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부천의 한 동물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길고양이가 ‘의료사고’를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동물병원 원장의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동의자 수는 1만 명을 넘어섰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 동물병원은 소위 ‘캣맘’ 사이에서 믿을 만한 동물병원으로 소문나 있어 배신감이 더욱 크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동물병원 원장은 “의료사고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어 진실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물 의료사고를 둘러싼 분쟁은 해마다 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년간 소비자시민모임에 접수된 동물병원 관련 상담 중 ‘진료 중 폐사’와 ‘수술 부작용’ 등 의료 과정의 불만족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동물 관련 의료분쟁도 늘어나는 것. 그러나 현행법상 의료사고가 일어나도 동물 보호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동물 의료사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동물 의료사고가 일어나도 보호자가 속수무책인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동물 보호자가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수의사가 ‘진료부’를 보여줄 의무가 없기 때문. 현행법에 따르면 수의사가 직접 진료한 동물에 대해 진단서, 처방전 등의 발급을 요구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수의료행위 내역이 구체적으로 기재된 진료부는 의무 대상에서 빠져 있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은 다수 동물병원에서 진단서와 처방전까지 내놓지 않으려는 경우도 많다고 입을 모았다.
관련 지식이 부족한 동물 보호자들은 다른 동물병원 수의사를 통해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다른 수의사가 의견서를 작성해 입증을 해줘야 하는데, 선뜻 밝혀줄 수 있는 수의사를 찾기 어렵다.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소송 과정에서도 수의사가 입증을 해줘야 하는데 문제는 수의사들이 다 선후배 관계라는 것이다. 수의대가 각 도에 한두 개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람의 경우 의료사고가 생겨 소송하면 의료심사위원회를 통해 객관적으로 수술 행위를 입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동물 관련 의료사고는 아예 관할 기관이 없다.
부천 동물병원 사건 청원 글을 올린 조진형 씨가 민사소송을 아직 검토하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조진형 씨는 2016년 6월 길고양이 ‘노랭이’를 구조했다. 노랭이 나이는 현재 여섯 살로 추정된다. 구조 당시부터 상태가 좋지 못했다. 구내염이 심했고 왼쪽 신장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였다. 2016년 7월 노랭이는 조 씨의 도움으로 부천의 한 동물병원에서 아래턱 일부를 잘라낸 후 플레이트(나사)로 빈 공간을 메꾸고, 왼쪽 신장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을 받고도 노랭이의 상태는 더 악화했다. 턱을 고정하는 역할을 하는 나사가 계속 풀어졌고, 노랭이는 세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첫 수술을 받은 지 7개월 만에 나사를 다시 박는 수술을 진행했고, 2017년 4월에는 구내염이 자꾸 재발해 생니 아홉 개가량을 발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나사가 또 풀어져서 다시 수술실로 향해야만 했다.
많았던 수술 횟수만큼 예후는 좋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의 한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뼈는 벌어져 있었고 부러진 나사들이 뼈에 박혀 있었다. 현재로선 벌어진 뼈 사이에 인공 뼈를 이식하는 방법밖에 없는 상태. 그러나 이 수술도 쉽지 않다. 노랭이의 몸 상태가 어려운 수술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조 씨는 “온종일 피 설사를 하고 구토를 하고 있다. 수술 자체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노랭이는 턱이 돌아가 송곳니가 입천장을 찌르는 상태를 견뎌내고 있다.
이 병원의 전직 간호팀장 A 씨는 “전에도 정형 쪽으로 의료사고가 난 적이 한번 있었는데 환자 보호자가 나이가 있으셔서 그냥 넘어갔다”며 “나사의 성분은 티타늄이기에 쉽게 부러지는 성분이 아니다. 근데 이게 부러진 거면 수술하면서 드릴을 박으면서 부러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해당 동물병원에서 언제 의료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었다고도 주장했다. A 씨에 따르면 이 동물병원에서는 유통기한 지난 약물과 수액제를 사용했다. 유통기한 지난 약물과 관련해 여러 번 원장에게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A 씨는 수액을 재사용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는 “과거 항암치료를 받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그 고양이에게 투여했던 수액이 재활용됐고 이는 원장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 씨가 의료행위로 인해 일어난 사고임을 밝히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원장이 ‘의료사고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 ‘비즈한국’이 조 씨에게 입수한 녹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7일 병원 원장은 “오해가 심한 것 같다. (나는) 최선을 다 했다”며 “염증을 가라앉히고 추후 상황을 보고 다시 생각하자. 노랭이에 대한 모든 부분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12월 18일 동물병원 원장은 말을 바꿨다. 원장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며 “나사가 풀어진 게 아니라 부러진 것이니 의료사고는 아니다”고 밝혔다.
‘비즈한국’은 이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원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병원 관계자는 “휴무 중이어서 우리도 연락이 안 된다”며 “해드릴 수 있는 답변이 없다”고 답했다. 이메일을 통해 원장에게도 직접 연락을 취했으나 끝내 답을 들을 수 없었다.
# 동물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물건’으로 취급
사람 역시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환자가 직접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동물 의료사고는 환자가 말 못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의사가 하는 말에 전부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노랭이의 사례처럼 원장이 ‘의료사고가 아니다’고 맞설 경우, 동물 보호자가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물을 위한 법적 장치가 부실한 배경에는 우리나라에서 동물을 ‘권리의 주체’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민법 제98조에 따르면 동물은 유체물, 즉 ‘물건’에 해당한다. 그래서 사람이 의료사고를 당했을 때와는 달리, 업무상 과실치상·치사 적용이 불가능하다. 반면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동물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고 법률에 명시한 게 대표적이다.
동물 의료사고를 두고 입법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12월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수의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수의사가 직접 진료하거나 검안한 동물에 대한 수의료행위 내역이 구체적으로 기재된 진료부 발급을 요구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법률안은 여전히 국회에 표류 중이다. 임익상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개정 취지에는 긍정적 입장”이라면서도 “소유자의 이름과 주소, 치료방법 등이 기록된 진료부 공개에 따른 수의기술 및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2월 상정된 후 진전이 없다.
전문가들은 동물 의료사고에서 동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소연 동물보호단체 ‘케어’ 대표는 “반려인이 진료기록부를 요구하면 줘야 한다. 보호자에게 사전에 수술에 대해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며 “분쟁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서 수술실 CCTV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도 “사람에게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사고임을 입증하는 기관이 있는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수의사들이 자체적으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대응하는 매뉴얼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객관적으로 의료 사고를 입증할 제3의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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