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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빌딩숲 속 대한제국의 슬픈 흔적, 환구단

고종, 제국 선포 후 하늘에 제사 지낸 제단…일제강점기 겪으며 많은 부분 유실

2018.12.05(Wed) 18:38:28

[비즈한국] 현재 방영 중인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은 대한제국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대한제국(1897~1910)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라는 세계 제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을 위해 태어난 제국이었으나, 결국 15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 수명을 다했다. ‘조선 총독부’를 세운 일제는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지금도 대한제국의 흔적은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다.  

 

시청 앞 서울광장. 프라자 호텔을 비롯한 고층 건물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들어선 빌딩숲 사이로 기와를 머리에 인 전통 대문이 보일 듯 말 듯 자리를 잡고 있다. 굵은 기둥에 붉은 대문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지만, 그보다 야트막한 담벼락 중간이 아니라 위압적인 빌딩 사이에 있으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광장 건너편 덕수궁 앞에 있어야 할 것이 잘못 자리 잡은 건가? 대문 왼쪽에 자그마한 안내판에는 ‘환구단 정문’이라고 쓰여 있다.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베이징의 천단을 본떠 지은 환구단은 화강암으로 만든 3층의 제단이었다. 그 옆에 천신의 위패를 모신 황궁우(사진)를 짓고, 주변에는 어재실과 행대청 석고각 등을 만들었다. 환구단은 일제가 없앴다. 사진=중구청 제공

 

# 생존을 위한 제국 선포

 

환구단(圜丘壇) 혹은 원구단(圓丘壇)은 황제(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기에(天圓地方), 둥근(圜, 圓)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물론 아무나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늘의 아들(天子), 즉 황제만이 갖고 있는 특권이었다. 그러니 중화의 모범적인(?) 제후국임을 자처한 조선에는 환구단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던 조선 땅에 처음 환구단이 세워진 것은 1897년,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던 해였다.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를 잃고, 그 자신도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고종은 왕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 넘게 머물며 정사를 보았다. 일국의 국왕이 남의 나라 공사관에서 집무를 했으니 나랏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아관파천 당시 조선의 각종 사업권은 열강의 손으로 하나 둘 넘어갔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풍전등화의 조선은 스스로 제국을 선포했다. 남을 침략하기 위한 제국이 아니라, 제 한 몸을 지키기 위한 제국이었다. 그래도 제국은 제국. 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황제가 있어야 하고, 황제에 오르기 위해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래서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환구단에 올라 하늘에 제국의 탄생을 고했다. 

 

환구단 정문. 한때 시내버스 차고지 입구로 쓰이던 것을 다시 옮겨왔다. 사진=구완회 제공

 

중국의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베이징의 천단을 본떠 지은 환구단은 화강암으로 만든 3층의 제단이었다. 그 옆에는 천신의 위패를 모신 황궁우를 짓고, 주변에는 어재실과 행대청 석고각 등을 만들었다. 이렇듯 나름의 규모를 갖춘 환구단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남별궁이 있던 자리에 지어져 상징적 의미도 더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작 정문 하나만 보이니, 나머지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 대한제국과 함께한 환구단의 운명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환구단의 시련도 시작되었다. 자칫 식민지 백성들의 구심점이 될지도 모르는 국가의 상징을 가만둘 리 없었던 것이다. 일제는 우선 환구단을 없애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지었다. 이 과정에서 어재실과 행대청, 석고각 등도 사라졌다. 환구단의 수난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철도호텔 자리에 들어선 조선호텔이 1960년대에 재건축되면서 그나마 자리를 지키던 정문 또한 사라져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환구단 정문은? 사라진 지 40여 년이 지난 2007년에 발견해 다시 옮겨 온 것이다. 당시 환구단 정문은 성북구 우이동의 한 시내버스 차고지 입구로 쓰이고 있었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 우리 문화재가 어떻게 대접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인 셈이다. 

 

다행히 애초의 환구단 시설 중에 남아 있는 것은 정문만이 아니다. 8각 지붕의 3층 건물이 아름다운 황궁우와 석조대문, 그리고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석고가 아직 본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황제를 모시던 위풍당당함은 잃은 채 이름난 호텔의 정원 장식품처럼 쓸쓸히 남아 있다. 환구단 정문만을 본다면 그 뒤로 황궁우와 석조대문, 석고 등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하리라.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석고가 아직 본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역사가 오랜 도시를 가면, 보통 구시가와 신시가가 나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구시가를 보존하면서도 첨단 기능을 갖춘 신시가를 더해 현대 도시의 역할까지 겸하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올드 시티와 라데팡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은, 옛것들을 없애면서 새것들이 들어섰다. 일제 강점기에는 정치적 의도로, 해방 이후에는 먹고살기 바빠서 그랬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조선의 상징인 경복궁조차 3분의 1이 채 복원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그래도 언젠가는 옛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잊힌 제국의 슬픈 흔적, 환구단도 제 모습을 갖추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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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의 옛 모습(왼쪽)과 지대석과 난간석을 모아 복원한 모습(오른쪽). 사진=한국사진사연구소·중구청 제공

 

여행정보

▲위치: 서울 중구 소공로 106

▲문의: 02-3396-4114(중구 문화관광)

▲관람 시간: 상시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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