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송년회 시즌이다. 이맘때가 되면 술자리만 많아지는게 아니라 각종 모임에서 한마디 할 기회도 많아진다. 재치 있는 인사말이나 유머 있는 건배사가 무기가 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그런데 여전히 뻔하고 식상한 인사말과 건배사를 외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그래선지 이맘때면 검색량이 치솟는 단어가 건배사, 인사말 등이라고 한다. 평소 유머 감각이 있고 위트 넘치는 사람이라면 걱정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로선 얼마나 걱정스러웠으면 인터넷에서 검색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건배사나 인사말은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상황에 집중해서 정해야 한다. 아무 좋은 말이나 명언 늘어놓듯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건배사는 겨우 10초다. 인사말은 겨우 1분이다. 이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재치 있는 메시지를 찾는 게 숙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자. 무슨 개그맨이 되자는 게 절대 아니다. 세련된 재치는 폭소를 유발하는 게 아니라, 미소를 머금게 하는 걸로도 충분하다. 결국 평소 유머 감각을 길러두는 게 필요한 셈인데, 많이 해본 사람들이 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아주 흥미로웠다. 추도 연설에서 유머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이 유머를 아주 즐겼던 사람인지라 이날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하는 이들 역시 고인에 대한 찬사와 애도와 함께 유머를 담아 추모객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이건 미국의 장례식 문화기도 하다. 추도사를 하는 지인들이 고인과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씩 소개하며 추모하기 때문이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4명이 추도사를 했다. 역사학자이자 부시의 자서전을 집필한 존 미첨은 고인이 2차 세계대전에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한 우리의 방패였다는 얘기와 함께 “고인은 선거유세 때 한 백화점에서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다 마네킹과도 악수했다”라고 얘기하며 웃게 만들었다. 브라이언 멀로니 캐나다 전 총리는 나토 정상회담 참석 당시 부시가 “방금 나는 국제관계의 기본 원칙을 비로소 깨달았네. 작은 나라일수록 연설이 길다는 사실 말이야”라고 말한 일을 전해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앨런 심슨 전 상원의원은 “걱정들 마세요. 조지가 10분 안에 끝내라고 했으니까”라는 말로 추도사를 시작했다.
상주인 조지 W. 부시도 아버지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더니 “모든 것에서 완벽했던 아버지가 골프 쇼트게임과 춤 실력은 형편없었다. 브로콜리를 못 먹는 식성은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됐다”면서 추모객을 웃게 만들었다.
물론 미국 문화가 우리와 달라서 장례식장에서 웃음과 농담이 오가는 게 우리에겐 낯설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린 장례식장뿐 아니라 평소에도 웃음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회의에서 함께 농담하고 웃는 팀이 더 우수한 성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와튼 스쿨이나 런던 비즈니스스쿨 등 유명 MBA에서 이런 유의 연구 결과가 종종 나오는 건, 그만큼 웃음은 업무에도 긍정적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선 상사의 유머가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와 번아웃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리더가 유머가 있을수록 직원들과 관계가 좋아지고, 이것이 조직의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번아웃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뭐든 웃기려 드는 상사는 없길 바란다. 유머는 양념이다. 양념은 식재료의 맛을 해쳐선 안 된다. 과유불급이다. 그리고 ‘아재개그’는 정말 아재들끼리만 술 마실 때 써야 한다. 유머를 억지로 짜내는 느낌이 아재개그다. 맨정신에 아재가 아닌 이들이 듣기엔 참 곤혹스럽다.
부시 전 대통령 장례식의 추도사를 보면서 우리의 송년회 인사말과 건배사를 떠올렸다. 장례식이라는 훨씬 더 무거운 자리에서도 미소 짓게 만드는데, 왜 우린 송년회라는 즐겁고 유쾌한 자리에서도 쉽게 웃게 만들지 못하는 걸까? 부디 올해 송년회에는 좀 더 세련되고 재치 있는 한마디로 좌중을 좀더 행복하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위트와 유머, 이것도 당신의 ‘클라스’를 보여준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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