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7년 6월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법) 개정과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동물원법 체계 아래에서는 동물복지 보장 장치가 미흡하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그 해결방안으로 ‘동물원 허가제’가 거론됐다.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국회에서는 한 치의 진전도 없는 똑같은 논의가 반복됐다. 지난 1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동물원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동물원법이 시행됐지만 동물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고, 이후 현행 동물원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논의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동물원 허가제는 과연 이뤄질까. ‘시기상조’라는 입장과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갈리면서 동물원법 개정 논의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 법안 발의 전에는 ‘허가제’, 시행은 ‘등록제’?
동물원법은 2016년 5월 30일 제정돼 2017년 5월 30일부터 시행됐다. “동물원 내 사육동물에 적정한 환경을 제공하고 동물의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함으로써 동물원의 올바른 운영 및 동물의 복지 구현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행 초기부터 법안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았다. 19개월째 동물원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동물원법을 둘러싼 논쟁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배경에는, 현행 동물원법이 ‘동물 없는’ 동물원법이라는 데 있다. 즉, 동물복지 관련 조항이 미흡하다는 것. 현재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운영하려면 최소한의 절차만 거친다. 시설 소재지, 전문 인력 현황, 보유 생물 종 및 개체 수의 목록 등을 갖춘 후 시·도지사에게 등록하면 된다. 동물의 종별로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할 서식환경과 시설, 관리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어 운영 전 동물복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동물원법의 밑그림이 그려질 때부터 동물복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법이 제정되기 전 제19대 국회에서 장하나·한정애·양창영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에는 동물원 허가제는 물론 동물쇼를 위한 훈련을 금지하고, 종 습성 및 정상적 행동을 유지하기 위한 사육환경 요건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규정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제정 과정에서 발의안의 동물복지 관련 조항들은 제외됐고, 허가제는 등록제로 간소화됐다. 관련 부처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발의안과 다른 시행령안과 시행규칙안을 두고 동물권단체의 반발은 상당했다. 결국 2017년 10월, 동물원법이 시행된 지 5개월 만에 이용득 의원은 ‘국가가 5년마다 동물원 및 수족관 동물복지종합계획을 시행하고 환경부는 동물원 및 수족관 운영자에게 관리지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지난해 5월 통과돼 개정된 상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태적 습성에 맞는 환경 기준을 마련하고 전시동물을 보장하겠다는 애초의 법 제정 취지에 맞는 조항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2일 이헌승 자유한국당 의원은 ‘동물원 운영자가 준수해야 하는 서식환경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재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말 많은 동물원법이 좀처럼 개정되지 않는 이유로, 동물복지단체는 정부가 이해관계자의 눈치를 본다고 비판한다. 동물원 운영환경 기준을 까다롭게 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 동물원 운영자들이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니 수위를 조절한다는 것.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동물복지단체 활동가도 “당시에도 업계의 반발로 법안이 축소됐는데 아직도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물원법이 제정된 지 1년이 넘도록 동물복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해 9월 환경부에 따르면, 사자·호랑이·퓨마 등 맹수를 사육하는 동물원 29곳 중 15곳에서 맹수를 야외 방사장 없이 사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랑이와 사자는 넓은 서식환경이 필요한 종이다. 현행 동물원법에는 ‘생물 종의 특성에 맞는 영양분 공급, 질병 치료 등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말만 존재한다. 사육환경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하는 규정도 없다.
# 허가제 둘러싸고 정부도 부처간 엇갈린 입장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하루빨리 동물원 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외국처럼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생물 다양성 보전·연구, 동물 생태와 습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 기능을 할 수 있는 시설만 국가의 지원과 관리를 받아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주장처럼 해외 사정은 우리나라와 다르다. 한국을 제외하고 유럽연합, 미국, 호주 등 동물원 관련 법이 있는 국가는 허가제 또는 면허제를 시행한다. 선진국은 사육환경 관리도 철저히 한다. 영국 지방정부가 파트타임으로 수의사를 채용해서 검사를 진행하는 게 대표적이다.
허가제를 바탕으로 검사관 제도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수의사 등 전문가들이 허가기준의 준수사항을 검사하도록 해, 동물원이 보유 동물에게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제대로 검사하자는 주장이다. 영국의 크리스 드레이퍼(Chris Draper) 동물원수족관 시민단체 ‘본프리 재단(Born Free Foundation)’ 교수는 “한국은 독립된 검사관들에 의해 객관적인 요건을 정립하고 다양한 동물에 대해 구체적 관리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며 “위험요소가 발견된 동물원은 더 자세히 검사하는 체계를 도입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허가제를 무작정 도입하면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허가제 시행 이후 대책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아 동물원 연쇄 폐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허가제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윤익준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개정법을 통해 동물원 운영자가 이미 행사해온 직업을 제한하는 경우에는 공공복리의 사유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허가제에 대한 정부 부처의 입장도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이날 이준희 환경부 생물다양성 과장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동물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동물원·수족관의 허가제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명노현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장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 시행 2~3년 만에 골격을 바꾸는 것은 무리”라며 “동물원법을 만들고 나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허가제 전환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이용득 의원은 “정부가 관련 부처들과 허가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동물원법이 동물복지 내용을 담아 개정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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