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직장인 A 씨. 최근 고민 끝에 이 지역에서 집을 사기로 마음먹고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들렀다가 금방 발길을 돌렸다. 지난해 전세로 입주했을 때보다 주변 시세가 많게는 8억 원까지 치솟았고, 심지어 일부 아파트는 지난달 거래된 가격보다도 3000만 원가량 높았다. A 씨는 “최근 서울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는 뉴스를 보고 ‘이제야 집을 살 수 있겠구나’ 했는데 당황스럽다”며 “이런 상황에서 서두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집값이 고공행진을 멈추고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 수요자들 사이에선 체감할 수 없다는 푸념이 나온다. 여전히 문턱이 높아 ‘똘똘한 한 채’나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은 남의 일이라는 반응이다.
서울 집값은 분명히 떨어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 리포트든, 언론 보도든 뚜렷한 오류는 없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2월 셋째 주(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8% 떨어졌다. 지난주(-0.05%)와 비교하면 0.03%포인트 더 하락했고 벌써 6주째 하락세다. 서울 집값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건 1년 2개월 만이다.
하지만 최근 약 1년간의 집값 상승률과 하락률을 비교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무섭게 올랐던 것에 비해 하락폭이 미미하다는 얘기다. 실제 2017년 정부의 8·2 부동산대책 이후 서울 집값은 한 달 동안 반짝 떨어졌지만 이후 1년 넘게 상승세를 지속했다. 2017년 서울 집값은 9월 둘째 주부터 올해 11월 초까지 1년 3개월 동안 9.20% 올랐다. 감정원 통계기준 서울 집값 평균이 7억 2035만 원(10월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0.08% 하락했다고 해도 57만 6280원에 불과하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9·13 부동산대책의 효과가 시장에 반영된 건 올해 11월부터라고 보면 된다. 강남 강북 가릴 것 없이 집값이 많게는 2~3배가량 오른 지역이 대부분인데 최근 몇백, 몇천만 원 떨어진 걸로 수요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 리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부동산 시장에선 강남 4구(서초·강남·송파·강동구)가 서울 집값 하락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통계 착시 효과’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국내 부동산 시장은 보통 재건축 단지가 가격 흐름을 이끌고 일반 아파트들이 그 뒤를 따르는데, 최근 재건축 단지들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전체 하락세를 이끌고 있다는 얘기다. 강남 4구는 12월 셋째 주 기준 0.23% 떨어졌다. 둘째 주 -0.14%보다 확대된 수치다. 한 강남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 최근 호가가 2억 정도 내린 매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남을 중심으로 한 집값 하락세를 전체 주택시장 흐름으로 보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강남 신축 아파트나 다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84㎡는 22억~23억 원 수준으로, 지난 8월 가격과 큰 변동이 없다는 게 이 지역 공인중개소 관계자들의 말이다. 강남 11개 구 집값은 0.11% 떨어졌지만, 강북 14개 구는 0.05% 떨어지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부동산PB는 “재건축 아파트 중심의 하락세는 정부의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세금 강화 움직임에 부담을 느낀 일부 매물로 보인다. 호가를 높게 부르다가 급매물로 내놓으면서 다소 낮춘 게 시장에 반영된 것”이라며 “호가를 내린 매물들이 더 쌓이고, 그에 따라 호가가 더 내려간 매물이 나오면 확실한 하락세로 볼 수 있는데, 아직까지 그런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집값이 오르는 과정에서도 한두 달 정도 일시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집값은 물론 최근 전세 가격 역시 함께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앞으로 하락세는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의 대출 규제부터 금리 인상은 물론, 최근 확정된 3기 신도시를 통한 주택 공급도 이뤄질 예정이라 집값이 ‘안정적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다른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국내 부동산 시장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 원리로만 설명할 수 없다. 투자가 활발하면 거래량이 늘고 가격도 오른다. 이 분위기에 ‘가격이 더 오를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을 느낀 실수요자들이 추가로 집을 사려고 하면서 시장 전체가 과열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에 공급계획까지 보조를 맞추고 있어 투기는커녕 투자도 쉽게 고개를 들지 못할 전망이다. 하락세가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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