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어떤 상품이든 원가를 알면 제값 주고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소비자의 생각보다 상품의 원가가 낮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판매가는 원가에 따라 정해지기도 하지만 수요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아파트는 어떨까. 정부가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항목을 확대하기로 했다. 아파트 가격 거품이 빠지면서 결과적으로 집값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시민단체 주장. 하지만 건설업계는 집값 잡기를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반대에 나섰다.
내년부터 공공택지에 공급되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분양원가 공개 항목이 기존 12개에서 62개로 확대될 예정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했던 경기도와 서울시에 이어 최근 중앙정부도 공개 범위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국토교통부는 분양원가 정보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지난 11월 입법예고했고, 관계기관 협의,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1월 중 시행할 예정이다.
분양원가 정보가 확대되면 건축비, 토목비처럼 두루뭉술하게 공개되던 기존 공사비 항목이 보다 세분화된다. 예컨대 건축비 하나로 표시되던 것도 구체적으로 표시되면서 도배나 도장, 타일 공사비 등까지 알 수 있게 된다. 부동산 시장 일각에선 이를 통해 집값에 낀 거품을 걷어낼 수 있어, 현재보다 분양가가 30%이상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마저 나온다.
# 이해할 수 없는 비싼 분양가는 ‘분쟁의 씨앗’
아파트 가격 거품 논란은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감자다. 최근에도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9월 경기도시공사가 공개한 아파트 분양원가를 분석한 결과 3.3㎡(약 1평)당 평균 4400만 원의 건축비가 부풀려졌다고 밝혔다. 소비자에게 분양한 건축비가 실제 건축비보다 26%가량 더 들어간 셈이다. 전체 가구로 환산하면 아파트별로 적게는 360억 원부터 많게는 771억 원까지 건축비가 차이 났다. 경실련은 “하도급 내역까지 공개되면 그 차이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과 건설사가 아파트 입주가 끝난 이후에도 소송전을 벌이기도 한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단지 주민 40여 명은 최근 한 대형 건설사를 상대로 부당이익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입주 후 입수한 자료를 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장 가격보다 더 비싸게 자재를 구입하거나 공시비가 투입된 사실이 확인된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실제 이 아파트는 비슷한 시기에 분양했던 주변 다른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더 비쌌다. 이들 아파트는 평형이나 시설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서울 강서구의 다른 아파트 단지 주민은 공기업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역시 부당이익금 반환 청구소송이다. 이곳은 공기업이 지은 아파트임에도 주변 민간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비쌌고, 건축비도 시세에 비해 높았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건설사들이 분양원가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이처럼 부당한 이익을 챙긴다고 주장하고 있다.
# ‘영업기밀’ 공개해야하는 건설사
반대로 건설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앞서의 주장들이 만약 사실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일부 건설사의 문제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한 대형건설사 임원은 “이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가격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어 부풀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대부분의 건설사는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더라도 상식 수준에서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가를 공개하더라도 적정 원가를 어떻게 정하느냐가 문제라는 게 건설사들의 주장이다. 원가에는 재료비·노무비·경비 등과 각 건설사들의 영업기밀인 혁신역량까지 포함돼 있는 만큼 ‘딱 떨어지는’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최저가로 맞춘 가격을 기준으로 할지, 업계 평균을 기준으로 할지 등도 명확한 답을 찾기가 어렵다.
최근 분양가에서 차지하는 땅값의 비중이 커 원가공개 자체 실효성이 낮다는 주장도 나온다. 땅값은 재료비, 인건비와 함께 주택 공급에 필요한 세 가지 주요 요소로 꼽힌다. 이 가운데에서도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땅값이라는 게 건설사들의 항변이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은 분양가격의 절반 이상을 땅값이 차지한다. 분양가격 거품 논란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주민들이나 시민단체들이 땅값이나 가치 상승분을 미처 고려하지 못해 오해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분양원가 공개가 소비자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집값 안정을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원가 공개로 인해 가격이 내려간다 해도, 주변 시세와 차이가 생기면서 ‘로또 아파트’ 등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추진됐다가 다시 재추진 되는 정책이라는 점도 건설사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분양원가 공개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아파트 값을 억제하기 위해 공공택지 61개 항목, 민간택지 7개 항목을 공개하도록 했다. 하지만 다음 정부에서 과도한 시장개입 논란 등을 이유로 공공은 12개 항목으로 줄고 민간은 공개가 폐지됐다.
건설업계는 앞서의 내용을 담아 협회 등을 중심으로 국토부와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등에 공식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전달할 예정이다.
# “부동산 정책, 함께 움직일 때 시너지 효과”
분양원가 공개 하나만으로 보면 실효성 논란이 생길 수 있지만, 다른 정책들과 연계하면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반론도 나온다. 국토교통부도 이번 분양원가 공개를 추진하면서 “분양가상한제 등 다른 부동산 정책의 실효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령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난 2006년 분양원가 공개와 후분양제를 동시에 도입했는데,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보다도 범위와 폭이 넓었지만 집값 안정 효과가 있었다. 오 전 시장은 당시 7개 항목이던 분양원가 공개를 61개로 늘렸고, 후분양제의 경우엔 공정률 80%에서 하기로 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후분양제는 공정률 60%다.
당시 후분양제에 따른 은평 뉴타운 분양가는 선분양보다 10%가량 낮아졌고, 분양원가를 공개한 아파트들은 공개되지 않은 경기도의 다른 아파트보다 3.3㎡당 500만 원에서 700만 원가량 낮은 가격에 공급됐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시 정책 때문에 건설사들이 공급을 줄이는 일은 없었다. 최근 건설사들이 공급이 줄어 집값이 되레 오를 것이라고 말하지만 주택 공급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건설사들이 원가공개나 후분양제 등에 부담을 느껴 공급을 줄이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집값이 움직이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분양원가 공개도 하나로 떼보면 미봉책에 불과해보이겠지만, 다른 정책들과 결합해 추진되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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