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9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11일째.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과 CEO(최고경영자)들은 올해도 일제히 신년사를 통해 기업경영에 대한 포부와 기조, 사업전략 등을 밝혔다. 그 이면엔 현 경제상황을 바라보는 평가도 담겼다. ‘비즈한국’은 이들 신년사에 나타난 주요 키워드를 뽑아 그 의미와 기업들의 경영 움직임 등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중 상위 10개 기업집단 총수, CEO의 신년사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GS, 한화, 농협, 현대중공업에서 발표한 신년사가 그 대상이다. 그룹 차원에서 따로 신년사를 내놓지 않은 삼성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각각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한영석·가삼현 현대중공업 사장의 신년사로 대체했다.
키워드 통계·순서화 작업은 데이터 수집·분석 플랫폼인 ‘젤리랩(Jelly Lab)’의 ‘형태소 분석’으로 진행했다. 정확한 의미 분석을 위해 ‘있다’, ‘주다’, ‘하다’ 등의 서술어와 조사는 제외하고 명사, 형용사만을 통계 결과로 추렸다. 키워드를 시각화하는 ‘워드 클라우드’는 해외 데이터 시각화 플랫폼인 ‘태그제도(Tagxedo)’를 활용해 진행했다.
먼저 ‘사업’, ‘농업’, ‘여러분’은 가장 많이 언급된 상위 키워드로 뽑혔지만 의미 분석에선 제외했다. ‘사업’과 ‘여러분’은 공식석상에 오른 총수와 CEO들이 원활한 신년사 발표·진행을 위해 빈번히 언급, ‘농업’은 67회 모두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입에서 나온 키워드였다. 기업들의 경영 전반과 연관해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순 없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주주 중심의 미국식 경영 기조를 유지하던 기업들이, 내부 임직원들의 복지 처우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점차 바뀌는 것을 보여준다”며 “최근 기업공동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고객(6위)’은 총 52회 언급돼 그다음으로 빈번히 나타났다. 구광모 LG회장의 경우 기업 성과와 가치, 앞으로의 계획 등을 설명하면서 고객이란 키워드를 끊임없이 사용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장동현 SK(주) 사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등도 ‘고객사랑’, ‘고객과 동반성장’, ‘고객을 위한다’, ‘고객이 원하는’ 등의 말을 적지 않게 사용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론적인 관점에서 시장은 고객을 두고 경쟁을 벌이다 보니 고객, 즉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고 이들을 살필 수밖에 없다”며 “최근 소비트렌드가 급변하고 주기도 짧아지면서 고객의 관심사 등에 점차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신년사에 투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장(5위)’, ‘혁신(8위)’, ‘새로운(18위)’, ‘지속(20위)’은 줄곧 함께 언급됐다. 신사업 발굴 등으로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타개, 시장 우위를 점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 등에서 자주 강조된 것.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 성장하는 회사로 거듭나길 바라는 총수와 CEO들의 바람이 투영된 셈이다. 이 단어들은 신년사마다 화두로 등장했던 키워드이기도 하다.
총 44회 언급된 ‘가치(7위)’는 ‘사회적’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돼 눈길을 끌었다. 총수·CEO들이 좁게는 협력사, 넓게는 지역사회와의 협력·상생 등을 강조하며 사회·공익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것.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 회장)는 “일명 따뜻한 자본주의의 도래로 ‘기업만 잘나가면 된다’에서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자본주의 체질이 변화해가는 것”이라며 “미래가 불확실해지는 만큼 기업들은 더 긴장하고 주변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 중에선 SK가 가장 먼저 사회적 가치에 대해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25위)’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신흥시장 개척을 목표하는 것을 방증했다. 서지용 교수는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해 이머징마켓(떠오르는 시장)에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생산 설비 등을 해외로 옮기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여준다”며 “이미 삼성 등은 베트남에 설비를 옮겨 가동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디지털(74위)’은 13번 언급된 데 불과했지만, 과거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키워드다. 총수·CEO들은 디지털 채널의 확보, 디지털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 등의 중요성을 적지 않게 이야기했다. 강규성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문위원은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4차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기술을 기존 주력산업과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경영방향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키워드가 지금의 불확실한 경제 상황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강규성 전문위원은 “올해 세계 경기가 둔화하고 내수는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관측이 제기되된다”며 “신년사 키워드는 이에 대비하며 리스크 관리에 나선 기업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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