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3기 신도시’ 발표 이후 남양주 왕숙지구 주민 반발이 거세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남양주 시민 300여 명은 남양주시청 앞에서 ‘남양주 왕숙 1, 2지구 수용 반대 투쟁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지역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자영업자들을 대책 없이 몰아내는 강제 수용에 결사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19일 국토교통부는 ‘제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및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3기 신도시’ 입지를 공개했다. 남양주(1134만㎡, 약 343만 평), 하남(649만㎡, 196만 평), 인천 계양(335만㎡, 101만 평), 과천(155만㎡, 47만 평) 등 서울 경계로부터 2km 이내 지역이 선정됐다.
남양주의 경우 진접·진건읍 일원인 왕숙 1지구(889만㎡, 269만 평)에 공공주택 5만 3000호, 양정동 일대인 2지구(245만㎡, 74만 평)에 1만 3000호 등 총 6만 600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남양주시 도시개발과에 따르면 현재 왕숙 1지구와 2지구의 개발제한구역 면적은 각각 전체 면적의 96.3%(857만㎡), 90.2%(221만㎡)다. 국토부는 왕숙 1지구를 스마트그리드 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중심도시로, 왕숙 2지구는 MICE(Meeting, Incentive trip, Convention, Exhibition&Event) 산업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중심도시로 키울 예정이다.
이 같은 개발 호재에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비즈한국’이 3기 신도시 예정지인 남양주시 왕숙 1지구를 찾아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 도시 근교농업 활발…서울서 멀어지면 지리적 이점 사라져
“조상 대대로 여기서 농사를 지었는데 남양주 토지 전체를 갈아엎으면 우린 대체 어디로 갑니까?”
27일 오전 11시경 남양주시 진건읍 진관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시청에 낼 ‘3기 신도시 반대’ 의견서를 작성하던 임 아무개 씨(55)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임 씨는 1990년 대학 졸업 이후 줄곧 남양주에서 난초 농사를 지었다. 일전에 일궜던 진건읍 배양리 농지가 다산신도시 택지에 포함되면서 토지를 팔고 진건읍 진관리로 농지를 옮겼다. 규모는 1800평에서 1400평으로 400평 줄었다. 임 씨의 농지는 또다시 왕숙 1지구 신도시 예정지에 포함됐다.
임 씨는 “농업의 기본은 땅인데 매번 개발한다고 쫓아내고, 주변 땅값은 두 배, 세 배로 뛰어버리면 농사는 어디서 짓느냐”며 “이곳에서 자라 생활도 남양주에 맞춰져 있는데 여길 떠나면 사람 구실 못할 것 같아 잠도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왕숙신도시 예정지 원주민 중 상당수는 임 씨처럼 농사를 짓거나, 물류창고를 운영 또는 임대한다.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생계다. 신도시가 들어설 자리에서 생업을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다.
노후 생활을 보내기 위해 20년 전 이곳에 850평의 농지를 산 A 씨(58)는 3년 전 회사를 은퇴하고 이곳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A 씨는 “이곳에서 콩이나 깨, 열무 등을 재배해 판매하는데, 오래전부터 꿈꿔온 노년 계획이 깨지게 생겼다”며 “계획을 철회하면 가장 좋겠지만, 추진한다면 보상을 현실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무허가 물류창고 운영자들에겐 날벼락
물류창고를 운영 또는 임대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조금 더 복잡하다. 정부는 개발제한구역에 물류창고를 지었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수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개특법)’에 따르면 개발제한구역 내에는 법령에서 정한 건축물만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주민 다수는 ‘동물 및 식물 관련 시설’ 등으로 허가를 받아 건물을 지은 뒤, 이를 물류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남양주시 개발제한구역관리팀에 따르면 올해 신도지 예정지(진접읍·진건읍·양정동)에서 개특법 위반으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 건물은 227개다. 2017년에는 이행강제금 부과 건수가 405건에 달했다.
이덕우 남양주시 그린벨트 주민대책위원장(66)은 “주민 대다수가 연로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창고를 짓고 살길을 찾는다. 평당 100만 원이 넘는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재산세 내기 벅찬 것이 현실”이라며 “48년 동안 일대를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어놓고 화장실 한두 평만 지어도 이행강제금을 내라고 하더니, 이제 이행강제금을 갚을 길마저 막아버렸다”고 하소연했다.
남양주시 진건읍 신월리에서 농산물유통업에 종사하는 손 아무개 씨(53)는 “우리 건물은 개특법에 저촉돼 이행강제금을 분할납부하고 있다. 과태료를 내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당장 보상 받고 나가라고 하면, 공장 지으면서 빌린 돈과 이행강제금은 어떻게 갚냐”고 반문했다.
손 씨는 “남양주가 아무리 베드타운이라고 해도 우리는 사람을 고용해 일하고 있다. 직원은 7명, 거래처는 35곳, 우리에게 납품하는 농가는 50개소”라며 “수도권에 가까운 교통요충지라서 가능한 일이었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면 사람을 대폭 줄이거나 사업을 접어야 한다. 신도시에 대기업을 유치해 고용을 창출할 게 아니라, 중소기업·영세기업에 이미 다니는 사람부터 구제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신월리에서 40년째 시설 하우스 농사를 짓는 윤 아무개 씨(61)는 2년 전 농지 1000평 중 400평에 물류창고를 지었다. 윤 씨는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것 같아 2억 원을 들여 창고를 짓고 임대를 냈다”며 “현재 이행강제금 3억 5000만 원이 예고된 상황인데 돈 벌 시간도 안 주고 수용을 하겠다니 답답하다”며 “돈 문제를 떠나 고조할아버지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것도 부모님께 죄스럽다”고 한탄했다.
# 턱없이 낮은 토지보상액 우려 목소리 커
토지보상액에 대한 우려도 크다. 남양주시 진건읍 진관리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이전 신도시를 보면 현 시세로 보상을 잘 해주지 않는다. 이곳 주민들은 낮은 보상액으로 양도소득세, 이행강제금, 건물 지으려 받은 대출금까지 어떻게 낼지 걱정이 태산이다”고 전했다.
진관리에서 농사를 짓는 B 씨(72)도 “얼마 전 진관리에 도로를 깐다고 시에서 토지를 평당 180만 원에 샀는데 현 시가는 400만 원 수준”이라며 “그런 방식으로 땅을 사 가면 우린 100평 팔아서 다른 지역 50평도 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업시행자는 감정평가업자 3인을 선정해 토지 평가를 의뢰한다. 보상액은 각 감정평가업자가 평가한 평가액의 산술평균치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해당 토지를 관할하는 시·도지사와 토지소유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감정평가업자를 1인씩 추천할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상가액은 통상 공시지가의 150% 이상, 지역에 따라 많게는 200%를 넘는 경우도 있다“며 “토지 보상가액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 주민의 반발을 예단하긴 어렵지만 주택 공급을 하면서 발생하는 피해나 반발을 줄여가는 것이 신도시 사업의 관건이다”고 말했다.
현재 남양주시는 왕숙 1, 2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위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다. 국토부는 환경영향평가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내년 하반기 지구지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듬해엔 지구계획을 수립해 보상에 착수하고 2021년에 주택 공급을 시작한다.
주민 반발에 대해 남양주시청 도시개발팀 관계자는 “토지보상법에 따라 토지 보상은 ‘현 시세 보상’을 원칙으로 한다. 감정평가사가 주변 거래내역과 보상 선례 등을 고려해 보상금액을 산정한다. 개특법과 농지법에 따른 이행강제금 부과는 법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토지가 수용된다고 해서 임의적으로 조정할 순 없다”며 “남양주시는 토지 소유주에게 적정하게 보상을 하고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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