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헌법에 표현의 자유라는 안전판은 존재하지만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평범한 시민이 권력자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문제에 관해 학력·성별·직업과 무관하게 누구나 두려움 없이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공적 영역에 관련한 문제라면 더욱 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직사회 내부에서 폭로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국민이 더 경청해야 하며 정부의 해명을 듣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나서서 사법당국의 힘을 빌리는 것은 침묵을 강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명박(MB) 정부의 ‘미네르바 사건’이나 박근혜 정부의 ‘정윤회 문건’ 같은 경우는 정부의 해명과 설득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공론의 장이 마련되기보다는 공권력이 나서 입을 막고 귀를 닫으려고 했다. 그 결과가 정권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가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청와대가 지난해 KT&G와 서울신문 사장 선임 과정에 개입했고 4조 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내용을 즉각 모두 부인했다. 그리고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일부에서는 학원 강사로 새 출발하려는 신 전 사무관의 노이즈마케팅이라고 폄하하거나, 심지어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가 “돈 벌러 나온 것”이며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하고… 가증스럽다”고까지 비난했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동기보다 폭로 내용의 진위다.
물론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상당 부분 과장되었거나 오해로 빚어진 내용일 가능성도 높다. 그런데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나 대학입시와 관련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검찰에 고발하고 나서는 모습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최소한 신 전 사무관이 폭로한 KT&G 사장 인사와 관련된 문건이 존재하고 적자국채 발행을 논의했었다면 정부는 이를 국민에게 해명하고 설득하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시시비비가 가려지는 것이 현 정권이 추구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공직사회 내부자의 폭로는 이로 인한 국정 혼란보다는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일방적인 지시복종관계가 아닌, 건설적인 논의 과정에 힘을 실어주는 장점이 훨씬 우월하리라고 믿는다. 신 전 사무관은 자살소동을 벌이면서 남긴 유서를 통해 ‘내부고발을 인정해주고 당연시 여기는 문화, 정책결정 과정을 국민들에게 최대한 공개하는 문화’를 소망했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과장되었거나 오도된 것이 밝혀지면 당연히 그는 평생 도의적 책임을 짊어지고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그가 간절히 소망했던 두 가지 문화는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법리적으로도 정부의 주장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대법원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이란 “실질적으로 그것을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비밀의 누설에 의하여 위협받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할수록 직무상 비밀누설 자체가 없었다고 자인하는 모양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신 전 사무관에 대한 고발을 취소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현 정권이 과거 권위주의 시절과 진정한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제2, 제3의 신재민이 있는 나라가 없는 나라보다 더 건강하고 투명하다고 확신하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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