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본청(원청)에서 주는 기성금(공사 대금)은 전이랑 비교해서 30% 낮아졌는데, 이미 등 돌린 인력 끌어오려면 임금을 올려줘야 해요. 그 부담은 오롯이 협력업체에 전가되니까 죽어날 판이죠.” 울산에서 조선업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A 대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요즘 국내 조선업계에는 훈풍이 분다. 하지만 하도급 업체 등 일선에선 인력수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국내 ‘빅3’(현대중공업그룹,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를 포함한 조선업체들은 11월 기준 올해 세계 선박 발주(2600만 CGT, 표준화물선환산톤수)의 42%(1090만 CGT)를 따냈다. 한국은 33%(874만 CGT) 수주 성적을 낸 중국과 12%(322만 CGT)를 차지한 일본을 따돌리고 7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조금씩 회복세를 보인 2017년에 따낸 수주 물량이 풀리고 있지만, 현장에선 인력수급이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조선업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삼성전자 공단이 지어지는 평택을 중심으로 살 곳을 찾아 이미 흩어진 상태이기 때문.
222만 CGT 수주 실적을 기록하며 바닥을 쳤던 2016년에 조선 업계엔 대규모 규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었다. 당시 울산과 거제 지역 조선업 종사자 추이를 살펴보면, 2015년 15만 8042명에서 2017년 9만 1352명으로 줄었다. 이 시기에만 6만 669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조선 산업의 특성상 인력난은 예견된 문제였다. (관련 기사 '일감 빼앗긴 조선소에도 봄은 온다' 조선업 전문가 박종식 인터뷰)
전남 영암에 위치한 대불국가산업단지(대불산단)에서 조선업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B 대표는 “대불산단에 놀던 공장들이 차츰 가동이 되는 중이다. 상반기랑 비교해서 한 20~30% 일감이 늘었지만 인력 구하기가 어렵다. 특히 숙련공이 없다”며 “일당 11만 원 주던 것을 13만~14만 원으로 올려도 잘 안 온다. 본청에서 받는 기성금은 그대로인데 임금이 오르다 보니 본청과 싸우기도 하고, 본청에서 달래느라 보조금을 주기도 한다. 과도기라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경남 거제의 조선업 협력회사 C 대표는 “지금 평택에선 일당 17만~20만 원을 준다. 일감도 2년 정도 있다 보니까 인력들이 다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일선의 하도급업체와 주로 ‘본청’ 역할을 하는 국내 조선 ‘빅3’의 입장엔 온도차가 느껴진다. 빅3는 아직은 인력수급보단 구조조정이 시급한 시기라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회복세를 보이는 건 맞지만 실적은 여전히 예전 수준에 한참 미달하는 상황”이라며 “현대는 여전히 유휴인력이 존재한다. 이 인력들의 거취를 해결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인력수급을 계획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전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2016년 1만 4000여 명에서 올해 9월 기준 1만 300여 명으로 줄였지만 현재도 인력이 많다고 판단한다”며 “매출이 14조 원에서 5조 원으로 반토막 이상으로 줄었다. 2016년에 내놓은 자구안을 계속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인력수급 걱정을 비추면서도 소극적인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애초에 자구안을 보수적으로 잡고 구조조정을 많이 했다. 현재 물량을 감당하기엔 지금 인력은 부족하다는 생각도 있다. 기술자 영속성 문제도 있기 때문에, 현재 4년 만에 50명 내외의 신규채용을 진행 중”이라면서도 “현재 인원이 원래 구조조정 계획보다는 많은 상태다. 인력수급은 윗선의 경영적 판단에 맡겨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본청’과 ‘하청’의 입장차는 조선 업계의 기형적인 구조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현재 울산 같은 경우는 80%는 이른바 ‘물량팀’을 써서 공장을 가동하는 상황이다. 파견회사 같은 인력을 대주는 업체를 쓰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당장 쓸 인력을 확보할 순 있지만 2차, 3차 다단계 하도급 형태가 되면서 숙련 인력을 키우거나 붙잡아두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조선업에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과 정부, 지자체가 협력해 조선 업계의 숙련 인력 확보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울산동구)은 “조선업은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산업이다. 일본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도크(선박 건조장)를 줄이고 인력을 내보냈다. 현재 기술 인력이 부족해 선박 건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리나라도 그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조선업은 4차 산업혁명에도 필요한 산업이다. 정부, 기업, 지자체, 노동조합이 협력체제를 구축해 기술 인력을 지켜야 할 때”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의 수주 1위를 탈환에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기술력이 견인차 노릇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적인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LNG 수요가 증가한 것. 12월 10일 기준 한국은 올해 발주된 LNG 운반선 62척(471만 CGT) 중 53척(451만 CGT)을 수주해 전체 발주량의 95.7%를 차지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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