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 사회가 과거에 비해 훨씬 불평등해졌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 통계만 보더라도 상위 20% 가구와 하위 20% 가구 사이에 소득 격차가 나날이 확대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지를 두고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과 유럽의 정부 지출 격차가 될 것이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복지국가의 정치학’에서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 등은 유럽과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대단히 다른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EU(유럽연합) 회원국의 일반 정부지출은 평균은 GDP(국내총생산)의 약 45%이고, 영국은 37%, 스웨덴은 52%다. 이에 비해 미국의 일반 정부지출은 이들 어느 나라보다도 작아서 GDP의 30%가 채 되지 않는다. 여기서 일반 정부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모두 포함한다는 뜻이다. -책 50쪽
위 그래프는 2015년 기준인데, ‘복지국가의 정치학’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GDP 대비 일반 정부지출 비중은 37%.4%로 여전히 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국에서 낮은 편에 속한다. 참고로 한국은 32.3%로 칠레와 아일랜드 다음으로 낮으며, 가장 상위권에는 핀란드와 프랑스 덴마크 등 유럽국가들이 포진해 있다.
이제 조금 더 이야기를 진전시켜, 미국은 왜 정부지출이 적으며 반대로 유럽 국가들은 정부지출이 많은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로머 등(1975)이 제시한 유명한 모델의 분석 대상은 매우 단순한 소득 재분배 정책이다. (중략) 이 모델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중위투표자를 상정해보자. 중위투표자란 능력 및 소득 사다리에서 그의 위로도, 그리고 그의 아래로도 50%의 인구가 있는 투표자를 뜻한다. 현실의 소득 분배에서는 언제나 중위투표자가 평균 투표자보다 가난하다. -책 100~101쪽
이건 당연한 일이다. 사회가 완전히 평등하지 않는 한, 중위소득자의 소득 수준은 사회 평균보다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중위투표자는 증세에 찬성할까 아니면 감세에 찬성할까?
로머 등(1975)은 중위투표자가 (소득에 따라 세금이 비례적으로 결정되는 환경에서) 평균 세액을 납부하는 투표자보다 가난할 것이기 때문에, 중위투표자는 당연히 세금의 인상에 찬성할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세금이 인상될 경우, 중위투표자가 (정부로부터) 지급 받는 이전소득이 납부한 세금보다 크기 때문이다. -책 101쪽
소득이 늘어날 때마다 세금이 늘어나는 체제에서, 세금이 늘어날수록 ‘부유한 사람에게서 가난한 사람으로’ 이전 소득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 나아가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중위소득을 지닌 사람은 세금을 인상하려는 정치가들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왜냐하면 증세에 따른 수익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압도적으로 소득불평등이 심한데도 정부의 지출은 낮다. 아래의 그래프는 2017년 기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 국가의 지니계수를 보여준다.
지니계수란 소득불평등 수준을 측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로,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한 반면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0.39를 기록해 터키나 칠레만큼이나 불평등한 것으로 나타난 반면,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 아일랜드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이보다 훨씬 낮았다.
결국 미국 사람들은 유럽보다 훨씬 불평등한데, 정부의 지출을 늘리는 것에 별다른 흥미가 없는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복지국가의 정치학’의 저자들은 크게 세 가지 가설을 제기한다.
첫째, 소득이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충분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고, 따라서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소득 재분배를 얻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중략)
둘째, 나라마다 소득을 재분배하는 정책 수단이 다를 수 있는데, 나라들 간의 비교 분석에서는 이러한 복잡성을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중략)
셋째, 측정된 지니계수는 불평등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지표가 되지 못한다. -책 103~104쪽
사회과학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직관적으로 볼 때에는 지극히 당연한 듯한데 정작 현실에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또 현실에서 이 직관이 들어맞지 않는 이유를 판단하는 것조차 힘드니까.
다시 한국 ‘가계동향조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렇듯 논란이 불거진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국이 얼마나 불평등한지, 더 나아가 어떤 인구집단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돈과법] 민간인 사찰 의혹, '정석'으로 나아가라
·
2018년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 뒤돌아보니…
·
[홍춘욱 경제팩트] 2018년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까닭은?
·
[홍춘욱 경제팩트] 장단기 금리차 역전되면 불황이 온다?
·
[홍춘욱 경제팩트] 반도체 말고도 한국 주식에 '별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