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성내동 주민 몰살하는 청년임대주택 결사반대!”
지난 26일 오전 10시경 서울 강동구 성내동 천호역 인근 ‘역세권 청년주택’ 건설 예정지. 부지 출입문 앞에 일렬로 선 주민 12명이 일제히 구호를 외쳤다. 이날 서울 아침 최저 기온은 2도. 두꺼운 패딩 점퍼와 장갑, 목도리 등을 착용한 주민들은 ‘청년 임대주택 반대’가 적힌 피켓을 들고 두 시간가량 집회를 이어갔다.
‘역세권 청년주택(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은 서울시가 역세권에 임대주택을 지어 청년층에게 공급하는 민간 사업자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민간사업자는 대지면적의 25%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기부채납 하는 대가로 서울시로부터 용도지역 상향, 용적률(대지면적당 건축연면적 비율) 완화, 건설자금 조달 등의 지원을 받는다. 나머지는 민간임대를 줄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민간 사업자로부터 성내동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계획을 접수받았다. 성내동 천호역 인근 옛 ‘서울상운차량공업사’ 부지(5893㎡, 약 1782평)에 990세대가 살 수 있는 지하 7층 지상 37층의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내용이다. 서울시는 주민 공람과 관계기관 협의, 민간임대주택 통합심의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지난 7월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 반발로 규모는 900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지상 32층으로 줄었다.
서울시가 사업계획을 승인하며 발표한 착공 예정일은 지난 10월. 그러나 공사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12월을 일주일 앞둔 지난 26일 비즈한국은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이유를 찾기 위해 성내동 역세권 청년주택 부지를 찾았다.
이미란 ‘성내동 임대주택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60)은 “사업계획을 전해 듣고 2월부터 이곳에서 시위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3번 했는데 주민들이 대부분 노인이라 지금은 월요일 아침에만 (시위를) 한다”라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10월에 짓겠다는 건물을 왜 못 지을까? 상식과 법에 어긋나니까 못 짓는 거다”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이 청년주택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가장 큰 걱정은 임대료다. 청년주택 부지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A 씨는 “인근 주민 대부분이 임대사업을 한다. 아무래도 수요가 그쪽(청년주택)으로 분산되니 월세 떨어질까 걱정하는 것 같다”고 했다. 주민 B 씨(65)도 “이쪽에 임대사업을 하는 주민이 많다. 지금도 공실이 많은데 청년주택이 생기면 집이 아예 안 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란 위원장은 “근방 주택이 모두 수십 년 된 낡은 집이라서 지금도 세가 잘 나가지 않는다”며 “이대로 갈 경우 공실만 가득한 유령 동네가 될 것”이라고 보탰다.
이에 대해 서울시 임대주택과 관계자는 “주민들이 요구하는 필요 시설이나 불편사항을 지속해서 수렴하고 있지만 ‘임대사업에 지장이 있으니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둘째는 지반 침하로 인한 안전 문제다. 청년주택 부지는 인근 주택에서 불과 수십 센티미터 떨어져 있다. 주민들은 지하 7층까지 땅을 파기 때문에 지반이 내려앉거나 건물이 붕괴할 것을 우려했다. 주민 B 씨는 “지하 7층까지 땅을 판다는데 솔직히 집이 무너질까 무섭다”며 “부모님이 여기 산다면 총각은 가만히 있겠나”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다른 주민 C 씨는 “공업사가 있을 때는 소음으로 매일 고생했다. 날아드는 먼지 때문에 옥상에 빨래도 못 널었는데 이제는 코앞에서 땅을 판다고 한다. 우리 집은 무슨 죄인가”라고 했다.
서울시 임대주택과 관계자는 “주민들이 우려하는 지반 침하 등의 위험성을 판단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굴토심의(지질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셋째는 일조권과 조망권이다. 주민들은 지상 32층 규모의 아파트가 앞에 들어설 경우 일조와 조망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했다. 인근 주민 D 씨는 “3층이나 옥상에 나가면 몽촌토성 일대가 다 보였는데 그렇게 큰 건물이 들어오면 아파트 외벽만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임대주택과 관계자는 “임대주택 부지가 주택단지 서쪽에 있어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조망권의 경우 판례상 인공시설물로 인한 조망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성내동 임대주택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역세권 청년주택을 들이는 대신 인근 토지 용도지역을 변경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데 인근에 용도지역이 ‘제3종 일반주거지역’라 5층짜리 건물밖에 지을 수 없다. 건축비 대비 임대료를 계산했을 때 타산이 맞지 않아 건물을 다시 지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는 “임대주택 부지 용도를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바꾼 것처럼 용도 변경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임대주택과 관계자는 “임대주택 부지의 용도 변경은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것이다”며 “부지면적의 25%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건설해 서울시에 제공하는 반대급부로 용도지역 변경을 해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주변 지역주민들도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을 하면서 해당 부지에 25% 정도 공공기여를 하고 여건이 맞는다면 그 부지도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공사 지연과 관련해 서울시 임대주택과 관계자는 “건축 규모가 크기 때문에 굴토심의, 내부안전심의 등 착공 전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며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고 전했다.
성내동 역세권 청년주택 시행사 천호스테이션하우징 관계자는 “아직 시공사도 선정되지 않았다. 올겨울이 지나고 내년쯤 착공 시기를 보고 있다. 완공되는 시기는 그만큼 늦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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