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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의료용 대마법 시행 앞두고 '탁상행정' 논란, 왜?

"모법에 비해 하위법령 부실" 지적…식약처 "의견 적절하면 시행령·규칙 수정 가능"

2019.01.09(Wed) 15:13:53

[비즈한국]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료용 대마법)’​이 개정된 지 두 달이 지났다. 법 개정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의료 목적의 대마 섭취가 가능해졌다. 지난해 12월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는 ‘513일의 법개정운동 승리보고대회’를 열고 법 개정 운동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주관으로 열린 ‘의료용 대마 처방 확대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9일 강성석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대표(오른쪽)와 이은경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의료용 대마법과 관련해 식약처가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고 소리 높였다. 사진=최준필 기자


현재 ​대마 관련법은 식약처 의약품안전국 마약정책과가 총괄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식약처의 탁상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의료 단체로는 최초로 대한한의사협회가 의료용 대마법과 관련해 식약처를 비판하고 나섰다. 개정된 의료용 대마법은 3월 12일부터 시행될 예정인데, 시행 첫날부터 의료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 대한한의사협회도 식약처 ‘탁상행정​ 비판

 

식약처가 비판받는 이유는 의료용 대마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9일과 12월 14일 식약처는 시행령안과 시행규칙안을 발표했다. 식약처는 대마 성분의 의약품은 전국에 하나뿐인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공급이 가능하며, 안전이 검증된 외국 제약회사 의약품 네 종만을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11월 23일 의료 목적의 대마 처방이 가능하도록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료용 대마법)’이 개정된 이후 처음 나온 내용이었다.

 

발표 직후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를 비롯한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는 즉각 반발했다. 개정된 모법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비해, 시행규칙이나 시행령의 수준이 미달한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지적에 식약처도 후속 발표를 내놓았다. “의료용 대마 수입 요청 시 1~2주일 안에 수입 및 공급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식약처는 의약품 네 종만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이에 의료용 대마를 필요로 하는 환자와 환자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성석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대표는 “식약처가 환자와 환자 가족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 법이 개정됐지만 식약처는 환자들에게 또 다시 좌절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법 시행 첫날이 솔직히 말하면 무서울 정도”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식약처의 후속 조치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식약처가 1~2주 안에 의료용 대마 의약품 네 종을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공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처방도 복잡하고 약 재고가 부족하면 신청을 해도 몇 달이 걸리는 시스템이라는 이유다. 강 대표에 따르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상주하는 직원은 12명 정도다. 반면 의료용 대마를 원하는 전국의 뇌전증 환자는 50만 명이다.

 

의료진이 해당 내용을 잘 몰라 처방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재 대한한의사협회를 제외한 다른 의료단체는 처방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은 상황. 우리나라에서는 이제껏 대마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의과대학 수업 과정에서도 깊이 다뤄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3월 12일부터 환자들이 1차 의료기관에 가서 의료용 대마를 처방해달라고 요구해도 처방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주장이다.

 

의료용 대마법 시행령과 시행 규칙을 두고 대한한의사협회가 의료 단체로는 최초로 식약처를 비판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대마사용을 확대하고 의료 목적의 대마 성분인 CBD(칸나비디올·Cannabidiol) 오일을 수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대마는 마약이고 마약은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깨야 한다는 것. 이은경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도 “특정 외국 제약회사의 일부 의약품만으로 제한해 수많은 환자가 불만을 토로한다”며 “천연물질은 중요하다. 어느 정도 기준을 충족하고 안전성이 있으면 환자들에게 공급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전문의약품 네 종만 수입하기로 밝혔지만, 해외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일본이나 중국 등 대마에 엄격한 국가도 CBD 오일은 건강기능식품으로 규정해 홈쇼핑 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있다. CBD 성분은 뇌전증과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BD 성분의 의약품인 에피디올렉스(Epidiolex)는 식약처가 수입하겠다고 밝힌 전문의약품에 포함돼 3월부터 공급될 예정이다. 그러나 CBD 오일은 여전히 수입과 공급이 금지되어 있다.

 

# 식약처 “시행령 수정하려면 사회적 합의 필요”

 

이렇게 ‘말 많은’ 시행령과 시행규칙 안이 나오게 된 배경을 두고, 항간에는 식약처가 유관부서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 가족과 의료인은 물론 식품안전정책국, 바이오생약국 등 의약품을 관리하는 여타 부서와 논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 대마의 위험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뇌전증, 파킨슨병 등 환자들이 얼마나 의료용 대마를 필요로 하는지 제대로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와 대한한의사협회의 주장이 그대로 수용되기는 쉽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오남용 우려 탓에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다. 사진=최준필 기자


그럼에도 이들의 요구가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식약처가 발표한 시행령안과 시행규칙안에 대한 의견을 받는 입법 예고기간이 1월 23일까지로 얼마 남지 않았고, 개정된 마약법이 시행되기까지도 불과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 의료진으로서도 임상 시험을 거치지 않은 대마 추출 성분을 환자들이 섭취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의약품이 아닌 대마 성분의 천연물질이라도 의료진의 처방을 통해 공급할 수 있도록 하면 위험하지 않다는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의 반론도 있다.

 

식약처는 시행령과 시행 규칙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윤지상 식약처 대변인실 주무관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타당한 내용이 있으면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주무관은 “3월 12일 이후 약 요청이 많이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또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의 올해 예산을 많이 늘렸기 때문에 직원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며 “CBD 오일은 마약 성분이라 오남용 우려가 있기 때문에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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