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지만 실물을 확인한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이른바 ‘삼전도비’. 병자호란 때 인조가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 후에 청 태종의 공덕을 기려 세운 비석이다. 그리하여 정식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다.
아이에게 균형 잡힌 역사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항전의 상징인 남한산성뿐 아니라, 치욕의 상징인 삼전도비 또한 찾아봐야 한다.
삼전도비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송파대로에서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았으나 나무들 사이에, 그것도 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이 있었다. 둘러싼 철근 구조물도 보호보다는 은폐를 목적으로 한 듯 보인다. 그럴 수도 있다. 삼전도비는 처음 세워질 때부터 치욕의 상징이었으니.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인조가 비문을 지을 것을 명하였으나, 신하들은 이리저리 빼기에 바빴다. 인조의 읍소를 못 이긴 이경석이 비문을 지으면서 “글을 배운 것이 천추의 한이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대리석으로 만든 비석은 거북 모양의 받침 위에 비문을 세긴 몸돌을 세우고, 머리는 화려한 용 문양으로 장식했다.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하게 된 경위와 청 태종의 공덕을 찬미한 내용을 만주문자와 몽골문자, 한자로 새겼다. 삼전도(三田渡)는 섬이 아니라 한강의 나루터 이름이다. 이곳에서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했기에 비석의 별칭이 된 것이다.
# ‘치욕의 상징’ 삼전도비의 파란만장한 운명
건립 당시부터 치욕의 상징이었던 삼전도비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고 조선과의 조공관계가 단절되자 삼전도비는 한강에 던져졌다. 세워진 지 256년 만의 일이었다. 세월은 250년을 훌쩍 넘겼지만 당시의 치욕은 여전했나 보다. 하긴, 조선의 선비들은 당시까지도 청나라 몰래 명나라의 연호를 쓰기도 하고, 명나라 황제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는 등 나름의 정신승리를 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는 강물 속 비석을 찾아서 다시 세웠다. 그랬던 것을 1956년에 땅에 묻어버렸는데, 6년 뒤 홍수로 모습이 드러나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7년에는 누군가 삼전도비에 붉은 스프레이로 ‘철거’ 등의 글씨를 쓰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의 수사 결과 평소 역사에 관심이 있던 범인은 굴욕적인 유물을 철거해야 한다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굴욕적인 유물은 철거되어야 하며 치욕적인 역사를 잊혀야 하는 것일까?
치욕의 역사를 잊으면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된다. 치욕의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치욕을 불러온 원인과 잘못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대비도 없이 청나라를 도발한 인조의 무모함일 수도 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분명 선전포고를 했음에도 1년 동안이나 허송세월을 보낸 선조의 어리석음일 수도 있고,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고종의 권력욕일 수도 있다.
# 남한산성 항전의 실체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남한산성의 항전도 그리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 세계 최강이던 청나라 군대를 맞아 남한산성에서 50일 가까이 싸웠다는 것은 분명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청나라의 침공을 불러들인 무모한 외교정책뿐 아니라, 정묘호란을 거치면서도 뭐 하나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어리석음은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예컨대 조선은 청나라 12만 대군이 출병하고도 12일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때는 이미 청군이 평양을 지나서 한양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중이었다. 부랴부랴 강화도로 피신하고자 했으나, 이미 청군에 길이 막혀 할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남한산성의 항전이란, 무모함과 어리석음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 결과가 삼전도비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남한산성을 보았다면, ‘숨겨놓은’ 문화유산인 삼전도비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행정보
▲위치: 서울시 송파구 삼학사로 136
▲문의: 02)2147-3385(송파구 공원녹지과)
▲관람 시간: 상시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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