%)보다 지금의 사태를 ‘승차거부나 승객 골라 태우기 등 일부 택시기사의 악행이 빚은 자업자득의 결과(동의62.3%, 비동의18.6%)’로 봤다.
택시업계도 이런 여론을 잘 알고 있다. 택시업계는 지난 12월 승차거부나 승객 골라 태우기를 막기 위해 단속을 강화하고 ‘택시 호출 앱’에서 목적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현장] 성탄 전야, 이태원에서 택시 잡아보니…). 4개 택시 이익단체(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가 투자해 만든 스타트업 ‘티원모빌리티’는 1월 중 ‘목적지 입력 없는’ 택시 호출 앱을 선보일 계획이다.
택시 승차거부는 ‘단속의 부족’이나 ‘목적지를 노출한 택시 호출 앱’의 문제일까. ‘비즈한국’은 498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재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전북지회장과 지상 농성장에서 그를 돕는 이삼형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정책위원장을 지난 14일 만나 카풀과 택시 서비스 문제에 대해 물었다.
전주에서 20여 년간 법인택시 기사로 일해온 김재주 지회장은 2017년 9월 택시 사납금 제도 철폐와 전액관리제(월급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전주시청 앞 광장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지상 20여 m 높이의 조명탑에 지은 비닐 망루에서의 생활은 16일로 500일을 맞는다. 이삼형 정책위원장을 비롯한 동료 택시기사들이 지상 농성장에서 하루 두 끼 망루에 식사를 올려주며 김 지회장의 농성을 돕고 있다. 오후 3시경 이삼형 정책위원장과 함께 망루에 올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Q. 몸 상태와 심경은 어떤가.
A. 많이 안 좋다. 좁은 공간에서 별다른 활동을 못 하다 보니 관절이나 소화기에 문제가 생겼다. 소화기 계통은 위장약이 듣지 않을 만큼 좋지 않다. 소화가 되지 않으니 하루 두 끼를 먹는데, 끼니마다 서너 수저를 먹고 만다. 언론에선 ‘최장기 고공농성’이라고 하는데 이 나라에서 법을 지켜달라고 이곳에서 500일간 농성을 했다는 것이 씁쓸하다.
Q. ‘택시 사납금 제도’ 때문에 농성을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A. 사납금은 운전종사자와 승객 모두에게 나쁜 제도다. 하루 사납금이 전국적으로 12만 원선인데 그 돈을 벌려면 최소 10시간을 일해야 한다. 기사로 일할 당시 주로 1차제(하루 동안 교대 없이 택시를 빌려 쓰는 것)를 했는데, 정오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4~5시까지 길게는 17시간 일했다. 그렇게 일해도 내게 돌아오는 건 월 150만 원 수준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일 만큼 장시간 일을 하니 아픈 곳은 늘어났다. 목 디스크 수술을 했고 당시 생긴 척추관협착증은 지금까지 지병으로 앓고 있다. 사납금을 납부해야 하는 기사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니 돈이 되는 장거리 손님을 골라 태우고, 손님은 장시간 노동에 찌든 불친절하고 위험한 택시를 타게 된다.
택시 사납금 제도란 법인택시 기사가 차량을 빌린 대가로 하루 수입 중 일정액을 회사에 내는 제도다. 사납금을 뺀 하루 운송수입금과 기본급을 더하면 기사의 월수입이 된다. 기본급은 노사가 근로하기로 정한 ‘소정근로시간’에 최저임금을 곱해 정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법인택시 기사의 소정근로시간은 1일 3~5시간이지만, 사납금을 충당하기 위해 소요되는 실제 시간은 6.7~10.2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서울지역 법인택시 노동자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일 2교대 기준 9.9시간, 무(無) 교대 기준 11.7시간. 월평균 순수입은 각각 166만 7000원, 157만 6000원으로 나타났다.
사납금 제도가 승차거부와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정부는 1997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을 개정해 택시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를 시행했다. 전액관리제란 운송사업자가 운수종사자로부터 운송수입금 전액을 수납하도록 한 제도다.
Q. 법적으로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도록 돼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A. [이삼형] 첫째는 지방정부가 처벌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과 관련한 지도·감독·단속·처벌 등의 권한을 모두 지방정부에 위임했다. 지방정부가 법대로 처벌만 하면 사납금은 없어질 것이다. 둘째는 제도적 문제다. 현행 운수사업법은 “운송사업자가 운수종사자로부터 운송수입금 전액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할 뿐 운송수입금 기준액(사납금) 수납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법이 모호하니 행정당국이 적극적으로 처벌에 나서지 않고, 처벌을 하더라도 법인택시 사업자가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전주시 시민교통과에 따르면 전주시는 지난 8월 전액관리제를 시행하지 않은 19개 업체에 1차 과태료를 부과했다. 전북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재정서에 따라 전액관리제 시행을 약속한 9개 업체에는 과태료 처분을 취소했다. 12월 19일에는 7개 업체에 2차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현재 전주시는 1차 과태료 처분에 불복한 업체들과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1월 선고될 행정소송 결과를 보고 추가적인 과태료 부과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전주시 시민교통과 관계자는 “전주시는 2015년도에도 전액관리제를 시행하지 않은 7개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불복한 업체와의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지금까지 243개 지방자치단체 중 14개 지자체가 운송사업법 조항을 근거로 택시업체에 과태료 처분을 내렸지만, 5개를 제외한 9개 지자체가 관련 소송에 패소했다”며 “판결 요지는 전액관리제를 실시하지 않기로 노사가 합의했기 때문에 과태료 처분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같은 법과 비슷한 사안을 가지고 판결이 엇갈리고 있어 과태료 부과에 혼란이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Q. ‘카풀 서비스’에 대한 입장과 앞으로의 계획은?
A. [이삼형] 시민의 이동권 보장 측면에서 카풀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사기업이 주도하는 지금의 카풀은 반대한다. 택시의 경우 택시기사 자격시험과 1년에 한 번 시행하는 ‘자격 유지 검사’, 전과 조회 등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지만, 카풀의 경우 사기업이 주도하기 때문에 안전을 담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 주도의 카풀 서비스에 찬성한다.
A. [김재주] ‘카풀 서비스’를 반대하기 전에 택시 서비스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 택시 사납금을 폐지하면 불친절 영업과 승차거부 등을 없앨 수 있지만 4개 택시단체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모두 사업주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농성은 전액관리제 시행을 약속하지 않은 전주시의 7개 택시 사업장이 사납금을 폐지하거나, 전주시가 이들에게 3차 과태료를 부과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국토교통부 도시광역교통과에 따르면 지난 12월 기준 전국 택시 종사자 26만 8386명 중 39%(10만 5133명)는 법인택시 종사자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2017년 승차거부 민원신고로 실제 처분된 2519건 중 법인택시 기사에 대한 처분은 1919건으로 전체 74%를 차지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소속 박홍근 의원(서울 중랑구을)은 지난 12월 운송사업자와 종사자의 준수사항을 구체화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비즈한국’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법률의 미비로 사납금 제도는 편법으로 운용됐다. 택시기사에게 노예의 족쇄와 같은 사납금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며 “이번 개정안을 국회 우선 처리법안 목록에 넣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설날 전까지 김재주 지회장이 고공농성을 마무리하고 내려올 수 있도록 활동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주=차형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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