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예전에 홍콩에서 유통업을 하는 지인이 제조를 해보라며 브로슈어를 보내준 적이 있다. 그 책자에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아주 예쁜 오디오가 몇 개 소개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10만 원 정도의 가격표가 붙은 제품이 특히 예뻤다.
이 오디오를 100개 이상 주문하면 중국 선전(深圳)에 있는 공장에서 원하는 상표를 붙여 생산해준다고 했다. 유닛이나 색상, 일부 디자인도 변경 가능하다. 1000만 원 정도면 제조사의 대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주문 수량이 늘어나면 할인율은 커진다.
이런 위탁생산을 EMS(Electrical Manufacturing Service)라고 하는데 단순 제조는 물론이고 디자인, 설계, 테스트, 심지어 배송까지 모든 제조 서비스를 턴키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EMS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중국에 수도 없이 많다. 아이폰 생산으로 유명한 폭스콘도 이런 EMS 서비스를 제공한다.
재미있는 것은 1년 정도 지난 후에 국내의 큰 오디오 회사가 그때 본 그 예쁜 오디오를 자신의 브랜드로 붙여 팔고 있었다. 내가 할 걸 그랬다. 국내 블루투스 스피커나 소형 오디오 중 많은 수가 중국이 만든 제품에 자신의 브랜드만 붙여 판다고 보면 된다.
이처럼 제조의 신세계가 펼쳐지는 가운데 가끔은 국내 기술과 열정으로 오디오를 만드는 회사도 있다. 아스텔앤컨과 오렌더, 쿠르베, 에이프릴 뮤직 등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 오디오의 가격은 해외 오디오보다 더 비쌀 정도로 자존심도 강하다.
오늘 소개하는 제품도 이런 자존심 강한 제품이다. 에이원오디오(A1AUDIO)라는 신생 브랜드의 첫 스피커 ‘오로라1’이다. 이 스피커는 요즘 트렌드와 다르게 유선 오디오고 두 덩이로 나눠진 스테레오 타입이다. 블루투스나 무선 기능은 제공하지 않으니 전통적인 오디오에 가깝다. 다만 앰프가 내장된 액티브 스피커라서 스마트폰이나 PC의 오디오잭에 케이블을 꽂기만 하면 바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책상에 올려두는 데스크파이(Desk-Fi) 용도의 스피커지만 처음에는 크기가 무척 커서 놀랐다. 앙증맞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생각하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이런 크기를 북셸프형 스피커(Bookshelf Type Speaker)라고 한다. 책상 위에 올려두기보다는 스탠드에 세워두어 음악 감상용으로 많이 쓴다. 오로라1 역시 책상 위에 올려둬도 되지만 스탠드에 올려 놓고 거실용 스피커로 써도 된다. 활용은 소비자의 몫이다.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다. 이유가 있다. 울림통을 나무로 만들었는데 대나무 원목이다. 일반적으로 30만 원대 스피커는 원목을 쓰기 힘들다. MDF를 쓰거나 플라스틱을 쓴다. 단가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목 스피커가 더 소리가 좋다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은 없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래도 원목은 나뭇결이 아름답고 더 고급스럽다. 뒤틀림도 적다.
후면에는 방열판이 붙어 있다. 일반 스피커는 방열판이 따로 필요 없지만 오로라1은 앰프가 내장된 액티브 스피커이기에 방열판이 있다.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깔끔하다. 원목 특유의 클래식함도 느껴진다.
스피커 측면에는 전원 스위치와 볼륨, 고역, 저역 조절 노브가 있다. 전원 스위치의 저렴한 느낌에서 비로소 30만 원대 스피커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원 스위치는 꼭 바뀌면 좋겠다. 유닛을 보호하는 그릴은 없다. 그릴도 음의 진행을 방해하기 때문에 선명한 음을 추구하는 일부 스피커는 그릴을 제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리를 들어보고는 상당히 놀랐다. 해상력이 좋고 악기의 위치가 정확히 그려진다. 이런 것을 입체감이나 정위감이 좋다고 한다. 정위감이 좋으려면 고역부터 중저역이 굉장히 균일하고 튀는 소리가 없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역은 귀를 현혹시키고 저역은 다른 소리를 묻어버린다. 모든 음역대가 균일하면 음의 미세한 변화나 작은 악기의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고역과 중저역이 분리돼서 들리는 위상차도 잘 잡아냈다.
이런 소리를 내려면 감도가 낮은 밀폐형 스피커에 대용량 앰프를 물려야 한다. 밀폐형 스피커나 대용량 앰프는 대부분 비싸다. 상당히 공들인 튜닝이다. 모든 장르에서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지만 특히 기타 소리나 퍼커션, 드럼 등의 소리가 상당히 좋다. 소위 탱글탱글한 소리가 입체감 있게 들린다. 게다가 고음질 음원으로 들으면 그 진가가 두 배로 드러난다.
오로라1은 작은 볼륨에서도 해상력이 좋다. 따라서 책상에 올려두고 작은 볼륨으로 감상하기에 최적이다. 또 오래 들어도 귀가 덜 피로하다.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장시간 음악 감상 시에는 청력이 저하될 수 있는데 스피커는 상대적으로 덜해 집에서 헤드폰 대신 듣기에도 좋다.
물론 단점도 있다. 중저역이 절제된 느낌이라 드라마틱하고 풍성한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 소위 스테이지라고 하는 무대감이 다소 좁게 느껴진다. 하지만 깔끔하고 청명한 소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가성비 스피커가 될 것이다.
오디오는 참 이상한 카테고리다. 삼성전자(하만카돈 브랜드), 애플(아이팟 브랜드) 같은 회사부터 1인이 만든 회사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브랜드가 경쟁한다. 세계 1위 제조사와 1인이 만든 제품이 동일 선상에서 비교되는 경우는 오디오 외에는 없으리라.
바꿔 말하면 그만큼 오디오에 정답이 없다는 얘기다. 브랜드나 자본력, 아키텍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게 오디오의 세계다. 오디오는 과학 외에도 감성과 취향, 그리고 청취자의 청력 상태 등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의 전기에 따라 오디오의 소리가 달라진다는 원자 단위의 분석가들이 득세할 수 있는 곳이 오디오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디오는 한심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취미의 세계다.
필자 김정철은? ‘더기어’ 편집장. ‘팝코넷’을 창업하고 ‘얼리어답터’ 편집장도 지냈다. IT기기 애호가 사이에서는 기술을 주제로 하는 ‘기즈모 블로그’ 운영자로 더욱 유명하다. 여행에도 관심이 많아 ‘제주도 절대가이드’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만, 돈은 별로 벌지 못했다. 기술에 대한 높은 식견을 위트 있는 필치로 풀어낸다.
김정철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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