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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드 뮤지끄] 이디오테잎이 마련한 안식처에서 생토노레를 먹다

록 향기 물씬 나는 전자음악이 부르는 춤과 캐러멜

2019.01.14(Mon) 18:21:39

[비즈한국] 음악과 디저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입가심하기에 적당하다는 것. ‘가토 드 뮤지끄(gâteau de musique)’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뮤지션과 디저트를 매칭해 소개한다.

 

말이 너무 싫을 때가 있다. 상대방의 입에서 출발한 말이 내 숨통을 조이고 LCD 또는 OLED에서 출발한 활자들이 바늘이 되어 나를 쿡쿡 쑤시는 기분이 들 때. 나도 말을 하고 인간의 문명은 언어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하더라도 여기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당장이라도 사람이 몇 살지 않는 섬으로 훌쩍 떠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럴 땐 내 귀에 조그만 도피처를 마련해주면 된다. 말도 없고 인간의 목소리도 없고 기계음과 비트만이 존재하는 도피처를.

 

이디오테잎(IDIOTAPE) - 0805. 영상=네이버 온스테이지

 

이디오테잎의 음악은 움츠러든 마음이 숨기에 적합한 도피처다. 여기엔 인간의 목소리가 없다. 뭐라고 야단치는, 가르치는, 칭찬하는, 위로하는 목소리가 없다. 그런 마음과 이디오테잎의 음악이 만나면 기묘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흔히들 춤은 기분 좋을 때 추는 것이라 알려졌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춤은 언제든 출 수 있다. 다만 박자가 없었을 뿐이다. 이디오테잎의 음악을 들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갑자기 분위기 춤추고 싶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디오테잎의 음악을 들으면 춤추고 싶다.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로.

 

이디오테잎(IDIOTAPE) - Dystopian. 영상=네이버 온스테이지

 

울상을 짓고 경쾌하게 스텝을 밟고 있으니 슬쩍 출출해진다.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로부터 도망가는 상황, 기분이 좋지 않지만 스텝을 밟고 있는 상황. 캐러멜은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제격이다. 말라 비틀어진 나무처럼 짙은 갈색이지만 달콤한 캐러멜. 뽀얀 설탕을 굳이 시커멓게 졸여서 심지어 탄 맛까지 나게 하는 캐러멜.

 

마침 옆을 보니 ‘르봉초초’가 있다. 최고의 양과자점은 집 근처에 있다. 르봉초초는 상수역 근처에 있는 작고 귀여운 양과자점이다. 역시 작고 귀여운 쁘띠가토(Petit gateau, 작은 케이크)와 구움과자를 만든다. 마침 캐러멜이 듬뿍 들어간 캐러멜 생토노레(saint-honoré, 슈를 사용한 왕관모양의 디저트)가 있다.

 

르봉초초의 캐러멜 생토노레는 주말에만 만든다. 사진=이덕 제공

 

달콤쌉싸름한 캐러멜이 바삭한 쿠키슈와 부드럽고 가벼운 크림 사이를 오간다. 여기서의 캐러멜은 분명 쌉싸래한 끝맛을 가지고 있지만 뚜렷하게 쓴맛이 난다기보다는 쌉쌀한 느낌만 주고 이내 부드러운 크림과 함께 빠르게 사라진다. 보기 드문 밸런스를 가진 캐러멜이다.

 

밑바닥에 깔린 바삭하고 굳이 단맛을 더하지 않은 파이는 꼭 크림과 함께 먹어야 맛이 좋다. 차와 커피 모두에게 어울리기에 가장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것으로 고른다. 쿠키슈와 파이가 바삭바삭 씹히는 느낌에 다시 흥이 올라온다. 이렇게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집에서 춤을 춰야 폐와 혈관에 덜 해롭다.

 

이디오테잎(IDIOTAPE) - Perfect Moment. 영상=네이버 온스테이지

 

이디오테잎은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는 디구루(DGURU), 제제(ZEZE), 그리고 드럼을 연주하는 디알(DR)로 이루어진 전자음악 밴드다. 악기 구성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전자음악이 분명한데 어디선가 록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쉽게 말하자면 록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그리고 EDM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도 손색이 없는 밴드다.

 

무엇보다 이디오테잎은 무대가 크면 클수록 빛을 발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스피커가 커질수록, 조명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레이저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영상이 펼쳐지는 화면이 크고 많을수록 좋다. 특히 뷰직(VIEWZIC)과 함께하는 공연에서 이디오테잎의 음악과 레이저, 영상이 딱딱 맞아떨어지는데서 오는 쾌감이 상당하다.

 

이디오테잎(IDIOTAPE) - Even Floor. 영상=네이버 온스테이지

 

이디오테잎의 음악을 들으며, 생토노레를 먹으며 집에서 춤을 추고나면 다시금 기운이 솟고 용기가 생긴다. 내일부터는 다시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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