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중복 보험, 기사 갈취, 금감원은 각성하라.”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3일 오후 2시경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 전국에서 모인 대리운전 기사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대리운전보험 정상화(단일화) 촉구 대리운전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석한 대리운전 기사는 100여 명. 비옷을 입은 참가자들은 “대리운전 노동자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1시간 동안 집회를 이어갔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밤새워 일하고 있는 우리 현장의 대리운전 노동자들을 보험 중간업자들이 갈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원은 이를 묵인하고 방조해왔다”며 “보험을 지휘 감독해야 할 업무를 해태하는 금융감독원이야말로 이 땅에서 고쳐져야 할 적폐”라고 지적했다.
대리운전 기사는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대리운전 업체에 가입한다. 대리운전 업체는 소속 기사에게 매월 수수료(이용요금의 약 20%)와 대리운전 프로그램 사용료, 대리운전보험료 등을 받고 고객들의 ‘콜(출발지와 목적지, 전화번호, 이용요금 등 정보)’을 전달한다. 지난 2014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대리운전 실태조사 및 정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대리운전 이용객은 하루 평균 약 47만 9000명. 대리운전 업체는 약 3850개, 대리운전 기사는 약 8만 7000명으로 추정됐다.
현재 대리운전 기사는 총수입의 약 5%를 보험료로 낸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이 지난 3월부터 2개월간 수도권(서울·경기·인천) 대리운전 기사 1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리운전 기사가 대리운전 업체에 내는 보험료는 평균 12만 6000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대리운전 기사의 월평균 총수입은 229만 2000원, 수수료와 보험료, 프로그램 사용료 등의 비용을 제한 월평균 순수입은 174만 9000원이었다.
서울에서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조 서울지역지부 사무국장은 “대리운전으로 하루에 많게는 10만 원, 월 200만~250만 원을 번다”며 “대리운전 업체에 보험료로 12만 원을 내는데 프로그램 사용료, 수수료를 내면 순이익은 160만 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충북 청주에서 일하는 A 씨(51)도 “하루에 끽해야 7만 원, 한 달에 170만~200만 원 버는데 매달 보험료로 10만 원을 낸다”고 토로했다.
현장의 대리운전 기사는 보험료가 비싼 원인을 대리운전 업체와 보험중개업자에게서 찾았다. 김주환 위원장은 “운전기사들이 내는 대리운전 보험료가 보상 범위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며 “보험중개업자와 대리운전 업체들이 중간에서 보험료를 갈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대리운전 업체는 보험료로 10만 원을 가져가는데 실제 보험증권에 명시된 보험료는 6만 원”이라고도 했다.
대리운전 기사는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두 개 이상의 업체에 가입하기도 한다. 이 경우 대리운전 기사는 매번 새로운 대리운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대리운전 업체마다 자사와 계약한 대리운전보험 가입을 요구하기 때문.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조사에 따르면 대리운전 기사는 평균 1.34개의 대리운전보험에 가입했다. 2개 이상의 보험에 가입한 대리운전 기사도 전체의 31.5%에 달했다. 김 위원장은 “손님을 더 받기 위해 대리운전 기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두 개, 세 개의 보험을 든다”고 전했다.
이날 현장의 대리운전 기사는 보험료 폭등 원인 조사와 대리운전보험의 단일화를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2015년부터 금융감독원에 보험료 폭등의 원인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업체나 보험중개업자 등 중간에서 보험료를 착복하는 이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험을 단일화해 대리운전 기사들이 하나의 보험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금융감독원이 대리운전 기사의 보험 데이터를 모아서 대리운전 업체에 연결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보험사, 대리점, 대리운전 업체의 말은 다르다. 대리운전보험 상품을 운용하는 한 보험사 관계자는 “대리운전보험 상품이 세분화됐기 때문에 연도별로 보험료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2015년 이후 대리운전 보험료는 큰 변동이 없었다”고 밝혔다.
업체에 대리운전보험을 중개하는 한 보험대리점 관계자도 “보험사 대리점이 보험료를 더 받고 떼어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주장 탓에 2015년도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한 달 동안 감사를 받았지만 관련 사실은 나오지 않았다”며 “보험료 인하 자구책을 마련하라는 금융감독원 지시 때문에 2016년부터 보험사에서 받는 대리점 설계 수당도 반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전국 150여 개 대리운전 업체가 소속된 한국대리운전업협동조합의 이기복 이사장은 “일부 업체에서 보험료에 관리비를 합산해서 부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마저도 계약서에 명시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대리운전 기사와 작성하는 계약서가 업체마다 천차만별인데,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표준계약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 관계자는 지난 4일 “어제(3일) 접수된 민원을 확인했다. 관련 내용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대리운전 기사의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건 보험개발원인데, (보험 단일화가) 실현 가능한지도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대리운전 기사가 내는 보험료는 보험회사가 대리운전 업체에 부과한 보험료가 아니다. 그곳에는 각종 관리비 등 수많은 금액이 포함돼 있다”며 “감독 당국은 말로만 ‘소비자 보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대리운전보험이 누구를 위해 운용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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