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9’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새로운 TV를 발표했다. 올 한 해를 빛낼 새로운 기술들이 소개되는 자리지만, CES의 출발점인 가전이 여전히 중심이 되는 전시회인 만큼 새로운 TV의 데뷔 무대로 늘 주목을 받는다. TV 시장에서 가장 뜨겁게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결은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다.
퀀텀 디스플레이 기반의 LCD와 OLED, 그리고 마이크로 LED 등 디스플레이 기반 기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화면이 접혀 들어가는 ‘롤러블’ 디스플레이나 양산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마이크로 LED 기술은 제조사들의 기대치와 달리 우리 거실에 들어올 ‘테레비’와는 아직 상당히 거리가 있다. 물론 CES를 통해 LCD TV가 처음 선보였을 때 비현실적이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새로운 형태의 디스플레이가 자리를 잡겠지만 지금으로서는 4K와 8K 등 UHD 해상도로 전환하는 것부터가 큰 숙제다.
# TV는 왜 진화해야 하나
TV는 지난 수십 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발전했다. ‘어떻게 더 나은 게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무안할 정도다. TV가 대중화되는 흐름은 명확하다. 값이 비싸고 한 번 사서 오래 쓰는 제품이기 때문에 유행에 예민하고, TV 제조사들과 방송, 콘텐츠 시장이 원하는 방향성을 빠르게 따라간다.
하지만 3D TV나 초기 UHD TV처럼 방송의 제작, 전송 규격이 잡히기 전에 제품을 먼저 만들어 팔면서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경험을 먼저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TV 기술은 흥미롭게 보되,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방송과 콘텐츠 시장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이전보다 관심은 많이 떨어졌지만 현실적으로 자리 잡는 기능이 하나 있다. 바로 스마트 TV다. 2010년 스마트폰의 열풍과 함께 다음 ‘스마트’ 기기를 찾는 것은 업계의 큰 숙제였고, 모두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TV를 꼽았다. 하지만 초기 스마트 TV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운영체제는 제각각이었고, 앱도 제한적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는 하드웨어도 성능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다. 결국 제조사들은 매년 새로운 환경으로 갈아엎으면서 이전에 제품을 구입했던 소비자들을 내려놓고 가는 과감함을 택하기도 했다. 구글도 나섰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심지어 시장의 관심은 ‘애플이 TV 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애플은 TV를 만들지 않았다. 급하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한동안 스마트 TV를 두고 갈 곳을 잃은 TV 업계로서는 꽤 골칫거리였을 게다. 그 기대에 애플이 내놓은 것은 TV가 아니라 이전에 있던 셋톱박스인 ‘애플TV’였다. 애플로서는 디스플레이까지 만들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TV를 스마트하게 만드는 것이 꼭 TV 안에 붙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일체형 PC와 데스크톱 PC의 차이를 떠올리면 비슷할 것 같다.
시장의 관심은 어느새 스마트 TV에서 멀어졌다. 더 이상 스마트 TV에 뭔가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TV에 들어가는 ‘스마트’의 역할은 결국 더 넓은 콘텐츠의 접근이다. 대신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더 편하게 보고, 스마트폰에 있는 콘텐츠를 TV에 넘겨서 보고, 인터넷에서 구입한 영화를 TV에서 곧바로 열어보는 것이 시장이 원하는 ‘똑똑한 TV’였다. TV로 소셜미디어에 접속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셈이기도 하다.
# 애플 끌어안은 삼성과 LG
묘하게도 CES에서 스마트 TV가 완전히 모습을 감춘 이후 TV는 더 쓸만해졌다. 목적이 OTT(Over The Top·인터넷을 통한 영상 전송) 재생으로 확실해졌고, 그 이상을 원하는 TV는 아마존이나 구글의 어시스턴트를 이용하면 됐다. 가전의 사물인터넷 결합은 음성 지원 어시스턴트와 함께 확실하게 이뤄졌고 TV에 들어간 운영체제와 앱들은 아주 매끄럽게 돌아갔다. 때로는 지나친 관심이 제품을 엉뚱하게 이끌어가기도 하는 듯하다.
어쨌든 TV와 스마트의 결합은 꽤 평화적으로 끝나가는 듯하다. 결국 서비스와 전송 규격 등은 억지로 해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장이 결정한 것을 서둘러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여러 표준이 더 개방성을 갖고 손을 잡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사물인터넷 규격과 음성 어시스턴트 서비스를 비롯해 규격이 세상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올해 CES의 TV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주요 TV 제조사들이 애플의 ‘에어플레이2’를 끌어안았고, 이를 홍보의 포인트로 삼았다는 점이다. 에어플레이2는 무선으로 콘텐츠를 전송, 캐스팅하는 기술이다. 애플이 2004년 무선 공유기에 3.5mm 단자를 심어 인터넷 공유와 함께 공유기마다 무선 인터넷으로 아이튠즈의 음악 콘텐츠를 전송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애초 이름은 ‘에어튠즈(AirTunes)’였다. 아이튠즈를 무선으로 보낸다는 뜻이다.
애플은 이를 조금 더 가다듬어 2010년 에어플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음악뿐 아니라 영상을 전송할 수도 있게 손봤다. 에어플레이는 애플TV 2세대를 통해 애플의 무선 전송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에 아이폰, 아이패드의 화면까지 직접 전송할 수 있게 되는 등 TV와 iOS 기기의 결합을 이끈 제품이기도 하다.
비슷한 기술은 많았다. 일단 삼성전자를 비롯한 TV 기업들은 자체전송 기술을 만들었고, 구글 역시 크롬캐스트를 비롯한 화면 캐스팅 기술을 넣었다. 인텔이 이끄는 WiDi도 있다. 이 기능들은 직간접적으로 TV에 들어갔지만 애플의 에어플레이는 스피커에만 들어갔을 뿐 TV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스피커들은 일찍이 더 나은 소리를 내기 위해 무선랜 기반의 에어플레이와 구글캐스트를 넣었다. 애플과 구글이 이 기술을 서드파티 기업들에게 라이선스했기 때문이다. ‘구글홈’이나 ‘홈팟’ 같은 스피커도 나오면서 블루투스 외에 무선랜을 이용한 음악 전송은 일반적인 일이 됐다.
애플은 무선기기가 확장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 에어플레이2를 내놓았다. 아이폰을 이용해 모든 장치에서 독립적으로 콘텐츠 재생이 되는 것이다. 관련 스피커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영상의 장벽도 허물어진 것이다. 애플TV가 없어도 화면을 전송할 수 있다. 음악, 영상 뿐 아니라 키노트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TV를 간이 모니터로 활용할 수 있다.
에어플레이와 아이튠즈는 애플의 콘텐츠 플랫폼인 아이튠즈 스토어, 그리고 애플뮤직을 재생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에 타 기기로 확장되는 데에 보수적인 면이 있었는데 TV에 기본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TV는 안드로이드와 아이폰, 그리고 PC와 맥을 더 이상 가리지 않게 됐다.
조금 늦긴 했지만 TV가 스마트해지는 요소들이 거의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더 필요한 게 뭐가 남았나 싶을 정도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의 개방에 있었고, 어떤 이유로든 그 흐름을 거스르는 대신 끌어안으면서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 화질 좋은 TV만큼이나 만족스러운 것이 ‘편리한 TV’ 혹은 ‘생각하는 대로 작동하는 TV’일 것이다. 역시 기술도 힘을 빼고 볼 일이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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