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승리”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상원에서 다수당이 되었으니 나쁘지 않은 결과인 듯하다. 자기 편과 남을 확실하게 구분하여 상대를 반드시 꺾어야 성미가 풀리는 그의 이전 행보 때문에 불편해진 이들이 많아졌다. 미국의 저소득 노동자들과 한판 전쟁을 벌여야 할 이민자들이 우선 불안해할 듯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언짢은 일이지만, 그는 이미 북미 핵문제 ‘속도조절론’을 흘리며 여유를 보이고 있다.
그는 부동산 상인에서 일약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우위를 점한 상인의 여유는 자연스레 거래 당사자들을 불안하게 한다. 이제 우리는 숨 고르기를 하며 미국의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할까?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실력과 위치가 이 정도이니 지나치게 앞서 나가지 않아야 할까? 이 문제에 관한 한 문재인 대통령은 확고한 반대자와 지지자를 가지고 있고, 그 중간지대는 크지 않은 듯하다. 반대자의 극소수라도 강렬한 적의를 품으면 위험한데, 적의를 가진 상당수와 대립하며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적어도 북한 문제만큼은 타협할 마음이 없는 이들의 수가 상당하다. 곧 임기 후반을 맞으면 측근 비리가 터져나올 것이고, 적수들은 그 지점을 파고들 것이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도 금의환향(錦衣還鄕)하기 위해 정치적인 맞수들과 모종의 타협을 해야 하지 않을까?
금의환향하기 위해 여전히 소걸음으로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애초에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는 버려두는 것이 낫다. 트럼프가 위기에 처해야 북핵문제가 더 쉽게 해결된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고, 우방을 대하는 성실한 마음도 아니다. 트럼프 개인이 싫든 좋든, 그의 행정부가 힘을 가진 상황에서 하는 행동만 믿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궁지에 몰려 한 결정을 그는 쉽사리 뒤집을 수 있다. 트럼프는 자서전에서 이미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예전에는 폭력도 스스럼없이 행사했지만 이제는 머리를 쓰는 것이 낫다고 했을 뿐이다.
정치세계에서 금의환향하는 유일한 길은 시작한 일을 마치는 것이다. 일이 끝나지 않았을 때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돌아가면 결국 원하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항우의 운명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방식으로 정적을 제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도(正道)에 오르면 목표에 닿을 때까지 멈추지 말라는 이야기다.
항우가 진나라를 극복했을 때 어떤 이가 “진나라의 수도 관중이 천혜의 요처니 거기 도읍을 정하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항우는 “부귀해진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는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錦衣夜行)과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근거지로 돌아갔고, 관중으로 들어간 유방에게 결국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 항우가 패한 것은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함양을 불태우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기 때문이다. 관중 사람들을 원수로 만들어놓고 불안해서 어떻게 그곳에서 잠을 잘 수 있겠는가. 정도를 벗어난 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든 타향에 있든 다 불안하다.
북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확립은 누가 뭐래도 정치의 최종목표인 자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므로, 바로 정도를 가는 행동이다. 정도를 가다가 돌아서면 천하 지사들의 지지를 잃는다.
삼국시대 조조가 기타 군웅을 압도한 것은 동탁과 대결할 때 눈치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군이 자기 군세를 보존하러 눈치를 보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앞다투어 회군할 때 조조만은 수하를 다 잃어가며 싸웠기에 천하의 기대를 한 몸에 얻었다. 돌아간 이들을 군벌이 되어 하나하나 사라졌지만, 불구덩이로 뛰어든 조조는 기어이 천하를 차지했다.
안분지족의 본뜻 또한 정도를 가라는 당부일 뿐이다. 일단 정도를 갈 때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칠 때, 그 싸움은 명분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니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을 알고 그쳤으면 합니다(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고 말할 때, 그것은 정도를 벗어났음을 꾸짖는 것이었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날 때 용서했던가? 고구려군은 바로 따라잡아 몰아쳤다. 정도를 잃은 데다 투지마저 잃은 적을 고이 고향으로 쉽사리 보내줄 장수는 없다.
지족을 강조한 이는 노자다. 물처럼 낮은 곳에 처하라고 한다. “강과 바다가 능히 백곡의 왕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꺼이 아래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江海所以能为百谷王者, 以其善下之)”는 구절을 예로 든다. 물은 결코 위로 오르려 하지 않으니 자신의 역할을 알고 만족하는(安分知足) 셈이다. 그러나 낮은 곳에 처하려는 물의 의지 자체는 만족을 모른다. 그 의지를 한 번도 꺾지 않고 멈추지 않았기에 계곡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생긴 물길을 노자는 ‘도(道)’라고 불렀다.
밖으로 힘을 떨치자는 것도 아니요 분수를 넘어 싸움을 거는 것도 아니다. 가장 안정된 상태요, 낮은 곳으로, 다시 말해 평화의 바다로 가는데 멈출 필요는 없다.
필자 공원국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수 년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현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 1~11’,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 다수가 있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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