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은 더 이상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1위 국가가 아니다. 2000년대 초 삼성·LG디스플레이의 적극적인 투자 확대로 일본을 꺾고 10여 년간 세계 1위를 고수했으나, 2017년부터 중국에게 추월당했다.
시장조사기관 시그메인텔에 따르면 중국 징둥팡(京東方·BOE)은 지난해 3분기 1460만 대의 TV 패널을 출하해 세계 최대 LCD TV 패널 공급업체 지위를 이어갔다. 이 기간 LG디스플레이의 출하량은 1228만 대로 3위 대만의 이노룩스(1200만 대)를 간신히 제치고 2위를 지켰다.
BOE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브라운관(CRT)형, 모니터 등 컴퓨터 주변기기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었다. 중국 정부가 디스플레이를 집중 육성 산업으로 꼽고 2014년부터 대규모 투자 지원에 나서며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BOE의 패권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생산량이 많고 제조원가가 워낙 싼 데다 한국보다 한발 앞선 8.5세대, 10.5세대 공장을 운영 중이라서다. LCD 생산 공장의 세대가 높다는 것은 간소한 공정으로도 더 수율이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BOE는 앞으로 고세대 공정의 제품 생산량을 더욱 늘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한국 디스플레이 회사의 공정은 주로 7~8세대로 이 공정의 생산량 비중은 삼성디스플레이 80%, LG디스플레이 90%에 달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국내 기업들의 대응이 미온적이다. 중국을 쫓아 차세대 공정을 증설하거나, 생산 설비의 대대적 변경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기업들은 중국과의 치킨 게임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게임의 판을 바꿀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현재 생산량 측면에서 시장 주도권은 중국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증산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밝혔다.
실제 BOE·차이나스타 등 중국 업체들이 올해부터 대대적인 증산을 통한 경쟁사 고사 전략에 나서고 있다. 차세대 공장의 준공이 속속 완료되면서다. 지난해 3분기 50인치 이상 대형 패널 출하량은 전기 대비 45% 증가하는 등 전반적인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생산량이 늘면서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위츠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32인치 LCD 패널 가격은 45달러로 6.3% 급락했고, 55인치 패널도 141달러로 2.1% 하락했다. 디스플레이 가격은 2019년 내내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고, 2000년대 초 반도체 시장처럼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IHS마킷에 따르면 전 세계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수요 대비 과잉 생산능력은 2017년 13.8%에서 2018년 16.2%로 커졌고 올해는 20.7%로 높아질 전망이다. 국내 업체들은 이런 중국의 공세에 맞불을 놓는 것이 현실적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LCD패널 설비업체 관계자는 “12K의 고화질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제품 생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반대편에서는 중국과의 경쟁 구도에서 과연 시장성이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업체들의 선택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의 사업 전환이다. LCD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고부가가치 상품을 늘리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전략이다. 실제 LG디스플레이는 10.5세대 LCD 공장 증설을 포기하고 8.5세대 OLED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파주 신공장 P10의 주력 생산품도 OLED로 가져가기로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8세대 LCD 패널 생산라인을 단계적으로 퀀텀닷(QD)-OLED 패널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증산에 나서는 2019년을 국내 기업들은 OLED로의 전환의 해로 꼽은 것이다.
OLED는 글로벌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시장 비중이 60%를 넘어서는 등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CD 사업의 출구전략 시행과 앞선 기술 경쟁력을 통한 새 부가가치를 만드는 제품으로의 시프트가 현재 가장 큰 과제”라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에 중국도 발 빠르게 쫓아오고 있지만, 당분간 기술 격차는 메우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 BOE의 경우 첫 OLED 공장의 수율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지난해 4분기 세 번째 OLED 공장 건설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투자는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OLED 제조 설비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많은 공정을 국내 설비 업체들에게 의존하고 있는데, 일정 기간 설비를 공급받지 못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설비 업체들은 삼성·LG디스플레이 등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있어 중국 설비 수출이 안 되고 있다. 통상 국내 투자가 이뤄지는 2~3년은 중국에 제품 수출을 할 수 없다”며 “OLED 분야에서는 한동안 한국이 기술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을 지켜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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