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긴긴 겨울방학 동안 아이랑 한번쯤 서울역을 이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차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KTX가 출발하는 서울역 옆 옛 서울역사를 한번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스위스의 루체른역을 모델로 삼았다는 이 웅장한 벽돌건물은 한때 식민지의 관문이었다. 일본은 서울역을 통해 만주뿐 아니라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 연결하려고 했다. 패전으로 일제의 야망은 사라졌으나 서울역은 여전히 한반도 교통의 중심이었다. 10여 년 전 새로운 역사가 건축되면서 옛 서울역사는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웅장한 돔에 서양식 아치가 이국적인 서울역의 설계자는 도쿄역사를 설계한 다쓰노 긴고의 제자인 스카모토 야스시로 알려져 있다. 건축 당시 서울역사는 연면적 6631㎡의 초대형 건물로 ‘동양 제1역’인 도쿄역의 뒤를 잇는 ‘동양의 제2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2003년 새로운 서울역사가 건설될 때까지 옛 서울역사는 수많은 열차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었다. 지금은 ‘문화역서울 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옛 서울역사는 많은 이들에게 여행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 일본과 만주, 유럽을 잇는 관문
하지만 서울역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서울역은 단순히 식민지 경성을 대표하는 기차역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일제는 서울역을 일본과 조선, 만주를 잇는 ‘국제역’으로 기획했다. 도쿄에서 출발한 일본 국철이 시모노세키에 이른 후, 부관연락선으로 갈아타 부산에 닿고, 다시 기차에 올라 서울역을 거쳐 만주와 시베리아, 더 나아가서는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 연결하려는 구상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역을 건설한 주체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였다. ‘만철’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던 이 회사는 마치 영국의 동인도회사처럼 식민지 경영을 위한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다. 식민지 수탈을 위해 인도 전역에 철도를 깐 영국처럼, 일본도 만주의 식민 경영을 위해 철도를 중심 사업으로 채택한 것이다.
일제가 서울역을 크고 화려하게 지은 것은 이렇듯 제국의 전초기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일본의 도쿄역과 비슷한 규모로 세우려고 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규모도 줄이고 공사 기한도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도 서울역은 식민지의 관문으로 손색이 없는 위용을 자랑했다. 건축 당시 1층에는 매표소를 겸하는 중앙홀, 주로 조선인들이 사용했던 3등 대합실, 일본인들이 이용한 1·2등 대합실과 부인대합실, 귀빈실, 역장실 등이 있었다. 3등 대합실은 남녀가 함께 이용했지만, 1·2등 승객은 부부라도 남녀를 구별해 여성은 부인대합실에 따로 머물러야 했다. 2층에는 당시 최고의 서양식 레스토랑인 ‘서울역 그릴’이 자리잡았다. 이상의 소설에도 등장하는 이곳은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집합소였다.
# 벽난로에 샹들리에까지 갖춘 귀빈 대합실
옛 서울역사가 원형복원 공사를 마친 후 ‘문화역서울 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2011년의 일이다. ‘문화역서울’이란 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임을 뜻하고, 284는 서울역의 사적 번호에서 따왔다. 전시회는 대부분 무료여서 시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육중한 정문을 열고 들어가니 12개의 돌기둥과 돔으로 구성된 중앙홀이 보인다. 천정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강강술래를 형상화한 작품이란다. 오른쪽의 넓은 3등 대합실에는 ‘커피사회’라는 제목으로 전시가 진행 중이고, 조선총독이 사용했다는 귀빈실은 서양식 벽난로와 샹들리에가 여전히 화려하다.
서울역 그릴의 대식당이 있는 2층은 여러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역시 다양한 전시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80년 된 근대문화유적에서 보는 첨단의 전시는, 시공간을 뒤섞은 듯 묘한 울림을 주었다. 그 속에서 옛 서울역사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행정보
▲위치: 서울시 중구 통일로1
▲문의: 02)3407-3500
▲관람 시간: 10:00~18:00(월요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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