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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스티브 잡스가 '혁신가'가 아닌 까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혁신적인 '이미지'…완전히 새로우면 거부감

2018.11.13(Tue) 15:56:57

[비즈한국] 사람들은 혁신이란 단어를 매우 좋아한다. 경영에 관련된 이야기 치고 혁신이란 주제가 나오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혁신이란 것이 이루기 어렵다는 얘기다. 어쩌면 이루기 어려운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이 입으로는 혁신을 좋은 것이라고 할지 모르나 실제 선택은 그렇지 않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이 쓴 ‘생각에 관한 생각’에 따르면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매우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다. 아무런 뜻도 없는 임의의 단어들을 횟수를 달리하여 보여줬을 때, 사람들은 1~2회 나온 단어들보다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 단어들을 매우 긍정적으로 여겼다. 

 

익숙함의 정도가 선호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리처드 세일러의 ‘넛지’에서도 거론된다. 과거에 본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라고 이들은 이야기한다. 이를 뒤집어 이야기하면,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엔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끼며 부정적으로 여긴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스티브 잡스는 종종 21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이미 나왔으나 덜 알려진 기술을 재활용해 성공했다. 사진=비즈한국DB

 

실제로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철저히 배척한다는 증거는 수없이 많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키보드는 쿼티(QWERTY) 자판이다. 1867년에 개발된 이 자판 이후 입력방식의 효율을 개선한 ‘더 좋은’ 자판들이 나왔음에도 단순히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신형 자판들은 도태되고 쿼티는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데릭 톰슨이 쓴 ‘히트 메이커스’에서는 더욱 극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현재 인상파 하면 대표적으로 꼽히는 화가들은 르누아르, 모네, 드가, 세잔, 마네, 시슬레, 피사로 7인이다. 이 7인이 인상파의 대표 화가로 꼽히는 것은, 인상파 화가이자 이들과 친분이 있었던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평소 사들인 친구들의 작품을 자신이 사망하면서 프랑스 뤽상부르 박물관에 기부하며 전시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술평론가들과 엘리트층은 인상파 작품을 예술로도 인정하지 않던 상황이었기에 이러한 요청은 당대에 큰 논란거리를 만들며 이 인상파 7인의 이름은 연일 언론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렇다고 이 7인의 인상파 화가가 당시 수많은 다른 인상파 화가들보다 예술적으로 더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결국 사람들은 그러한 논란 때문에 궁금해서라도 이들의 작품이 걸리자 찾게 되었고 그로 인해 유명세를 얻었다는 것이다.

 

현재 21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 하면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으로 꼽히며, 애플은 한때 혁신의 상징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선보인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혁신이 아니며, 이미 있었으나 덜 알려진 기술과 방식을 재활용했다는 것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미 잡스 생전부터 혁신이 빠져 있다는 비판을 계속 받았지만 애플은 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람들이 혁신과 새로움을 좋아하는 듯 보이는 것은 실제로 혁신과 새로움이 좋다기보다는 자신은 구태의연한 사람이 아닌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소비자들에게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제공했다가는 엄청난 반발과 거부감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품과 서비스를 대할 때 그 가치를 평가하고 가격과 비교한다. 그런데 가치는 단독적인 것이 아니라 비교를 통해서 성립이 가능한 것이라 비교할 대상이 많아야 가치평가가 가능하다. 익숙한 상품과 서비스는 이미 축적된 비교 대상이 많기에 가치를 비교적 쉽게 가려낼 수 있지만,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는 그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다. 아예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자신감과 패기 넘치는 혁신가들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가 힘들다. 실제 성공은 첨단에 서 있는 사람보다는, 익숙함에 기반하면서도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는 이미지를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이 거둘 가능성이 높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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