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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초등학교 '국책사업' 강아지가 결국 분양되는 사연

밤엔 컴퓨터실, 주말·방학엔 학생 집 전전…학교 '관리소홀' 농진청·농업기술센터는 상황 파악 못해

2018.12.22(Sat) 21:09:24

[비즈한국] 초등학교에서 강아지를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1년짜리 국책 시범사업이 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시범사업 종료가 되자마자 강아지를 못 키우겠다며 분양 받을 학생을 찾아 나섰다. ​1년 사업이라 예산도 더 이상 지원되지 않고 강아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으니 더 이상 학교에서 키우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울산시 명덕초에서 길러지던 강아지들은 최근 분양 절차를 밟고 있다. 사진=명덕초 홈페이지


울산시에 있는 명덕초등학교는 올해 농촌진흥청에서 진행하는 ‘학교멍멍 사업’에 참여했다. 학교멍멍 사업은 도시의 초등학교 및 특수학교에서 염소(학교음매)·강아지(학교멍멍)·토끼(학교깡총) 등을 기를 수 있게 하는 ‘도시밀착형 동물농장 모델 적용 시범사업’의 일환이다. 2017년에 이어 올해가 2회째. 올해는 명덕초를 비롯해 전국에서 네 학교가 사업대상학교로 선정됐다. 사업에 참여하는 학교는 국가(농촌진흥청)와 지역(농업기술센터)으로부터 1500만 원씩을 지원받는다. 농촌진흥청은 반려동물을 통한 학생들의 심리적 치유를 확대해 전 사회적으로 반려동물 산업의 긍정적 효과를 확산하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런데 최근 ​시범사업 종료 직후 학교 측에서는 더 이상 강아지를 키우기 어렵다며 분양 받을 학생을 찾아 나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주말·​방학에 학생 집 전전, 강아지들 '가출'하기도

 

올 5월 16일, 명덕초에서는 4개월령 비숑프리제 명이와 덕이의 입학식을 열었다. ​야외에는 지원금 600만 원을 받아 지은 견사가 마련됐다. 하지만 명이와 덕이는 주로 4학년 한 학급에서 지냈다. 이동 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교무실로 옮겨졌고, 학생들이 하교한 뒤에는 학교 컴퓨터실 안쪽의 빈 공간에서 지냈다. 학교 관계자는 “도난 위험 때문에 견사에 둘 수가 없었다. ​물과 사료를 이 공간에 넣어줬고, 경비원이 있기 때문에 문제 없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하교한 뒤 명이와 덕이는 학교 컴퓨터실 안쪽의 이 공간에서 지냈다. 사진=김명선 기자

 

이 학급의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강아지들을 주로 돌봤지만, 명확히 지정된 전담 관리자는 없었다. 강아지들은 주말과 방학이면 학생들의 집을 전전해야 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가출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명이, 덕이와 한 교실에서 지냈던 학생들 대다수는 “주말에 강아지들이 돌봐주던 학생 집에서 탈출한 적이 있었다”며 “친했던 명이와 덕이가 서로 싸우기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2월 11일, 학교는 학생들에게 안내문을 전달했다. 두 강아지를 분양하기로 결정해서 분양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인 덕이가 계단에서 마주친 학교폭력위원회 관련자를 물었고 이후 선생님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분양 얘기가 오갔다는 것. 

 

명덕초는 ‘학교멍멍’ 시범사업이 끝난 최근 명이와 덕이를 분양하기로 결정하고 통신문을 보내 분양 신청자를 찾고 있다.


명이와 덕이가 분양 절차를 밟게 된 배경으로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학교의 부실한 관리와 관계 기관의 관리 감독 소홀이다. 

우선 학교는 학생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명이와 덕이를 분양받았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교장과 학급 담임교사가 퇴근할 때마다 강아지를 데리고 가기로 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향미 명덕초 교장은 “우리 집에는 취업준비생인 아들이 있고, 선생님 가족 중에는 강아지를 안 좋아하시는 분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학교 측은 강아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분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분양을 보내는 것은 강아지들의 행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박 교장은 “사업을 하기 전에도 (강아지가 스트레스 받는 문제에 대해) 고민은 있었다. 그런데 주치의가 ‘강아지는 강아지다. 너무 떠받들지 마라. 편하게 생각해라’고 말해줘서 정말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주치의는 예방접종과 동물매개 교육프로그램을 추진하기로 울산농업기술센터와 사업 계약을 맺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이 동물병원은 900만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 농촌진흥청(농진청)​과 실무를 담당한 울산농업기술센터도 책임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두 기관은 기자가 확인을 요청할 때까지도 학교가 강아지를 분양하려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학교로부터 중간중간 강아지 상태를 보고받았다고 했지만, 명이와 덕이의 정확한 상태를 알지 못했다. 긴밀한 모니터링으로 개 복지와 관리를 더욱 챙기겠다던 애초의 방침은 지켜지지 못한 셈이다.​​​​​

 

또 강아지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에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농진청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여러 군데 돌아다니며 생활하면 강아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며 “사람과 잘 적응할 수 있는 활발한 견종(비숑)을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2019년부터는 강아지 사업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명이 덕이가 학생들과 야외 견사에서 산책하는 모습. 학교 관계자와 학생들은 명이와 덕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사업을 추진한 농촌진흥청과 울산농업기술센터는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진=김명선 기자


상급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반응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사업을 따낸다든지 예산을 관리하는 건 농촌진흥청에서 자체적으로 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기자가 현재 상황을 설명하자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명덕초등학교를 관할하는 교육부와 울산교육청은 해당 사업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초등교육 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관계자는 “그런 사업은 환경부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교육부에서 아는 사업은 없다”고 말했다. 울산시교육청은 사업을 알고는 있지만 진행 상황은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우리가 지원을 하는 사업이 있고 학교 개별적으로 하는 사업이 있는데 그 사업은 후자인 걸로 안다”며 “아직 결과를 보고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 “​반려동물 치유 가치 입증”​​ 국립축산과학원​ '행안부장관상' 수상

 

‘비즈한국’의 취재 이후 명덕초의 입장은 조금 달라졌다. 20일 오후 박향미 교장은 “울산농업기술센터와 다시 이야기했다. 개가 학생 집에서 아예 사는 게 아니라 교감 교육을 위해 최소한 5년 정도는 학생들이 강아지를 돌볼 수 있게 하기로 했다”며 “우리는 강아지를 분양 보내면 안 된다는 걸 몰랐다. 개집(견사)만 5년 유지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울산농업기술센터는 전달 오류가 있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학교 측이 사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기술센터 관계자는 “최소 5년간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고 처음부터 말했다”며 “1년간 시범사업을 해보고 사업이 괜찮은 경우 이후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해서 하도록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원금 600만 원을 들여 지은 명이와 덕이의 견사. 학교멍멍 사업과 명이, 덕이 소개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김명선 기자


명덕초와 울산농업기술센터는 아직 후속 대책을 협의 중이다. ​그러나 분양이 되더라도 명이와 덕이의 상황이 크게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교장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강아지들이 밤에 학교에 있었지만 앞으로는 분양 받은 학생이 하교하면서 강아지를 집에 데려갔다가 다음날 등교할 때 다시 학교에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방식이 도입된다. 이것을 수행할 수 있는 학생이 있을 경우 분양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적격자가 없으면 명이와 덕이는 앞으로도 4년 더 학교에서 생활하거나 학생 집을 전전해야 한다. 

 

동물단체는 이 사업의 발상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정부 돈으로 동물 전시사업을 하는 셈이다. 올바른 반려문화가 정착돼야 하는 시점에서 이 정책은 동물과 반려하는 옳은 방식이 아니다​”며 ​“농촌진흥청과 농림축산식품부의 이번 예산 편성을 보면 ‘동물 보호’​​를 위한 예산보다​ ‘​반려동물 산업 육성’​​을 위한 예산이 많다. 전국의 유기견보호소 등 정말 필요한 곳이 아닌, 쓸데없는 프로그램에 돈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에서 입양해 시청 정문 옆에서 살던 래브라도리트리버 종 ‘​행복이’ 사례를 들면서 행복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

 

한편 지난 11월 30일 이 시범사업을 이끈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은 ‘2018년도 책임운영기관 서비스혁신 공유대회’​에서 행정안전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반려동물이 주는 치유의 가치를 학교 현장에 접목하고, 그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이유다.

울산=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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