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번 국민연금 4차 개편 취지는 현행 제도의 근본적인 모순 해결이다. 1986년 최초 설계 당시 저출산·고령화라는 ‘치명적인 변수’가 반영되지 않아, 가입자 모두가 내는 것보다 받아가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기금이 바닥나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없게 되는 시기가 오는 2057년으로 빠르게 앞당겨지면서,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로 했다.
이번 개편은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시행하는 재정 재계산이다. 그동안 달라진 환경과 변수를 반영해 국민연금법을 새로 고치는 작업인데, 이번 재계산을 앞두고 제도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란 공감대가 커졌던 만큼 ‘개혁’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변화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내놓은 국민연금 개편안은 기대와 다르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총 4가지 방안이 담긴 개편안이 ‘아무것도 안 하거나’ 오히려 ‘더 받는’ 쪽으로 구성돼서다. 정부가 넓은 범위의 선택지를 제시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고, 연금 도입 목표인 노후소득 보장을 앞세운 만큼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지만, 앞으로 국회가 정부로부터 떠안은 ‘사지선다’ 문제를 풀어야 할 모양새인 데다, 선택에 따른 결과는 미래세대에게 ‘폭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 아무것도 안 하거나, 더 내고 더 받거나
국민연금의 기본 구조는 ‘내는 돈’을 의미하는 보험료와 가입자가 향후 ‘받는 돈’을 의미하는 연금급여율(소득대체율, 국민연금 가입자의 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로 구성된다. 모두 소득이 기준이다. 정해진 보험료율에 따라 월급에서 보험료를 내고, 나중에 65세가 지나면 급여율에 따라 연금을 매달 받게 된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개편방안은 △ 1안 현행 유지 △ 2안 기초연금 강화 △ 3·4안 노후소득 보장 강화 등 4가지다. 1안을 제외하면 모두 지금보다 ‘더 내고 더 받는’ 안이다. 세금을 더 걷어 기초연금을 올릴지(2안), 보험료를 더 받아서 국민연금 급여액을 늘릴지(3·4안)에 대한 차이다.
구체적으로 1안은 2021년 기초연금을 30만 원으로 올리고 현행 보험료율 9%와 연금급여율 40%를 그대로 둔다. 2안은 1안처럼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연금급여율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2022년 이후부터 기초연금을 40만 원으로 인상한다. 이에 따라 월 101만 7000원의 국민연금을 받는다. 4개 안 중에 노후소득 보장 수준이 가장 높다.
3안과 4안은 지금보다 돈을 조금 더 내고 연금도 더 받는 방안이다. 기초연금은 2021년 30만 원으로 인상, 연금급여율은 각각 45~50%로 상향 조정, 보험료율은 12~13%까지 3~4%포인트 올린다. 이에 따라 월 91만 9000원에서 97만 1000원의 노후소득이 보장된다.
# 현세대 눈높이에 맞춘 개편안, 미래세대에겐 폭탄
문제는 이번 개편안들이 모두 노후소득 보장 강화에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2057년 기금이 소진된다는 전망에 대한 재정안정 조치는 없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제도위원회)가 보험료율을 높여 재정안정에 초점을 맞춘 권고안을 냈지만, 대통령이 직접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보험료 인상 재검토를 지시하고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주문했다.
실제 개편안에서 3·4안이 연금급여율과 보험료율을 함께 올렸지만, 단순히 연금액을 올리는 데 필요한 비용을 메우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라 재정안정화와는 관계없다. 실제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서 기금 소진시점을 3안 2063년, 4안 2062년으로 계산했다. 현행 제도를 유지할 때보다 5~6년 늦춰질 뿐이다.
여기에 연금급여율이 오르는 건 현세대 눈높이에선 좋을지 몰라도, 미래세대에겐 ‘폭탄’ 수준의 부담이다. 현행 연금급여율 40%로도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40년 후에는 한꺼번에 월급의 25%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비즈한국이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국민연금공단과 국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3안이 확정된 직후 현재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미래세대가 국민연금 제도 유지를 위해 부담해야 할 보험료율은 약 31%, 4안의 경우 약 33%로 오른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개편안 발표에서 ‘기금소진 시점 5년 연장’은 강조했지만 이 수치를 담은 추산 결과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연금급여율과 보험료율을 그대로 두고 기초연금 상한만 올리는 2안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초연금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한다. 국가 재정을 고려하면 세금 인상이 필수적이다. 기초연금을 일괄적으로 40만 원으로 올리면 2019년 11조 5000억 원인 기초연금 예산이 2088년엔 1416조 원으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역시 복지부는 2안이 선택될 경우 필요한 기초연금 재정 추계를 2026년(28조 6000억 원)까지만 공개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1안의 경우엔 제도 개선이라는 숙제가 5년 뒤 다음 정부로 미뤄질 뿐이다.
# 사회적 합의, 국회 논의 과정서 난항 가능성 높아
물론 이번 개편안은 확정안이 아니다. 정부 발표는 국민연금 제도개편 과정의 가장 첫 단계다. 개편안은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거친 후,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받아 12월 말에 국회에 제출된다. 복지부 관계자도 “정부안은 어디까지나 국민이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여러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라며 “앞으로 국회 등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다음 단계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에서 사회적 논의를 거치게 된다. 정부 안팎에선 이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회사와 근로자가 절반씩 보험금을 부담하는 등, 노동시장과 상당히 밀접하게 연결된 제도인데 현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은 연금특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이 일부 수정된 또 다른 개편안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안은 국회 입법 과정을 통해 확정된다. 정부 개편안이든, 앞서의 사회적 합의에서 나온 방안이든 국회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정당별 입장이 반영된 최종 개편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문제는 가장 민감한 문제인 보험료 또는 세금 인상 등 ‘인기 없는’ 방안을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내용인 데다, 오는 2020년에는 총선, 2022년에는 대선 등의 선거 일정이 잡혀 있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하기가 어렵다. 익명을 원한 한 정부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대통령 보고 전에 더불어민주당과도 상의를 했는데, 보험료 올리는 방안은 크게 공감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관계자는 “국민연금 제도 개편은 정답을 찾기보다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라 모두가 동의하는 방안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국회에서 표류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의 국민 눈높이는 물론 미래세대와 형평성을 맞추는 방향으로도 논의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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