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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함께…' 10대 그룹 핵심 CEO 신년사 키워드의 '깊은 뜻'

젤리랩 형태소 분석, 성장·고객·가치도 빈번히 언급…"'우리'는 기업공동체와 연관"

2019.01.11(Fri) 16:32:09

[비즈한국] 2019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11일째.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과 CEO(최고경영자)들은 올해도 일제히 신년사를 통해 기업경영에 대한 포부와 기조, 사업전략 등을 밝혔다. 그 이면엔 현 경제상황을 바라보는 평가도 담겼다. ‘비즈한국’은 이들 신년사에 나타난 주요 키워드를 뽑아 그 의미와 기업들의 경영 움직임 등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중 상위 10개 기업집단 총수, CEO의 신년사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GS, 한화, 농협, 현대중공업에서 발표한 신년사가 그 대상이다. 그룹 차원에서 따로 신년사를 내놓지 않은 삼성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각각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한영석·가삼현 현대중공업 사장의 신년사로 대체했다.

 

‘워드 클라우드’ 방식으로 시각화한 신년사 주요 키워드. 젤리랩과 분석 방식이 달라 결과가 다소 다를 수 있다.


키워드 통계·순서화 작업은 데이터 수집·분석 플랫폼인 ‘젤리랩(Jelly Lab)’​의 ‘​형태소 분석’​으로 진행했다. 정확한 의미 분석을 위해 ‘​있다’​, ‘​주다’​, ‘​하다’​ 등의 서술어와 조사는 제외하고 명사, 형용사만을 통계 결과로 추렸다. 키워드를 시각화하는 ‘​워드 클라우드’는 해외 데이터 시각화 플랫폼인 ‘​태그제도(Tagxedo)’​를 활용해 진행했다.

 


먼저 ‘​사업’​, ‘​농업’​, ‘​여러분’​은 가장 많이 언급된 상위 키워드로 뽑혔지만 의미 분석에선 제외했다. ‘​사업’​과 ‘​여러분’​은 공식석상에 오른 총수와 CEO들이 원활한 신년사 발표·진행을 위해 빈번히 언급, ‘​농업’​은 67회 모두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입에서 나온 키워드였다. 기업들의 경영 전반과 연관해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순 없었다.

 

3개 키워드를 제외하고 가장 눈에 띄는 건 총 75회 언급된 ‘​우리(2위)’​다. 대부분의 총수와 CEO가 회사 성과와 비전, 과제 등을 언급할 때 사명이 아닌 임직원 모두를 아우르는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비슷한 맥락에서 ‘​함께(10위)’​도 빈번히 사용됐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주주 중심의 미국식 경영 기조를 유지하던 기업들이, 내부 임직원들의 복지 처우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점차 바뀌는 것을 보여준다”​며 “​최근 기업공동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고객(6위)’​은 총 52회 언급돼 그다음으로 빈번히 나타났다. 구광모 LG회장의 경우 기업 성과와 가치, 앞으로의 계획 등을 설명하면서 고객이란 키워드를 끊임없이 사용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장동현 SK(주) 사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등도 ‘​고객사랑’​, ‘​고객과 동반성장’​, ‘​고객을 위한다’​, ‘​고객이 원하는’​ 등의 말을 적지 않게 사용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론적인 관점에서 시장은 고객을 두고 경쟁을 벌이다 보니 고객, 즉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고 이들을 살필 수밖에 없다”​며 “​최근 소비트렌드가 급변하고 주기도 짧아지면서 고객의 관심사 등에 점차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신년사에 투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장(5위)’​, ‘​혁신(8위)’​, ‘​새로운(18위)’​, ‘​지속(20위)’​은 줄곧 함께 언급됐다. 신사업 발굴 등으로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타개, 시장 우위를 점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 등에서 자주 강조된 것.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 성장하는 회사로 거듭나길 바라는 총수와 CEO들의 바람이 투영된 셈이다. 이 단어들은 신년사마다 화두로 등장했던 키워드이기도 하다. 

 

총 44회 언급된 ‘​가치(7위)’​​는 ‘​사회적’​​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돼 눈길을 끌었다. 총수·CEO들이 좁게는 협력사, 넓게는 지역사회와의 협력·상생 등을 강조하며 사회·공익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것.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 회장)는 “​일명 따뜻한 자본주의의 도래로 ‘​기업만 잘나가면 된다’​에서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자본주의 체질이 변화해가는 것”​이라며 “​미래가 불확실해지는 만큼 기업들은 더 긴장하고 주변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 중에선 SK가 가장 먼저 사회적 가치에 대해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25위)’​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신흥시장 개척을 목표하는 것을 방증했다. 서지용 교수는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해 이머징마켓(떠오르는 시장)에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생산 설비 등을 해외로 옮기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여준다”​며 “​이미 삼성 등은 베트남에 설비를 옮겨 가동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디지털(74위)’은 13번 언급된 데 불과했지만, 과거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키워드다. 총수·CEO들은 디지털 채널의 확보, 디지털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 등의 중요성을 적지 않게 이야기했다. 강규성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문위원은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4차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기술을 기존 주력산업과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경영방향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키워드가 지금의 불확실한 경제 상황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강규성 전문위원은 “​올해 세계 경기가 둔화하고 내수는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관측이 제기되된다”​며 “​신년사 키워드는 이에 대비하며 리스크 관리에 나선 기업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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