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커뮤니티케어는 이전에 나왔던 개념이다. 큰 파급 효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나름대로 작동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현재 커뮤니티케어는 뿌리가 없다.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연구원장)
“의료 공급자들은 정부에 신뢰감이 전혀 없다. 커뮤니티케어에 대응을 해나갈 생각이다.”(성종호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지난 13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형 ACO 모델 및 커뮤니티케어 연구 포럼 창립 심포지엄’은 한마디로 커뮤니티케어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자리였다. 이날 현장을 찾은 의료 관계자들은 정부의 의료 정책에 지속 가능성이 없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커뮤니티케어는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 중심의 돌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노약자를 돌보는 지역 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이다. 방문의료 서비스에 주거지원과 식사배달 등 돌봄 서비스가 합쳐졌다. 내년 6월부터 10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커뮤니티케어가 추진된다. 2026년에는 장애인·아동으로 대상이 확대될 예정이다.
커뮤니티케어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이른바 ‘문재인 케어’와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핵심 의료 공약이다. 지역 주민들의 의료 불균형을 해소할 정책으로 내놓은 대안이기도 하다. 현재 수도권과 지역의 의료 불균형은 심각하다.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8’에 따르면,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비율은 2003년 100:69:50에서 2017년에는 100:66:49로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도시, 그중에서도 특히 서울로 의사가 집중되고 있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수도권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쏠림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며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중증질환 환자들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 커뮤니티케어,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할 수 있을까
의료 관계자들은 커뮤니티케어의 취지는 인정하면서도 수도권과 지방 간 의료복지의 불균형을 바로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정책의 시도 자체는 높게 평가했지만, 커뮤니티케어로 지방에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선을 그었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커뮤니티케어에서 의료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는 점이다. 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은 “커뮤니티케어는 주거, 일자리, 일부 의료 건강 서비스가 결합한 구조라 보건의료 영역이 차지하는 부분이 별로 없다”며 “보건의료 쪽으로만 보면 방문 진료 정도를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커뮤니티케어로는 의료, 주거, 돌봄을 한 군데서 해결하기 어려워 지역 주민들의 불편이 오히려 가중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11월 발표한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에 따르면 의료는 ‘주민건강센터’에서, 요양은 ‘종합재가센터’에서, 복지 서비스는 각 읍면동의 ‘케어안내창구’에서 실시된다. 지영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기준실 실장은 “우리나라 기관들은 협동해본 적이 없다”며 지역사회 기관들의 통합이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복합만성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는 늘어나는데 방문 진료 의사가 이를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유명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질병을 네 개, 다섯 개 이상 가진 환자는 늘어나는데 의료인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환자도 환자를 모르고 의사도 환자를 모르는 상황”이라 말했다. 커뮤니티케어 정책에서 병원과 환자의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하는 케어매니저 또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심포지엄에서는 ‘환자 난민’이 증가할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커뮤니티케어를 통해서도 의료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지방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몰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 한국형 ACO 모델 제시됐지만 “최소 10년은 걸릴 것”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의료 관계자들은 ‘커뮤니티케어’ 대신 ‘한국형 ACO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국 오바마 정부 때 도입된 ACO(책임의료기구·Accountable Care Organization)는 병원과 전문가집단이 연합체를 구성해 환자에게 포괄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방분권형 통합의료시스템을 말한다. ACO에 참여한 병원은 의료의 질과 효율에 따라 정부로부터 성과급을 받는다.
김윤 교수는 “ACO 모델은 대형 종합병원과 나머지 병원들이 경쟁할 수 있는 일종의 무기”라며 “의료기관이 서로 네트워크를 갖추면 환자는 필요한 포괄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ACO에 참여하는 병원들에게는 환자 관리의 책임이 훨씬 넓어진다”고 말했다.
다만 ACO 모델 역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네트워크에 참여한 경험, 환자의 일상생활 관리 등 환자의 건강문제를 포괄적으로 관리해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건강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에 우리나라 병원들이 적응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심포지엄 참석자들도 우리나라에 ACO 모델을 도입하려면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장에서 아우성은 들리는데 정책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이날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쏟아낸 말이다. 커뮤니티케어는 물론 대안으로 제시된 한국형 ACO 모델 또한 한계점이 지적되는 가운데 지역 의료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묘수가 없다는 우려가 쏟아지는 이유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의료 체계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느냐 하면 드릴 말씀이 없다. 정부도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며 “분절적으로 되어 있는 현재 의료 체계를 통합해야 한다는 관점에는 동의한다. (ACO 모델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면 정부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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