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대인은 이상하리만치 맛있는 음식에 집착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맛없는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면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일단 스마트폰을 들어 폭풍 검색을 한다. 지역이나 음식 이름 뒤에 ‘맛집’을 붙이는 것은 기본. ‘미슐랭’ ‘수요미식회’ ‘백종원’ ‘오빠와함께’ 등을 붙여가며 찾아낸 검증받은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 기어코 직성이 풀린다.
기대만큼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땐 추천한 자들을 욕하면 그만이다. ‘수요미식회 초심 잃었네. 방송이 다 그렇지 뭐….’ 배가 꺼지면 훌훌 털고 다음 맛집을 찾아 떠난다. 여전히 우린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의 입맛이란 수력발전소 전기로 듣는 하이파이 오디오 청음기나 공공도로에서 시속 160km를 밟고 쓰는 자동차 시승기만큼 주관적인 영역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익숙함이 절대미각을 앞선다. 추억은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었던 300원짜리 컵떡볶이의 맛은 그 어떤 세계적인 셰프가 와도 재현할 수 없다. 이쯤 되면 어떤 칼럼에서 배운 대로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다.
‘비즈한국’에서 탐식다반사를 연재하고 있는 푸드 칼럼니스트 이해림이 신간 ‘탐식생활’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도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에게 주입되고 강요된 맛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것이 왜 맛있는지를 알고 먹자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약간의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저자는 2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직접 발로 뛰고, 입으로 씹었다. 독자들은 단지 한 권의 책을 구입해 읽음으로써 맛있음의 이유에 한 걸음 더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책이 많이 팔리면 저자는 그렇게 번 돈으로 더 많이 먹을 것이다. 아마도 돈이 떨어질 때쯤 또 한 권의 책을 낼 것이다. 완벽한 선순환이다. 혹은 먹이사슬이거나.
‘탐식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힌다. 제철음식부터 우리가 늘 접하는 식재료, 주요 외식 메뉴, 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은 없어서 더욱 친숙하다.
355페이지로 이뤄진 책 한 권에서 다룬 주제만 해도 무려 48가지나 된다. 한 주제당 사진과 표지를 빼고 나면 5페이지 남짓에 불과하다. 몇몇 주제들은 책이나 논문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심오한 영역. 하지만 책에서는 딱 우리가 알고 싶고 알아야 할 만큼만 담았다. 그래서 쉽게 배부르지 않고 다음 주제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다. 절묘한 균형감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너희 이건 몰랐지’와 같은 잘난 척이나 ‘근데 너희 이건 알고 먹는 거냐’와 같은 꼰대질이 없어서 좋다. 철저하게 식재료나 음식이 가진 맛의 차이에 대해 취재한 그대로 서술했다. 글이 술술 읽히도록 감칠맛 나는 유머를 조미료처럼 쳐두긴 했다. 하지만 개그 욕심이 과하진 않아서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책 자체의 완성도. 출간 막바지에 바쁘다는 이유로 비즈한국의 ‘탐식다반사’ 연재를 뜸하게 해서 생긴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질 정도다. 강태훈 사진가의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을 비롯해 눈이 편안한 서체, 정갈하고 세련된 레이아웃, 새하얀 책 종이의 빳빳함까지 흠잡을 곳이 없다.
‘탐식생활’은 독자들을 탐식의 세계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다. 더 나은 맛을 탐하도록 함으로써 우리 삶이 더욱 윤택해지도록 도와준다. 비록 살이 좀 찌거나, 엥겔지수가 올라갈지언정 말이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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