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5년 걸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엔딩은 지금도 여운이 남는다.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분)는 목숨을 걸고 마피아 소굴에 침투해서 식사 중이던 마피아 보스와 마주쳤다. 그는 콜롬비아에서 검사로 일하다 마약 카르텔에 의해 아내와 딸이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복수를 위해 시카리오(암살자)로 변신한 상태. 식탁에는 보스와 아내, 어린 아들 2명이 있었다. 보스는 “아이들을 봐서라도…”라고 호소하지만,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보스의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는 마지막으로 보스의 머리에 총을 쏜다.
복수의 상대가 거대한 마약 카르텔 내에, 그것도 보스의 위치에 있기에 사법당국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반면 사법당국에 의해 보스를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있었다면 그는 직접 보복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뒤따른다. 범죄자의 범행에 그에 상응하는 법의 심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흉악한 살인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경남 거제에서는 180cm가 넘는 건장한 20세 청년이 폐지 줍던 50대 여성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30분 가까이 무차별 폭행해 살해했다.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는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의 얼굴과 목을 칼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인은 우울증이 있다면서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정신감정 결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무려 12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엄벌을 촉구하는 청원을 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2일 이혼한 전 부인을 주차장에서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엄마를 살해한 아빠를 사형시켜달라며 딸들이 국민청원을 올렸다.
살인은 인류 역사와 같이하는 범죄다. 모세의 십계명에도, 고조선 8조 금법에도 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살인에 상응하는 법의 심판은 무엇일까. 유족에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이 당장 떠오르지 않을까. 위 8조 금법에도 살인은 ‘즉시 사형에 처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형법에서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이다. 법전에서 사형제도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김영삼 정부 말기 이래 20년이 지나도록 단 한 차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지난 8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 폐지 국제규약’ 가입을 정부에 권고했다. 법원에서도 최근 몇 년간 사형이 확정된 사례를 찾을 수가 없다.
지난 14일 열린 엔씨소프트 사장의 부친을 살해한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장은 1심에서 선고한 무기징역에 반발하며 사형을 요구하는 검찰에, 국제사면위원회의 실질적인 사형폐지국 분류에 대해 법무부가 아무 주장을 하지 않은 현실에서 검찰이 피고인을 사형에 처해달라고 항소까지 하는 것이 올바른 검찰권 행사인지 의문이라면서 비판하기까지 했다.
과연 사형은 이대로 영원히 관 속에 묻혀야 하는 과거의 유물에 불과한 것인가. 현대에는 형벌의 목적으로 범죄자의 교화가 강조되지만, 피해자를 대신해서 공권력이 가해자를 응징한다는 것이 형벌의 기본 토대임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일반인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겁주는 효과도 사형존치론의 주된 근거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5대 강력범죄 접수 및 처리 현황’을 보더라도 2017년 살인사건이 2013년 대비 1087건(56.9%) 증가한 2998건으로 5대 강력범죄 중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살인은 모든 범죄 중 가장 잔혹하며 유족들에게 참혹한 고통을 안겨준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아직은 미비한 실정이다(관련기사 [돈과법] 범죄자 지원보다 피해자 지원이 먼저다).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내지 못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미비한 현실에서,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의 유족으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한 범죄자에 대해 법에 규정되어 있는 사형을 폐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직 검사인 알레한드로는 이미 알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족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그들을 재판에 넘겨도 그에 상응하는 법의 심판이 뒤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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