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0월 24,270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일본 닛케이지수가 지난 25일 하루 동안 5% 넘게 급락했다. 전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등 미국 증시 역시 2%대의 하락률을 기록하는 등 주요국 증시는 ‘검은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간에 국경장벽 예산 합의가 접점을 못 찾아 미 정부의 셧다운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그러나 이튿날 닛케이지수는 171포인트 오르며 반등에 성공했다. 27일에는 750.56포인트 급등하며 25일 하락분 대부분을 복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은 “일본 증시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배, 주가수익비율(PER)은 10배에 불과하다”며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이 저평가된 점을 반등의 원인으로 꼽았다. PBR은 순자산 대비 주가의 비율이며, PER는 현재 시가 총액이 연간 순이익의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PBR·PER가 낮으면 주가가 저평가, 높으면 고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은 어떨까. 코스피 역시 글로벌 증시와 마찬가지로 갑갑한 약세장을 이어가고 있다. 니케이가 지난 이틀간 4.8% 오르는 사이, 코스피는 1.31% 떨어졌다. 특히 미국·일본 증시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가도 다시 반등하는 것과 달리 한국 증시는 등락의 진폭이 작고 전반적으로 우하향하는 추세다. 지난 6거래일간 하루 등락률은 0.57%에 불과했다. 큰 폭의 매수나 매도 없이 지지부진한 흐름이다.
한국 증시도 저평가돼 있기는 일본과 마찬가지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코스피의 PBR은 0.89배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폭락했던 2008년의 0.85배와 비슷한 수준이다. 코스피 전체 상장사의 순자산 장부가치가 100조 원이라면 현재 시장의 평가액은 89조 원에 불과하단 뜻이다. 지난 20년간 코스피 평균 PBR이 1.16배였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PER도 그렇다. 한국의 PER은 9배 수준으로 일본은 물론 신흥국 평균 13~14배에 비해 크게 낮다. PER이 9배라는 것은 현재 시가총액이 기업의 9년 영업이익과 같다는 뜻이다. 13~14년을 벌어야 현재 시가총액만큼 벌 수 있는 신흥국에 비해 한국 기업의 어닝파워가 훨씬 강한 셈이다. 신흥국 중 PER이 10배 아래인 나라는 많지 않음에도 유독 한국 증시의 PER는 낮은 편이다. 대신증권의 지난 6월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증시(MSCI AC World Index)의 12개월 선행 PER은 16.33배인 데 비해 한국은 8.76배로 절반 수준이었다.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북한에서 비롯된 지정학적 리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됐지만 금융시장에서는 북한을 여전히 ‘불량국가’로 취급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외교·안보 노선을 한국의 리스크로 본다. 특히 최근 북한의 경제 제재가 직면한 점과 남북, 북미 대화가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진 점도 증시에 악재로 작용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남북 화해무드로 평화 체제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높아졌지만 한국과 북한, 미국 간에 대화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저변에 깔린 데다 회담에 진전이 없을 때마다 나오는 실망감이 증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만약 지정학적 위험이 해소된다면 외국인 자금유입에 따른 코스피와 원화가치는 5% 안팎 상승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란 등 투명하지 못한 기업 지배구조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그룹 승계 작업의 한 축이었다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종 전체적으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벌처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세로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승계 작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국내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승계를 이어간다는 인식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퍼지며 단타 매매 자금의 표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기업의 리더십이 확보되지 않은 가운데 불투명한 경영 체제 등이 한국 증시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코스피가 10년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에 편입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전체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국내 증시를 이끌어온 반도체·정유·화학·자동차·조선 등은 대부분 수출 주력 산업이기에 무역전쟁에 따른 피해가 클 것이란 관측이 반영되며 주가가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수 부진과 대중관계 경색이 해소되지 않으며 유통·통신 등 경기방어주 역시 주가가 지지부진했다.
주가는 경기에 선행해 움직이기에 당장의 실적보다는 향후 전망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실적은 양호하지만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국내 기업들은 배당성향도 해외 기업에 비해 낮아 투자 매력도가 낮다. 2001~2017년 국가별 평균 배당성향은 코스피가 16.7%로 유럽(65.8%)·미국(47.1%)은 물론 일본(32.2%)에도 한참 못 미친다. 남미신흥국(48.4%), 아시아신흥국(32.8%), 유럽·중동·아프리카신흥국(27.6%)보다도 크게 낮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이월적립금을 쌓기 위해 낮은 배당 성향을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인 투자자로서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한국보다는 신용도는 떨어지지만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 증시가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대신증권은 보고서에서 코스피 저평가의 원인별 비중을 ‘경제·산업 구조 차이’ 12.7%포인트, ‘기업 지배구조’ 12.7%포인트, ‘낮은 배당성향’ 10.2%포인트 등으로 평가했다.
또 브라질 채권 등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7~8%의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기에 코스피 투자 유인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코스피가 2011~2014년 기업들의 호실적에도 ‘박스피’를 벗어나지 못한 것도 외국인 투자자금이 한국 대신 신흥국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코스피가 이머징에서 벗어나 선진 증시로 도약하려면 상장사들의 경영의 투명성과 미래 먹거리 투자를 늘리는 한편 파생상품 시장 개방 등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한국과 선진국 간 기술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중국 등 신흥국이 부상하고, 노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용 증가, 오너·규제 리스크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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