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취업준비생 이 아무개 씨(26)는 요즘 신세한탄이 늘었다. 공기업 입사 준비를 하면서 서울권 대학생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공기업에서 지역 인재를 우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방대 가점까지 더하니 서울권 대학 졸업자는 취업하지 말라는 것이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씨가 입사지원서를 제출한 곳은 전남 나주에 위치한 한국전력거래소다. 한국전력거래소는 16일까지 지원서를 받고 22일 서류전형 합격자를 발표한다. 이번 채용에서 인재양성형 재입사자, 이전지역 인재, 비수도권 인재 등을 우대한다고 밝혔다.
취준생이 문제 삼는 것은 이전지역 인재와 더불어 비수도권 인재까지 우대사항에 포함되는 부분이다. 해당 공공기관이 위치한 지역의 인재를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이전지역 인재 채용을 통해 이미 지방대 학생들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데, 비수도권 인재에게까지 가점을 주는 방식은 서울과 수도권 대학생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불만이다. 학력, 출신지역 등에 관계없이 실력 위주의 공정한 채용을 한다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력거래소는 이번 공채에서 신입직(대졸 기준) 35명을 선발한다. 그중 장애인·보훈대상자 등 특별채용 인원을 제외하면 채용 인원은 사무직 13명, 기술직 10명이다. 여기에는 이전지역 인재도 포함된다. 23명의 일반 신입직 채용 인원 중 7명은 광주, 전남 지역 소재지 대학 출신자로 채용해야 한다. 이전지역 인재 채용 의무비율(18%)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 인재에 해당되지 않는 채용 인원은 16명뿐이다.
16명의 채용 인원을 두고 벌이는 경쟁에서도 비수도권 인재 우대까지 적용되니 서울과 수도권 학생들의 마음은 더욱 갑갑해진다. 비수도권 인재는 서울, 경기, 인천 지역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역 소재지 대학을 졸업(예정)하거나 재학, 휴학 중인 자로 한정된다. 외국 대학도 제외다. 지방대 출신에게만 가점을 주는 방식이다.
한국전력거래소는 비수도권 인재 우대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전력거래소 관계자는 “비수도권 인재는 서류전형에서만 가점을 준다. 가점폭은 100점 만점에 3점”이라며 “3분기까지는 자소서 90점, 자격증 10점으로 채점했으나 4분기 채용부터는 입사지원서를 성실하게 작성하면 서류 합격 자격을 주는 방식으로 변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기업 및 공공기관 채용에서는 가점의 영향력이 크게 나타난다. 필기시험 등의 변별력이 높지 않아 가점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공기업 및 공공기관 취준생 사이에서는 가점 대상 자격증 취득을 ‘기본 자격’처럼 생각하는 풍토도 생겨났다. 공공기관 채용 상담부스에 가보면 관계자들도 “자격증 취득은 기본”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할 정도다.
공공기관 면접관으로 참가했던 A 씨는 “공기업 및 공공기관 채용에서는 1~2점의 점수로 당락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며 “몇몇 공공기관은 서류전형뿐만 아니라 면접전형에도 가점을 부여하기 때문에 작은 점수라도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가점에 불만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소비자원 등도 비수도권 인재 우대로 ‘역차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비수도권 대학 출신에 서류·필기시험 만점의 3% 가산점을 부여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서류전형에서 충북 지역 대학 출신은 3%, 비수도권 대학 출신은 2%의 가산점을, 한국소비자원도 충북 지역 대학 출신에 5%, 비수도권 대학 출신에 3% 가산점을 부여했다.
공기업 및 공공기관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부 기조에 맞춰 지방 인재에 가점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방 인재 우대 등의 채용 제도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해룡 The HR(더 에이치알) 컨설팅 대표(한국바른채용인증원 부원장)는 “가산점 제도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를 갖고 있으나 능력 중심의 블라인드 채용 관점에서는 역차별이 될 수 있어 일부 학생들은 불만이 있다”며 “정책적으로는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해야 하므로, 블라인드 채용을 중심으로 하되 지역 가산점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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