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 최대 무허가 판자촌인 강남구 구룡마을이 곧 개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강남구청이 구체적인 ‘사업실시계획’을 검토 중인데, 서울시가 이 계획을 인가하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서 착공에 들어간다. 최종 인가는 이달이나 내년 1월쯤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눈앞에 닥친 개발 소식을 구룡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지난 6일 구룡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만났다.
“엄마, 나도 집 같은 집이 있으면 좋겠어.” 박미순 씨(가명)는 얼마 전 친구 집에 다녀온 초등학생 아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박 씨 가족 4명은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의 6평 남짓한 판잣집에 산다. 아이는 자신의 집이 친구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매일 학교가 끝나도 바로 집으로 향하지 못한다.
박 씨 남편은 1997년 IMF 금융위기로 직장을 잃었다. 박 씨와 남편은 이후 집을 찾아 구룡마을 판자촌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현재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마을 개발 소식에 대해 박 씨는 “아무리 천막집이라도 내 집이잖아요. 개발되더라도 내 집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환기가 안 돼서 집이 곰팡이 천지예요. ‘락스’ 넣고 빨래해도 옷에서 퀴퀴한 냄새가 납니다. 여긴 건강했던 사람도 다 병에 걸려요.”
판잣집에서 30여 년을 살았다는 김미옥 씨(가명·73)가 ‘살 만하냐’는 질문에 한 답이다. 김 씨의 마지막 직장은 이곳에 오기 직전 다녔던 보험사. 지병인 허리 디스크가 악화해 회사를 그만뒀다. 벌이가 없어진 그는 지인이 살던 지금의 판잣집으로 이사 왔다. 현재 김 씨 한 달 수입은 45만 원. 국민연금 수령액 20만 원과 기초연금 25만 원이 전부다.
김 씨는 “개발되면 임대주택을 준다는데, 임대료에 관리비까지 합치면 한 달에 적어도 40만 원은 들 것이다. 강제로 가라 그러면 가겠지만, 돈 내고 살긴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여기선 겨울 내 연탄 500장을 떼도 봉사단체에서 연탄을 주니 사는 거다. 먹는 건 하루 한 끼나 차려 먹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6일, 서울 최대 판자촌으로 불리는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만난 주민 얼굴엔 시름이 가득했다. ‘개포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 시행계획’ 승인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
현재 강남구청은 도시개발사업 개발계획을 구체화한 ‘사업실시계획’을 검토 중이다. 강남구청이 검토한 실시계획을 서울시가 인가하면, 시행사인 SH공사는 거주민과 토지주에게 이주·보상대책을 알린 뒤 착공에 나선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지난 6일 “SH공사에서 올라온 실시계획을 검토 중이다. 확정된 건 없지만 12월이나 내년 1월쯤 (최종 인가를) 예상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거주민 이주·보상대책이다. 현행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에 따르면 사업시행자는 공익사업 시행으로 주거용 건축물을 제공함에 따라 생활의 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자(이주대책대상자)에게 이주대책을 수립·실시하거나, 이주정착금을 지급해야 한다. 문제는 같은 법 시행령에서 1989년 1월 이전에 건축한 무허가 건축물만 이주대책대상자에 포함되는 것. 구룡마을 주민 가운데 이주대책대상자는 많지 않다.
일단 서울시는 거주민에게 ‘재계약이 가능한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임대 기간이나 임대료, 보증금 등 세부사항은 사업실시계획 인가가 나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7~8개의 구룡마을 거주민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세 단체는 거주민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순자 구룡마을 주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금 집처럼 셋방이 아닌 임대료 없는 ‘내 집’을 달라”며 “서울시는 거주민 처지에 맞게 15, 17, 22평형 아파트를 공사 원가 수준으로 특별 분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항측 사진을 기준으로 이주대책대상자에 포함되는 주택은 40% 수준”이라며 “시행령 적용 기간을 ‘1989년 1월 이전’이 아닌 ‘10년 경과 주택’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룡마을 주거대책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주장하며 구룡마을 초입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청 도시개발팀 관계자는 “‘토지보상법’에 따라 법원에서 1989년 1월 24일 이전에 건축한 무허가 건물로 인정하면, 그 건물 거주민에 한해 특별 분양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다른 거주민 단체인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와 ‘구룡마을자치회’는 ‘임대 후 분양 전환’을 요구한다. 이강일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회장은 “거주민에게 아파트를 5년 임대하고 이후 분양 전환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분양가는 최초 공공분양으로 제공되는 분양가여야 한다”며 “주민들이 라면만 먹고 살 순 없으니 임대료도 적정 수준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영만 구룡마을자치회 회장은 “이곳 거주민 70% 이상이 노인인데 이런 환경에서 주민들이 몇 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2020년 착공 예정이라는데 무엇보다 조속한 개발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임대 후 분양을 하되, 임대 보증금은 2000만 원대, 임대료는 10만 원대가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이조차 예산상의 이유로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앞서의 서울시청 관계자는 “서울시는 지금껏 ‘임대 후 분양’을 한 적이 없다”며 “서울 시내 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을 하면 2만~3만 명이 신청하는데, 임대주택 수요자가 많은 상태에서 ‘임대 후 분양’으로 임대주택을 줄이는 건 쉽지 않다”고 밝혔다.
개포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1989년 이전에 정착한 사람과 이후에 온 사람은 시기가 다르지만 비슷한 처지로 구룡마을에 모였다”며 “서울시와 거주민들이 ‘임대와 특별분양’으로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임대 후 분양’은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16년 12월 서울시는 ‘개포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강남구 개포동 567-1 구룡마을 일대 26만 6304㎡(약 8만 평)에 아파트 2692가구(임대 1107가구)를 건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서울시가 토지를 100% 사용·수용해 개발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이 지역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화재 및 자연재해 취약성 등을 개발 이유로 들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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