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10월까지 누적된 방한 중국인 수는 396만 8000여 명으로 전체 방한 외국인 수 1267만 2000여 명의 30%를 넘어선다. 2017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12.2% 늘어난 수치다.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과 맞물려 면세점 매출은 2018년 올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면세점 매출액은 129억 1736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였던 작년 매출액 128억 348만 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하지만 면세점 업계에서는 수익이 신통치 않다며 자조적인 목소리를 낸다. 방한 관광객도 늘고 면세점 매출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일까?
원인은 면세점 간 경쟁 과열로 인해 ‘송객수수료’가 과다하게 발생하면서 매출이 수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객수수료는 외래 단체관광객의 구매건에 대해 면세점에서 여행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말한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매출의 70~80%를 여전히 중국인이 차지한다. 다만 단체관광객 위주이던 고객의 성격이 사드 이후 구매대행을 하는 보따리상 ‘따이공(代工, 구매대행)’으로 바뀌었다. 고객의 성격이 바뀌면서 송객수수료나 판매목록 등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전했다. 사드 보복 이후 송객수수료는 더 올라간 반면 판매 품목은 저마진 국산 화장품류가 주를 이루게 됐다는 것. 그로 인해 면세점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인 여행객을 전문으로 인솔하는 한 인바운드 여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요즘 면세점 수수료는 2~3일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수시로 변한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즌에는 매일 달라진다. 수수료는 보통 15~20%대 수준. 하지만 2017년에는 40%까지 폭등한 적도 있다. 실제로 중국의 국경절이던 지난 10월 1일에도 37%까지 수수료를 준 면세점도 있었다고 한다.
“위챗으로 연결된 점조직이 있다. 많으면 7~8단계까지 내려간다. 맨 위의 큰 여행사가 면세점에서 수수료를 받아 0.1~0.5%만 갖고 밑으로 내린다. 단계마다 조금씩 수수료를 떼고 밑으로 내리는 방식인데 맨 마지막에는 보따리상이나 개별 관광객이 남는다.”
이를테면 면세점에서 대형 인바운드 여행사 A 사에 20%의 송객수수료를 준다고 가정했을 때, A 여행사는 손님을 모아온 작은 여행사 B, C, D, E 사에 다시 19.5%의 수수료를 주고 손님 명단을 넘겨 받는다. 이 B, C, D, E 여행사는 다시 손님을 모아온 F, G, H, I 라는 중간 연결책에 19%의 수수료를 준다. 이러한 고리가 7~8단계까지 연결되고, 맨 마지막 단계에서 따이공은 15% 정도의 수수료를 받으면서 면세품을 사는 구조다. 면세 가격에 수수료까지 챙기면서 면세품을 사니 중국 현지에서 되팔아도 충분히 남는 장사가 된다.
맨 윗단의 수수료가 40%까지 올라가면 맨 밑단의 수수료도 그만큼 많아진다. 수수료율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아예 대놓고 ‘오늘의 수수료율’을 공개하고 사람을 모으니 수수료율이 높은 쪽으로 사람이 모인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판매량이 워낙 많으니 맨 위 여행사는 수수료를 조금만 떼도 한 번에 수십억이 남는다. 월 조 단위 매출이니 월 수수료도 천억 원 단위다. 구매액에 따라 볼륨인센티브(VI)도 따로 받는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중간 단계는 고객을 모으는 역할만 하면 된다. 중간 단계가 많을수록 고객이 점점 늘어나고 물량이 많을수록 가장 위에서 면세점과 거래하는 여행사는 수수료율을 더 높이거나 볼륨인센티브를 더 챙길 수 있다. 말은 여행사지만 여행업이라기보다는 사람 장사다.”
단계마다 현금으로 즉시 수수료를 지급하다 보니 중간 단계 여행사(가이드)에서는 불법 대부업자들처럼 사무실에 현금을 쌓아놓고 ‘장사’를 한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면세점에서는 2주~한 달 단위로 수수료를 정산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라면 결국 여행사와 따이공은 자연히 수수료율이 높은 면세점으로 가게 되고, 면세점은 수익은 둘째치고 매출을 높이려면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수수료율을 높여 출혈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면세점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면세점 회원사는 26개 정도이지만, 회원사가 아닌 중소면세점까지 합치면 올 10월 기준 전국 면세점은 59개에 달한다. 한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문제는 중소 후발주자들의 과한 송객수수료 경쟁이다. 판매물품이나 마케팅 면에서 모자란 부분을 수수료 높이기로 대응해 전체 시장이 흐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인바운드 여행사의 조선족 직원은 “위챗이나 카카오톡 단톡방을 활용하는데 많으면 2만 명까지 있는 방도 있다. 어느 면세점에서 일주일간 수수료율을 몇 %로 한다고 공지를 띄우면 10분 만에 몇십만 명에게 정보가 퍼지고 수수료율이 높을 때를 골라 한국에 오거나 중국 현지에서 한국에 나와 있는 따이공을 통해 물건을 주문한다”고 전했다.
그는 따이공이 물건을 얼마만큼 살지 중국 현지에서 미리 결정하고 오는 경우보다 한국에 들어온 후 수수료율에 따라 바로 주문을 받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수수료율이 때마다 큰 폭으로 달라지니 생기는 현상이다. 홈쇼핑처럼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며 물건을 보여주고 실시간으로 주문을 받기도 한다.
중국인 관광객들도 대부분 면세점 송객수수료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상황. 따라서 개별 여행객도 면세품을 살 때는 위챗을 통해 모여서 여행사를 끼고 면세 쇼핑을 한 후 여행사로부터 따로 수수료를 챙긴다. 그들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면세점만 수익이 줄어든다.
한 중국인 관광객 전문 가이드는 “한국에 오는 중국인 여행객은 이제 대부분 면세점 수수료에 대해 알고 있다. 제값을 주고 면세품을 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거나 개별로 오는 고급 손님들뿐이다. 하지만 고급 손님은 대부분 유럽이나 미주 쪽으로 가고 한국에 오는 중국인은 대부분 따이공이나 따이공 노릇을 겸하는 저가 개별관광객이다”고 귀띔했다.
20여 년간 여행업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여행사 대표는 “한국의 저가 아웃바운드(국내인의 해외여행) 여행과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여행 시장이 쇼핑이라는 거대한 산업에 볼모로 잡혀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2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는 면세점 특허 기준 완화 계획이 담긴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시내면세점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도록 신규 면세점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는 방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9년 3월까지 관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내년 4월부터 실행할 계획이다. 중소중견면세점 상시 진입 허용안도 검토 중이다. 특정 기업의 편중을 막고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지금도 과당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면세점 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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