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머니

'광고만 보고 사는 가장 비싼 물건' 아파트 분양제 바뀔까

투기·부실시공 예방 대안으로 선분양 급부상…공정률 60% 후 분양 '실효성' 지적도

2018.11.22(Thu) 15:40:48

[비즈한국] “본보기집(모델하우스)에 설치된 소파에 한번 앉아 보세요. 눈으로 보는 것보다 작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책상, 옷장, 침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구가 작을수록 방이 크게 보이잖아요. 이것도 하나의 예시일 뿐입니다. 구조든, 마감재든 아직 짓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꼼꼼히 판단합니까. 어쩌면 아파트는 살면서 구입하는 가장 비싼 재화이자 전 재산이 될 텐데, 제대로 보고 사는 게 아닌 거죠.” 

 

아파트 선분양에 대한 한 대형 건설사 전직 임원의 말이다. 생필품이든 자동차든 눈으로 직접 보고 비교하며 사는 건 쇼핑의 기본이자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아파트를 살 땐 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일단 분양(구입)한 뒤, 그 분양대금으로 집을 짓는 ‘선분양제’ 탓이다. 한마디로 광고만 보고 선금을 내야만 상품을 만들어준다.

 

40년간 관행처럼 이어져오던 아파트 선분양제가 도마에 올랐다. 선분양이 건설사, 소비자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만큼 후분양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 보지도 않고 전 재산 들여 사는 게 과연 맞을까

 

현행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을 보면 원칙은 후분양(아파트를 짓고 난 이후 분양)이다. 선분양을 하려면 아파트를 짓는 데 필요한 땅을 모두 확보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공적 보증이나 시행사와 건설사 두 곳의 연대보증을 받는 등의 요건을 갖춰야만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적어도 제도는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후분양 방식으로 지어진 아파트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약 40년 동안 선분양이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건설사에게든 소비자에게든 나쁠 게 없다는 논리다. 

 

건설사들에겐 자금 부담이 거의 없다. 선분양을 하면 착공만 해도 계약금을 받을 수 있고, 공사 중간엔 중도금도 받는다. 아파트값을 미리 받은 만큼 공사도 하고 다음 사업 준비도 할 수 있다. 가지고 있던 자금을 투입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빌려 이자를 내면서 공사비를 충당할 필요가 없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물론 다 지어놓고 비싸게 파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을 한번 하면 통상 수백 채를 짓게 된다. 자기 자금이나 은행을 통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기에 요즘처럼 경기가 롤러코스터를 타 변수가 많아지면 지어놓은 아파트를 못 파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모두 건설사가 떠안게 된다”고 설명했다.

 

건설사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의 자금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소비자 입장에선 분양가가 낮아진다는 말이 그간 설득력을 얻어왔다. 한꺼번에 목돈을 내고 집을 사는 것보다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는 2~3년 동안 나눠 내는 게 자금 융통에도 유리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선분양제가 일반화되면서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발견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에서 부실시공으로 적발된 사업장은 총 37건(3만 5831가구)이다. 2016년 8건이었던 부실시공 사업장은 지난해에는 19건으로 대폭 증가했고, 올해도 7월까지 10건이 적발돼 이미 작년의 절반 수준을 넘어서는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대부분 중견·대형 건설사들의 사업장에서 부실시공이 발견됐다. 

 

아파트를 팔아야 하는 건설사나 조합 입장에선 장밋빛으로 미래를 포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시계획은 변수가 많아 선분양 이후 2~3년 뒤 입주할 때 보면 허허벌판이거나, 설명과는 딴판인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 끊이지 않는 건설사와 소비자의 하자 분쟁도 “분양 시점과 결과가 다르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건도 보지 않고 미래가치만으로 집을 사는 만큼 투기성도 강해지는 건 치명적이다. 선분양을 한 뒤 입주 전까지 아파트값이 오르면 그 이익은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되기 때문이다. 분양 때마다 붙는 ‘로또 아파트’라는 별칭도 사실상 선분양의 부작용이다.

 

정부는 후분양제 활성화를 위해 민간 건설사들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건설사들에겐 부담을 낮춰주고, 소비자들은 꼼꼼히 확인할 수 있는 방안들을 검토할 방침이다. 사진=박정훈 기자

 

# 정부, 후분양제 활성화 추진 나섰지만 “​실효성 없다”​ 지적도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부동산 대책을 통해 후분양제 활성화를 추진 중이다. 그동안 정부가  일관성 있게 투기 수요 잡기에 나선 만큼, 이번 작업도 그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 업계에선 정부가 후분양제 활성화에 성공하면 ‘투기 억제 정책’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 시절 직접 후분양제를 추진했던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새롭게 ‘등판’​하면서 앞으로는 더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당시 후분양제는 구체적인 계획안까지 나왔지만 2007년 주택공급물량 축소 우려가 커지면서 한 차례 연기됐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없던 일이 됐다. 

 

최근 정부는 투 트랙으로 시장에 후분양 사업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일단 LH·SH공사 등 공공부문에 후분양 도입을 의무화하고, 동시에 민간 건설사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유인하는 전략이다. 

 

특히 민간 부문에선 한 번에 후분양제로 사업을 하면 건설사는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후분양 개시 시점은 ‘공정률 60%’ 수준으로 정했다. 이는 통상 아파트 골조공사가 끝난 시점인데, 이때부터 분양 모집공고를 내고 입주 예정자를 모을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후분양에 참여하는 업체의 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택도시기금의 융자한도나 금리우대 혜택을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도 추진 중이다. 그 밖에 후분양을 추진하는 민간 건설사에겐 공공택지 공급을 우선적으로 할 계획이다. 

 

그동안 후분양 제도에 미온적이었던 건설사들도 다른 반응을 내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모르쇠로 버틸 이유는 없다”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침은 반갑지만 가장 부담이 큰 자금 관련 방안들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논의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면 준공 분양이 아닌 이상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의 ‘공정률 60% 기준’은 건물의 구조물까지만 완성된 단계라, 결국엔 선분양과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철근이나 시멘트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결국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부분은 집을 다 지어야만 확인할 수 있다. 애매한 기준 탓에 실효성은 없고 부담만 늘어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선분양과 후분양의 장단점을 절충해 대안을 검토 중”이라며 “공정률 60% 시점에 모든 걸 확인하는 건 어렵지만, 본보기집이 아닌 실제 부지에 지은 샘플하우스를 보고 분양을 결정할 수 있다”며 “선분양만 가능하다는 ‘옵션’인 발코니 확장, 시스템 에어컨 설치 등도 이 시점에는 가능하다. 청약 후 잔금 납부까지 1년 정도 시간이 있어 자금 마련에도 여유가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구체적인 방안과 합리적인 민간 건설사 유인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핫클릭]

· 이건희의 5대 신수종 사업 중 '이재용의 미래 플랜'에 남은 건?
· [재벌가 골프장②] '그룹의 품격'을 그린에…한화·CJ·GS
· 양진호 폭행 보도 이틀 후 이지원 대표 전격 교체, 왜?
· 서비스 종료 앞둔 배민찬 '전화 한 통으로 계약 해지' 갑질 논란
· "한진칼 경영권 장악 의도 없다"는 KCGI의 진짜 속내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