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직 싸늘한 겨울 날씨지만 조선업계에는 벌써부터 봄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조선업계는 전 세계 선박 발주의 무려 42%가량을 수주했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체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의 95% 이상을 따낸 게 원동력이다. 세계 조선업계가 점점 살아나는 것은 물론 선박 관련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올해도 우리나라로 선박 수주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일 현대중공업그룹(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은 우리나라 조선 ‘빅3’ 중 가장 먼저 전자공시를 통해 올해 목표 수주실적을 발표했다. 그룹 내 조선 3사의 올해 목표는 159억 달러(17조 7698억 원)로 지난해 목표 132억 달러(14조 7523억 원)보다 30%가량 높게 잡았다. 지난해 최종 수주 실적인 137억 달러(15조 3193억 원)와 비교해도 16% 높은 수치다.
그룹 목표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회사는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의 경영 목표는 117억 달러(조선 89억 달러·해양 19억 달러 등), 매출 8조 5815억 원 달성으로 그룹 전체의 75%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가삼현·한영석 현대중공업 공동 대표이사 사장 앞에 놓인 과제는 노사 문제 해결과 그동안 낮은 선박 수주 단가로 인한 손실 경영을 흑자 경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두 공동대표는 현대중공업의 ‘1등 항해사’가 될 수 있을까.
# ‘바깥 살림’ 영업의 가삼현 대표, ‘안살림’ 현장의 한영석 대표
가삼현·한영석, 두 대표는 1957년생으로 동갑내기다. 둘 다 현대중공업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뎌 역사를 함께한 ‘현대맨’이다. 현대중공업 내에서 둘의 역할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각자의 강점을 살려 가삼현 대표가 대외 업무와 영업을 맡고, 한영석 대표는 현장을 총괄하는 구조다. 둘은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공동대표지만 맡은 바에 대한 책임은 각자 진다”고 밝혔다.
가삼현 대표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해외영업차장을 지내다가 대한축구협회에 파견돼 16년 넘게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다. 2009년 현대중공업으로 돌아온 그는 선박영업부 상무를 맡았고, 2010년 전무를 거쳐 201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6년 사장으로 올라서며 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를 역임했다. 가 대표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겸비한 것은 물론 오랜 기간 영업 업무를 맡아 교섭 능력이 상당하다는 평을 받는다.
한영석 대표는 충남대학교 기계공학과를 나와 현대중공업과 연을 맺었다. 선박 설계와 건조를 잘 아는 전문가로 꼽힌다. 설계 엔지니어 시절, 선박 건조에 문제가 생기면 선주들이 한 대표부터 찾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한 대표는 설계 및 생산본부장을 역임한 뒤 2016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로 부임한다. 부임 후 현대미포조선을 3년 연속 흑자로 이끄는 한편, 노사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었다. 3년 동안 노사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하지 못한 현대중공업에 필요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다.
취임 후 두 달여 공들였던 한 대표의 노력이 최근 결실을 보는 듯했다. 지난 12월 현대중공업은 노동조합과 임단협에 잠정 합의를 했다고 발표한 것. 한 대표는 취임 당일에 가장 먼저 노동조합을 방문해 면담했다. 이후 한 대표는 30년 만에 노사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을 폐지하는 등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진행되던 교섭을 매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노사는 화해무드로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지난 12월 31일 ‘노조는 사업 분할, 지주사 전환, 오일뱅크 사업 운영 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두고 씨름하던 노사는 결국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한 대표가 대표 취임 이후 공을 세울 첫 기회를 놓친 셈이다.
# 구조조정 발판 삼아 흑자전환 목표…“새로운 선종 준비도 철저히”
세계 조선업계는 침체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2007년 5252척에 달했던 세계 선박 발주량은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2009년 1258척까지 하락했고, 2013년 3052척으로 회복세를 보였다가 2016년 629척으로 바닥을 찍었다. 이후 조금씩 회복세를 보여 지난해 1322척 발주가 이뤄졌고, 점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도 이에 발맞춰 작년과 비교해 목표 경영실적을 높여 설정했다. 그룹 전체가 아닌 현대중공업만 놓고 봤을 때, 현대중공업은 올해 수주 목표액을 117억 달러(13조 981억 원)로 설정해 지난해 102억 달러(11조 4189억 원)보다 15%가량 상향했다. 매출액은 8조 5815억 원을 목표로 한다.
매출액 달성은 무난해 보인다. 다만 영업이익률 개선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최근 5년간 실적을 살펴보면, 2014년 매출액 52조 5824억 원 영업손실 3조 2495억 원, 2015년 매출액 46조 2317억 원 영업손실 1조 5401억 원을 기록하다가 2016년 매출액 22조 3004억 원 영업이익 3915억 원, 2017년 매출액 15조 4688억 원 영업이익 146억 원으로 간신히 흑자 기조만 유지한 상태. 2018년 매출액은 12조 8815억 원 영업손실 3306억 원으로 전망된다.
두 공동대표는 지난 3일 신년사를 통해 이러한 문제 인식을 드러내며,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개선 의지를 보였다. 그들은 “공급 과잉이 여전한 상태에서 선박 발주는 제한적이어서 선가 인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후판 등 원자재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세와 함께 고정비 부담이 늘고 있어 원가 절감이 생존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LNG 운반선과 셔틀탱커 등에 집중하며 새로운 선박 기술 개발 의지도 드러냈다. 두 대표는 “구조 최적화 설계와 공법·공정 개선, 전략적 기자재 구매 등을 추진해 생산성을 높이고 공기를 단축하는 동시에 자재비를 절감하겠다”며 “많은 LNG선을 건조함에 따른 공정 관리 강화와 함께 셔틀탱커 등 새로운 선종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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