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골목의 전쟁] 대량생산시대에 '수제'가 넘쳐나는 이유

희소성 때문에 가격 올라가, 소비수준 보여주는 '과시재'로 작용

2018.11.21(Wed) 10:39:01

[비즈한국] 프랑스의 마지막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는 알루미늄 식기에 애정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연회에서 신분이 높지 않은 사람에겐 금이나 은식기를 사용하게 했다.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나폴레옹 3세가 매우 검소한 인물처럼 보일 것이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까지만 해도 알루미늄이 정련하기가 어려워서 그 어떤 금속보다도 귀한 금속 취급이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알루미늄의 가치가 폭락한 것은 19세기 말, 전기분해법이 개발된 이후다. 전기가 충분히 확보되어 과거보다 매우 손쉽게 알루미늄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알루미늄의 가치는 급락하여 지금처럼 쿠킹포일이나 캔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시장에서의 희귀도가 금과 알루미늄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수제(手製)에 대한 지금의 열광도 그러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공장제가 아니면 너도나도 모두 수제란 타이틀을 붙이는 세상이다. 심지어는 대량생산이 분명해 보이는 제품조차 ‘고급’이란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수제라는 표현을 쓴다. 상당히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대량생산이 일반화된 시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공방 장인이 만든 그릇은 공장제 그릇보다 실용성이 더 떨어짐에도 가격은 높다. 이러한 가격 차이를 만드는 것은 희소성이다. 사진=비즈한국DB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산업혁명 이전에는 모두가 손으로 상품을 생산했다. 이때는 수제라는 표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손으로 만드는데 수제라고 따로 표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산업혁명기에 진입하고 점점 대규모 생산의 체제가 갖춰지면서 사람들의 인식은 변하기 시작한다. 공장에서 일괄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상품이 점점 흔해지면서 공장제가 매력이 없어졌다.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가질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런 획일화된 상품은 소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에도 적합지 않았다. 그때부터 사람의 손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한 경제학자가 바로 소스타인 베블런이었다. 이때 소비자들의 태도는 그가 쓴 ‘유한계급론’에서 드러난다. 공장제에 비해 수제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일단 사람이 생산하다 보니 생산량은 부족하고 당연히 가격은 더 비쌌다. 그래서 수제를 이용한다는 것은 그 정도의 소비를 감당할 구매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소비로 자기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보다 적절한 것이 없다.

 

수제는 또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기에 당연히 불균형과 비대칭, 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손으로 만들었다는 증명으로 여겨졌기에 더 권장된다. 대량생산 이전의 시대에서 장인의 기술력을 판단하는 증거로 그러한 대칭과 균형 등이 우선되었음을 감안하면 이 변화는 알루미늄의 가치만큼이나 급격한 지위 변화라 할 수 있다.

 

이 사례와 정확히 똑같은 현상을 과거에 경험한 적이 있다. 한 그릇 공방에 가서 예쁜 그릇들을 보며 즐거워했는데 그 공방의 그릇들은 하나같이 약간 불완전한 원과 타원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 그릇이 장인의 손에서 빚어낸 것이고, 일반적인 그릇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불완전성이었다. 가격은 공방 장인의 손을 거친 만큼 비쌌다. 그릇 하나가 어지간한 공장제 그릇 세트 가격보다 높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그릇은 활용이 극히 제한된다는 점이었다. 깨지기 쉬운 데다 전자레인지나 오븐에는 돌릴 수 없으니 사실상 일상생활에서 써먹기는 어려웠다.

 

실용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그 그릇의 가치는 없는 수준으로 하락한다. 대량생산한 그릇 세트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공방의 그릇은 가격이 높은 반면 공장제 그릇 세트는 저렴하다. 희소성이 가격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물론 공방 그릇을 소비할 수 있는 수요층은 한정된 반면 공장제 그릇 세트는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유다.

 

수제버거, 수제어묵, 수제돈가스, 수제 반려견간식 등 온갖 제품에 ‘수제’라는 타이틀을 단다. 사진=구글 캡처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매우 쉽게 목격되곤 한다. 어쩌면 대량생산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절하는 대량생산품의 품질이나 실용 때문이 아니라 희소성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수제의 미래와 그 방향이 어디로 흐를지 예상해볼 수 있다. 실용이란 측면에서는 대량생산을 압도할 수 없다. 수제는 희소성을 바탕으로 대량생산이 진입하기 힘든 작은 시장에서 갖고 싶다는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이 대량생산의 역사가 깊은 유럽 등지에서 수제가 확립한 이미지다. 현재 우리 시장에서 난립하는 수제도 이와 같이 장기적으로 자리 잡아갈 것이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식당 차리시게? 정부 지원부터 챙겨보세요
· 서비스 종료 앞둔 배민찬 '전화 한 통으로 계약 해지' 갑질 논란
· [골목의 전쟁] 스티브 잡스가 '혁신가'가 아닌 까닭
· [골목의 전쟁] 한국에서 자영업이 쉽지 않은 까닭
· [골목의 전쟁] 한번 오른 임대료는 왜 내려가지 않을까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