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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파파' 늘었다지만 육아휴직은 사방이 전쟁터

중소기업선 휴직 내기 어려운 분위기·암묵적 불이익…밖에선 기저귀 갈 곳도 드물어

2018.12.07(Fri) 14:59:07

[비즈한국]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집안일도 너무 많고요. 힘든 부분이 많긴 하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이와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겠어요?”

 

세 살 자녀를 키우는 배봉수 씨(33)는 육아휴직 9개월 차 초보 아빠다. ​교사로 재직 중인 그는 아내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1년의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학교 내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한 경우는 배 씨가 처음이었다. 배 씨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낸 경우는 처음이라 다들 신기하게 바라보고, 학교에서도 만류하는 분위기였지만 용기를 냈다. 육아를 해보니 힘든 것이 많지만 아이에게 부모가 필요한 시기에 함께 있어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11월 기준 남성 육아휴직자는 1만 6132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의 17%를 차지한다. 꽃 박람회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 육아 휴직자 중 남성 17%, 중견·중소에서는 휴직에 눈치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1월 기준 육아휴직자는 9만 1493명, 그 중 남성은 1만 6132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7616명, 2017년 1만 2043명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노동연구원은 11월 ‘노동리뷰’​를 통해 남성 육아휴직자 증가 원인을 ‘아빠육아휴직 보너스제’ 및 ‘첫 3개월 급여인상’ 등 소득 감소 보전조치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에는 ‘라테파파’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한 손에 카페라테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민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를 말한다. 

 

아이 키우는 아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지만 아직 현실에서 체감하는 남성 육아의 벽은 높기만 하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 숫자가 미비하다. 11월 기준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17.6%에 그친다. 아이슬란드, 스웨덴, 포르투갈 등은 육아휴직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이상이며 벨기에, 덴마크, 독일 등도 20%가 넘는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대기업에만 집중돼 있다는 것도 지적되는 문제 중 하나다. 롯데그룹은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있다. 2017년 1월부터 업계 최초로 94개 계열사에 남성 육아 휴직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900명의 남성이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현대백화점, KT&G, SK 등도 남성 육아휴직 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견·중소​ 기업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중견기업에 근무 중인 강 아무개 씨는 올해 초 6개월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유일한 직원이다. 강 씨는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는데 사측에서는 퇴사를 만류하며 ‘대신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해주겠다’고 말해 생각지도 못한 육아휴직을 했다”고 말했다. 

 

남성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이 없다 보니 강 씨가 휴직을 결정하고 난 뒤 팀 내 분위기는 싸늘했다. 강 씨는 “업무량은 같은데 직원이 줄어드는 것이라 팀장 및 팀원들이 싫은 티를 그대로 냈다. 휴직 직전까지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휴직 후 복귀를 해서는 아예 다른 업무에 배치됐다. 그가 휴직을 했던 사이 소속된 팀과 다른 팀이 합쳐져 업무 분장을 새로 하게 됐는데 강 씨의 몫으로 모두가 기피하는 지방 근무를 배정한 것이다. 강 씨는 “복귀 후 담당하던 업무가 달라지고 본사 근무가 아니라 당황스러웠다. 육아휴직 중 딸과 부쩍 가까워져 후회는 없지만 회사의 처우에는 섭섭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남자 화장실 안내판에 있는 기저귀 교환대 표시. 육아 아빠들의 고충 중 하나는 기저귀 교환대를 찾아 다니는 것이다. 사진=박해나 기자

 

# 아빠 육아 현실의 한계는? 기저귀 교환대 찾아 삼만 리  

 

남성이 육아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의견도 많다. 육아를 경험한 아빠들 사이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 겪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보건복지부가 아빠들의 육아 고민과 관련한 온라인 게시물 2만 60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정보 부족으로 겪는 어려움이 35%, 아빠 육아를 위한 인프라 부족이 19%를 차지했다. 

 

대표적인 것은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 부족이다.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남자 화장실이 적다 보니 아이를 데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진땀을 빼는 일이 다반사다. 영유아용 기저귀 교환대는 철도역, 공항 시설 등 도로 휴게시설의 남녀 화장실에만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일정 면적 이상의 시설(문화시설, 종합병원, 공공업무시설 등)의 남녀 화장실에 영유아용 기저귀 교환대를 1개 이상 설치하는 것을 행정자치부에 개선 권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자 화장실에서 기저귀 교환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가는 공원 등에 기저귀 교환대가 없다 보니 육아하는 아빠들은 근처 쇼핑센터로 향한다. 백화점, 마트 등은 고객 편의를 위해 화장실이나 유아휴게실 등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숫자가 부족해 불편함은 여전하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은 총 8개 층(주차장 제외) 중 지하 2층과 4층, 5층 남자화장실에만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돼있다. 15개 층 건물을 사용하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남자 화장실이 단 2개뿐이다. 6층과 12층에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남자화장실이 있지만 안내 표시는 되어있지 않다. 기저귀 교환대를 찾기 위해서는 모든 층의 화장실을 찾아다녀야 한다. 청소 직원조차 “어느 층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본관 기준(총 15개 층) 1개의 남자화장실에만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돼 있다. 같은 건물 내 여자화장실 8곳에 설치돼있는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신관에는 남자화장실 3곳에 설치돼있지만 모두 합쳐도 겨우 4개뿐이다. 롯데그룹은 남성 육아휴직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백화점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의 숫자는 턱없이 적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남자화장실 내 기저귀 교환대를 아예 설치하지 않았으나 조금씩 늘려가는 추세다. 오래된 점포에는 그 숫자가 적은 것이 사실”이라며 “화장실보다는 유아휴게실 사용을 권장하고 있으며 유아휴게실은 백화점 당 1개씩 마련해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기저귀 교환대 의무 설치 관련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일반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의 남성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 설치가 의무화돼 아이를 양육하는 편의가 증진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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