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충청남도 천안시 시내버스 기사들이 천안시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사실이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진정서엔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벌금을 물린다는 건 인권침해’라는 주장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11월 29일 천안시가 새천안교통 등 천안시 운수업체 세 곳에 ‘승객에게 인사하지 않으면 12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공문을 보낸 것에 대한 반발로, 지자체와 시내버스 기사들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안녕하세요.” 지난 4일 천안 시내버스에 올라타니 버스 기사가 인사를 건넸다. 천안역 동부광장 정류장에서 백석문화대학교 방면으로 가는 700번이었다. 인사는 승객 세 명에 한 번꼴로 허공에 대고 이뤄졌다. 지난 11월 29일 이후 스피커에 연결된 핸즈프리가 지급됐지만, 인사 소리는 귓등에서 튕길 만큼 작았다.
오전 8시 45분경. 700번 버스는 천안 시내의 번화가인 신세계백화점을 지나면서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가는 대학생들을 가득 태웠다. 순식간에 버스는 만원이 됐다. 불쾌지수가 올라갔지만 상명대, 단국대를 지나 백석문화대에서 대부분 승객이 내릴 때까지 버스 기사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천안이 고향이라는 백석문화대 학생 이 아무개 씨(여·20)는 “천안 버스는 유명하다(악명이 높다). 내가 타는 정류장은 4차선에 있는데, 그냥 지나갈 때가 많다. 특히 뒤로 탈 때 기사들이 혼잣말로 욕을 하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를 겪기도 하고 보기도 했다”며 “가끔 승객들이랑 싸우기도 하는데, 120만 원 벌금 부과 소식 이후에 인사도 하고 좀 수그러든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천안 시내버스 기사들은 SNS(사회적관계망서비스)상에서 불친절하다고 알려져 있다. 천안시 대중교통과 주무관은 “올해 10월 말 기준으로 집계된 민원은 351건이지만 실제론 하루에 전화로만 10건가량 들어온다”며 “버스 기사들을 일일이 교육을 시킬 순 없기에, 친절도 향상을 위해 벌금 부과라는 강경책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 버스 기사 “여건 개선을” vs 천안시 “서비스 교육 부족”
“아니, 인사는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서 해야 하는 것이지 강제로 시킨다고 그게 돼요? 정류장에 멈추면 승객들 안전 때문에 백미러로 출구를 봐야 하거든요. 손님들 내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바로 우리한테 형사소송 들어오고요.”
25년 경력의 버스 기사 A 씨가 열을 올렸다. 그의 동료들도 불만을 터트렸다. 다른 동료의 말이다.
“물론 버스 기사들이 잘못한 것도 있어요. 근데 우린 시간 맞추기 바빠서 빨리 가야 하니까 마음이 급해서 그래요. 사람을 더 뽑아서 차량을 늘려주든가, 노선을 줄여주든가 하면 저희도 여유가 생기죠. 시에선 여건 마련도 안 해주고 벌금만 때리고 있으니, 어휴.”
“마음의 여유를 달라.” 취재 과정에서 만난 버스 기사 6명은 한목소리를 냈다. 1번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들은 하루 ‘10~11바퀴’를 돈다. 종점인 백석농공단지에서 천안아산역을 거쳐 종합터미널을 찍고 시청까지 돌아오는 게 한 바퀴다. 한 바퀴에 주어진 시간은 1시간 20분. 한 번 운행에 두 바퀴를 연속으로 돈다. 이후 45분의 휴식 시간. 하루에 적게는 16시간, 많게는 18시간 일한다.
버스 기사들은 한 바퀴에 배정된 운행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다고 주장한다. A 씨는 “지금 이 코스는 자가용으로 가도 1시간 20분에 맞추기 어렵다. 러시아워에는 절대 안 된다. 기름 넣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3시간 넘게 운전하고 20분도 못 쉴 때도 있다. 밥 먹고 화장실 가기도 빠듯하다”며 “시에서는 운행 시간은 그대로 두고 오히려 노선을 추가하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천안시 대중교통과의 입장은 기사들과 온도차를 보였다.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교육을 위해 현장에 나가서 기사들을 만나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 회사 차원에서 (서비스) 교육을 잘 했어야 하는데, 교육이 잘 안 된 것 같다”며 “기사들이 하는 말을 다 들어선 안 된다. 서울과 경기도 버스 기사보다 처우가 안 좋을 수는 있어도, 충남에선 대우가 나쁜 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후속 대책을 묻자 이 관계자는 “벌금 제도가 당연히 실효성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대책이 필요하진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 민영제의 구조적 문제, 천안시 “결국 돈, 현재로선 뾰족한 수 없어”
또 다른 천안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민영제의 한계점을 짚었다. 천안시의 운수업체는 세 곳이다. 민영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천안시가 강제력을 동원하기가 어렵다. 이 관계자는 “사실 인력 보충을 통해 일일 2교대를 하든가, 배차 간격을 늘려서 기사들 노동 강도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운수업체 사정상 어렵고, 후자는 시민들이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늘기 때문에 어렵다”며 “노선이나 배차 간격을 시와 업체가 협의하기는 하지만 실제 결정권은 업체에 있다”고 답했다.
천안시 인구는 11월 기준 64만 5000여 명. 인구는 꾸준히 증가세를 그리며 대중교통 수요도 덩달아 높아졌지만 공급을 늘리긴 어려운 상황이다. 총 160개 버스 노선 중 수익이 나는 노선은 28개뿐이기 때문이다. 천안시 시내버스업체 새천안교통 관계자는 “천안시는 인구가 많아도 읍·면이 많아 타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운행으론 수익이 나지 않는다. 시 보조금으로 겨우 메우는 상황이라, 노선을 늘릴수록 적자”라고 강조했다.
천안시에서는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큰 효과는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천안시는 지난해 운수업체 세 곳에 총 32대의 버스에 인건비와 기타경비를 제공했다. 사실상 부분적으로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셈이다. 환승손실분과 비수익 노선 보전금을 포함해 지난해 총 256억 원을 지원했다.
앞서의 시청 관계자는 “120만 원 벌금은 사실상 경고에 가깝다. 아직 적발한 건도 없다”며 “결국 돈의 문제다. 준공영제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서 2000억~3000억 원을 끌어올 수도 없다. 사실상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배성민 더불어민주당 천안시의원은 “버스 기사의 의식도 문제지만, 현재 노선이 엉망이라 기사들이 힘든 것도 사실”이라며 “버스 노선 전면 개편이 시급하다. 준공영제는 예산도 많이 들고 먼 이야기이지만, 노선 개편은 당장 시민들의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탰다.
천안=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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