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빌딩 한 채’는 보통사람들에게 풍요로운 삶의 상징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투자한 건물이 크고 많을수록 수입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월세만 가지고 사는 건물주의 삶을 상상하면 달콤하지만 수십, 수백억 원을 훌쩍 넘는 건물을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냉소 섞인 우스갯소리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런데 한 끼 점심값을 아껴 건물주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리츠(REITs,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다. 빌딩 한 채를 통째로 사는 직접 투자 방식이 아닌, 별도의 투자기구를 이용해 부동산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리츠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데다, 최근 처음으로 1조 원이 넘는 대형 공모 리츠까지 등장하면서 부동산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리츠는 쉽게 말해 부동산 투자회사다. 회사, 즉 리츠가 기관과 일반 투자자 등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아 대형 부동산을 사서 운영하면서 그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한다. 일정한 조건을 갖춘 리츠는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도록 돼 있어 투자 방식도 주식을 사고파는 것과 똑같다. 1만 원, 10만 원 등 소액으로도 대규모 부동산에 간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실물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의 부동산 펀드와는 다르다. 리츠는 부동산 투자회사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이고, 부동산 펀드는 투자자들이 일종의 조합을 만들어 건물을 산다. 또 부동산 펀드는 3~5년 등 만기가 정해져 있고 중간에 환매가 불가능하거나 높은 수수료를 내야하지만, 리츠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만큼 언제든 매매가 가능하고 환매 수수료도 없다. 하나의 자산만 가질 수 있는 부동산 펀드와 달리 리츠는 여러 개 자산을 보유할 수 있는 점도 차이점이다.
# 1조 원대 매머드급 리츠 등장 ‘신호탄’
리츠는 그동안 부동산 투자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에서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국내 리츠가 기형적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일반 투자자들이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공모 리츠는 5곳에 불과한 반면 고액 자산가와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비상장 사모형 리츠는 193곳에 달하는 등 ‘기관투자자의 전유물’로 통했다.
그런데도 최근 리츠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에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부터다. 특히 지난 10월 코스피가 8%가량 떨어지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일부 리츠들의 주가는 약 10% 오르는 등 상승세를 보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리츠 평균 운용 수익률은 7.59%를 기록했다. 특히 리테일·물류 분야에 투자하는 리츠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리테일 리츠의 평균 배당률은 10.22%, 물류 리츠는 7.39%이었다. 주택과 호텔 리츠는 5~6%대였다. 한 리츠운용사 관계자는 “공모 리츠로 좁혀도 연 6~7% 배당이 지급되고, 수익뿐만 아니라 시세 차익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어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모 리츠 시장에 ‘대어’가 나온 점도 시장의 시선을 끈다. ‘한국리테일홈플러스제1호 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홈플러스 리츠)’다. 국내 공모 리츠 가운데 처음으로 조 단위를 넘겼다. 공모 규모는 약 1조 7000억 원. 홈플러스가 보유한 전국 매장 44곳을 기초자산으로 편입해 리츠를 설립하는 방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홈플러스 리츠가 성공할 경우 롯데, 신세계 등 부동산 유동화를 준비 중인 다른 리테일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실제 롯데는 국내외 증권사를 주관사로 선정해 리츠를 추진 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홈플러스 리츠는 내년 2월 상장이 목표”라며 “이 시점 전후로 다른 기업들의 움직임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정부, 건전한 부동산 투자 유도 방침
정부도 시장의 관심만큼 적극적이다. 리츠가 부동산 시장 열기를 가라앉히는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해서다. ‘갈 곳 없는 뭉칫돈’은 최근의 집값 상승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수년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유동성 자금이 1100조 원에 달했는데, 이 돈들의 주요 투자처가 부동산이었다는 얘기다.
특히 주택 공급 확대, 규제 등의 부동산 대책만으로는 이러한 자금을 통제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차라리 건전한 부동산 투자 방식을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투기를 하거나 거액의 빚을 내 무리하게 투자하는 방식보다 소액으로도 자산배분 효과를 낼 수 있는 리츠를 활성화하자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투자자들이 리츠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직접 투자나 부동산 펀드보다 더 낫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올해 들어 큰 관심을 받은 일부 리츠들 덕에 장밋빛 전망이 나오지만 뜯어보면 신한금융, 홈플러스 등 친숙한 ‘브랜드’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시선을 끌었다. 시장 신뢰도가 높은 업체들 위주의 리츠가 나오지 않는다면 대중화가 쉽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팔은 걷어붙였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아직까지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가계부채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리츠 공모 활성화 방침을 밝히고 올해 9월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11월 중순께로 미뤄졌다. 상장 리츠에 대한 규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리츠 인가는 국토부, 상장 심사는 한국거래소와 금융위원회가 맡는 절차에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올해를 넘기지 않도록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핫클릭]
·
[CEO 뉴페이스] '구광모식 개혁 신호탄' 신학철 LG화학 대표
· [클라스업]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 눈물 흘리는 중년남자들
·
[홍춘욱 경제팩트] 아마존이 미국 물가에 미치는 영향
·
[CEO 뉴페이스] '파워 업'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내정자
·
[리얼 실리콘밸리] 아마존이 부동산 양극화를 조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