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태블릿(Tablet)이 아니다. ‘타블렛’이다. 사실 두 단어의 영어 스펠링은 같다. 원래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태블릿이 맞다. 하지만 ‘태블릿’은 태블릿 PC를 칭하고, ‘타블렛’은 그림 그리는 도구를 뜻하기에 편의상 차이를 두고 통용된다. 타블렛은 주로 아티스트, 디자이너나 만화작가들이 사용한다. 타블렛은 스케치판에 스타일러스 펜을 활용해 그림을 그린다. 펜 입력 덕분에 마우스보다 더 정밀한 작업이 가능하고 종이에 그린 것보다 쉽게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타블렛 시장을 독식한 업체는 일본의 와콤이다.
와콤이 곧 타블렛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경쟁 업체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와콤에 비견할 브랜드는 보이지 않는다. 망가(Manga)나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 같은 단어가 생길 정도로 만화에 독보적인 지위를 가진 일본에 와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와콤이 이번에 출시한 모델은 입문자용 타블렛 ‘와콤 신티크 16’이다. 지난해 출시한 와콤 신티크 16 프로에서 스펙과 가격을 낮춘 다운사이징 모델이다. 아무래도 애플 아이패드 프로의 영향이 적지 않다. 펜 입력을 지원하는 아이패드 프로의 선전으로 독과점과 다름없던 와콤도 가성비를 높인 모델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과거의 타블렛들은 스케치 판만 제공하고 모니터를 보며 작업하는 방식이었는데 최근 나오는 타블렛들은 디스플레이를 제공해 바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많다. 와콤 신티크 16도 디스플레이에 바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15.6인치 화면에 풀HD 해상도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쨍한 디스플레이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타블렛은 화면에 펜을 대고 그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긁힘 방지와 반사 방지가 더 중요하다. 최근에는 보기 힘든 막을 씌운 듯한 화면이다. 색 재현율이 72%에 불과하다. 아이패드 프로가 상대적으로 앞선 부분이다.
무게는 무려 1.9kg이다. 웬만한 17인치 노트북 무게다. 타블렛은 손의 압력을 버텨야 하기에 경량화에 힘을 쏟지 않는다. 크기도 꽤 크다. 예전보다 베젤의 두께가 줄어든 것은 확실하지만 타블렛들은 베젤 두께가 큰 단점이 아니어서 두툼한 베젤을 가지고 있다. 화면이 크니 편안하게 손을 놓고 작업할 수가 있다. 약간의 기울기가 있어 바닥에 놓고 작업할 때보다 훨씬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다. 기본 스탠드가 내장되어 있고 추가로 별도의 스탠드를 구입할 수도 있다.
펜을 들고 그림을 그려보았다.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제품의 리뷰가 가장 곤혹스럽다. 아무리 잘 그리려고 노력해도 악령이 깃든 아이가 그린 듯한 기괴한 결과물만 나온다. 하지만 지연 현상이 거의 없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정밀한 작업이 가능한 것은 초보자가 써봐도 금방 느낄 수 있다.
삼성 갤럭시 노트를 리뷰하면서 펜을 이용해 그린 그림보다 덜 악령이 깃든 그림이 나온다. 디지털 스타일러스 이후로 이 정도로 내가 의도하는 그림에 가깝게 그려지는 제품은 처음이다. 물론 아주 손에 익은 펜으로 종이에 그리는 그림과는 차이가 있다. 아마도 익숙함의 차이 정도로 느껴진다. 몇 시간 정도 사용해보니 정말 손으로 그릴 때와 큰 차이가 없어졌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펜 입력이 훨씬 더 부드럽기 때문이다.
사실 와콤의 핵심 기술은 타블렛 그 자체보다는 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 레노버를 비롯해 많은 제조사들이 와콤의 펜 기술을 사용한다. 와콤 신티크 16에 포함된 ‘와콤 프로 펜2’는 와콤 EMR 기술이 적용되어 배터리 충전 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이 점은 아이패드 프로에 비해 장점이다.
여기에 8192단계의 필압 인식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9의 경우 4096단계의 필압 인식이 가능한데 이것보다 두 배 더 정밀한 필압 인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실 내가 필압을 8000단계가 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더 놀라긴 했다.
프로 펜2의 가장 큰 장점은 기울기 인식이 정밀하다는 거다. 마치 진짜 펜과 같이 기울기를 잘 인식해서 선의 굵기와 미세한 느낌을 잘 살려준다. 물론 이렇게 좋은 기술도 내가 잘 사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긴 하다. 나는 8192단계의 필압 인식과 정밀한 기울기 인식 기능을 사용하여 지옥의 그림을 계속해서 완성해 나갔다.
아이패드 프로나 갤럭시 노트 같은 펜 입력 도구가 목적성이 다소 불분명한 제품이라면 와콤 신티크 16은 목적이 뚜렷해 보인다. 이걸 쓴다면 그림이나 드로잉으로 돈을 번다는 뜻이다. 와콤 신티크 16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펜 입력에 커다란 크기, 다소 흐린 화면을 가진 제품이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실용적인 제품이다. 기존 타블렛 사용자라면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와콤의 대부분의 핵심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필자 김정철은? 전 ‘더기어’ 편집장. ‘팝코넷’을 창업하고 ‘얼리어답터’ 편집장도 지냈다. IT기기 애호가 사이에서는 기술을 주제로 하는 ‘기즈모 블로그’ 운영자로 더욱 유명하다. 여행에도 관심이 많아 ‘제주도 절대가이드’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만, 돈은 별로 벌지 못했다. 기술에 대한 높은 식견을 위트 있는 필치로 풀어낸다.
김정철 IT 칼럼니스트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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