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 재건축 아파트 당첨자가 발표됐다. 이게 관심을 받을 만한 일인가 싶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시선을 떼기 어렵다. 이 아파트는 서울 강남 노른자위에 있으면서도 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수억 원 낮은, 일명 로또 아파트다. 그렇다고 분양가가 싸거나 부담이 적은 건 아니다. 가장 작은 평형이 10억 원을 훌쩍 넘는데 이를 ‘현금으로만’ 내야 한다. 총 232가구 모집에 모인 경쟁자들은 1만여 명. 서초 우성1차를 재건축한 ‘래미안 리더스원’ 얘기다.
래미안 리더스원의 평균 경쟁률은 41.69 대 1로, 모든 주택형이 1순위에서 마감됐다. 올해 상반기 최고 로또로 불리며 평균 경쟁률 25 대 1을 기록한 ‘디에이치자이(개포주공8 재건축, 지난 3월 분양)’보다 높은 수준이다. 특히 래미안 리더스원의 최고경쟁률은 전용면적 59㎡A 주택형에서 나왔는데, 4가구 모집에 1689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422.25 대 1에 달했다.
래미안 리더스원은 분양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 아파트의 3.3㎡(약 1평)당 평균 분양가는 4489만 원. 전용 59㎡는 12억 원, 전용 84㎡는 17억 원, 전용 114㎡는 19억 원 등이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모든 주택형이 9억 원을 넘는 고가 주택이라 정부 부동산 대책에 따라 건설사로부터 중도금 집단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저렴한 12억 원대 전용 59㎡에 당첨되더라도, 일단 계약금(통상 10%)으로 최소 1억 원대 현금이 있어야 하고 중도금(통상 60%)까지 더하면 현금 8억 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대형의 경우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쳐 15억 원 이상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그 밖에 높은 분양가로 인해 특별공급 대상에서도 제외돼 모든 주택형이 순수 일반 분양이었다는 점, 당첨자를 대상으로 진행될 대대적인 국세청 세무조사 예고된 점도 진입장벽을 높인 요인이다. ‘확실한 자금력’을 갖춘 자산가들만 청약을 고민할 수 있는 ‘넘사벽’ 아파트인 셈이다.
그럼에도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이유에서 관심이 컸다. 올해 서초동에서 거래된 84㎡ 아파트 중 최고가인 19억 9000만 원(서초 푸르지오써밋)이나, 지난 1월 입주를 시작한 ‘래미안 서초에스티지S’의 호가(전용면적 84㎡ 20억 원)보다 저렴하다. 래미안 리더스원에 당첨만 돼도 6억 원에서 8억 원가량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차익만으로 강남을 제외한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한 채는 더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장기적으로 기대 가치도 높다. 가격이 뛰어오를 만한 요인은 다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래미안 리더스원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떠난 강남역 일대에 들어서는 재건축 아파트 단지 5곳 가운데 규모에서 ‘맡형’으로 꼽힌다. 교통, 교육, 편의시설 등 인프라도 모두 강남권이다.
부동산 시장에선 이번 래미안 리더스원 청약 과정과 결과 전반을 주시하고 있다. 확실한 자금력을 갖춘 큰손들의 존재감이 다시 한 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 등의 여파로 지금은 다소 잠잠한 서울 주택시장을 흔들 수 있는 잠재적 요인이라는 평가다.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언제든 시장에 뛰어들어 분위기를 바꿀 여력을 갖췄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래미안 리더스원 청약에 몰린 돈은 약 16조 원으로 추정된다. 주택유형별 분양가격에 실제 청약인원을 곱한 결과다. 분양 시장 관계자들은 여기서 ‘허수’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당첨됐다가 포기하면 5년간 청약이 금지되는 만큼, 대부분의 청약자가 현금 동원 여력이 충분하면서도 실제 계약의지도 확실했다는 설명이다.
한 부동산 연구원은 “이번 래미안 리더스원 청약 결과는 시중 유동자금 1100조 원(한국은행·통계청 집계, 지난 6월)이 부동산에 쏠려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사례”라며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이 언제든지 주택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다. 지속적인 불안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부의 부동산 대책 등으로 시장 열기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지난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용산·여의도 개발계획’ 발표 직후 집값이 폭등했다.
부동산 업계에선 15일 발표된 래미안 리더스원 당첨자들의 가점에서 향후 강남권 청약시장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첨자 가운데 만점자(84점)가 많고 평균 가점이 높아질수록 그다음 강남권 재건축 수요로도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래미안 리더스원의 전용 238㎡, 전용 114㎡ A타입에서 만점이 나왔다. 특히 114㎡ A타입의 청약 경쟁률은 153.38 대 1로, 전용 59㎡(422.25 대 1) 다음으로 높다. 평균 가점은 73.09다. 앞서의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당첨 평균가점은 67.18점이었다.
반대로 현재로선 이 큰손들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른 부동산 연구원은 “증시에서 기관투자자, 외국인 등 큰손들 움직이고 그다음 개미들이 따라가면서 시장 흐름이 결정되는 것처럼 부동산 시장도 비슷하게 움직인다”며 “하지만 자금력을 갖춘 큰손들에게도 지금의 규제나 대출 제한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달 말부터는 정부 방침에 따라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은 기존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청약을 해야 하고, 당첨 물량도 줄어든다”면서도 “부동산 시장의 흐름은 오는 30일 기준금리 인상 여부와 12월 정부가 발표할 공급 대책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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