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깜짝 파티와도 같았던 첫눈이 하루 만에 녹으며 다시금 시커먼 아스팔트가 드러났다. 녹아 사라지는 눈을 보며 흥겨웠던 축제가 막을 내린 뒤 무대가 철거되는 모습을 볼 때와 같은 쓸쓸한 감정을 느낀다.
날씨가 추우니 눈이 내리고 날씨가 따뜻해지니 그 눈이 녹는 익숙하고 당연한 풍경을 바라보며 이토록 과한 감상에 젖는 것이 유익한 상황은 아니다. 시커먼 아스팔트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른 것으로 치환할 필요가 있다.
시커먼 쇼콜라 타르트를 사러 가토 드 보야주에 간다.
쇼콜라 타르트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가토다. 흔한 가토를 굳이 만드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다들 하니까. 아니면 이걸 정말 잘 하니까. 가토 드 보야주는 후자였다.
무스크림이니, 젤리니, 다양한 재료가 조합된 가토 드 보야주의 다른 쁘띠가토와는 다르게 쇼콜라 타르트에는 빠뜨 쉬크레(pate sucree, 타르트 반죽) 안에 초콜릿 가나슈, 그리고 그 위에 가벼운 초콜릿 샹티(chantilly, 거품이 나는 생크림)가 올라간 것이 전부다. 오로지 초콜릿의 맛만을 풍부하게 느껴보라는 의미다.
초콜릿 본연의 맛이라면 달콤함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훌륭한 초콜릿에서 당도는 오히려 맛을 망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너무 짜면 재료의 맛이 모두 사라지고 그저 짜기만 하듯 너무 달면 초콜릿의 다양한 향이 모두 묻힌다. 가토 드 보야주의 줄리앙 파바리오는 다른 가토에서도 그러했듯이 한 입 먹는 순간 정답이라고 느껴지는 쇼콜라 타르트를 만들었다.
한 입 베어 물고 흠흠, 코로 숨을 뱉으면 입 안 가득 초콜릿 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익숙한 초콜릿의 향, 달콤함, 그리고 쌉쌀함과 신맛이 얇게 교차한다.
많이 아프면 약도 먹고 주사도 맞듯 과하게 약해진 마음엔 입체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내 귀에 내가 타르트를 씹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를 다른 소리로 바꾸고 싶다.
시커먼 아스팔트를 보고 축축해진 마음을 시커먼 쇼콜라 타르트로 달래고 있자니 블랙 뮤직, 알앤비, 소울 등의 단어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교차한다. 좋은 목소리가 듣고 싶다. 그리고 우연히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몇 주일 동안 푹 빠져 있던 음악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카더가든, Car, the Garden, 차정원 영상=딩고뮤직
스피커에서 카더가든의 은총이 쏟아져 나온다. 왼손에 들고 있는 쇼콜라 타르트처럼 카더가든 또한 성대를 이리저리 누르거나 호흡을 이리저리 돌려대는 기교 없이 편하게 뱉는 호흡에 기가 막힌 소리를 실려 보낸다.
‘카더가든’은 오혁이 지어준 이름이다. 영상=딩고뮤직
때론 초콜릿은 구체적인 맛이나 성분에 대해 생각하는 단계를 건너뛰고 한 입 넣는 순간 곧장 마음을 달래주곤 한다. 카더가든의 음악도 그렇다. 가사나 구성, 메시지에 대해 고민하기에 앞서 이 음악은 스피커에서 출발하여 공기와 고막과 뇌를 건너뛰고 곧바로 영혼으로 전달된다.
블랙뮤직은 뭘까, 알앤비는? 소울은 뭘까. 음악을 듣는 나의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면 카더가든의 음악은 항상 소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영혼으로 바로 꽂히기 때문이다. 카더가든의 음악에 어떤 악기가 어떤 음색으로 쓰이든, 어떠한 스타일로 편곡이 되었든, 어떠한 박자를 갖고 있든 상관없다.
Gimme Love - 카더가든. 영상=네이버 온스테이지
훌륭한 쇼콜라 크렘(crème, 크림의 프랑스식 표현)엔 그저 적절하게 구워진 빠뜨 쉬크레 하나면 충분하다. 카더가든의 음악 또한 그렇다. 좋은 비트 위에 실린 카더가든의 목소리가 오래오래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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