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0월 26일 잠정 폐쇄됐던 보라카이가 다시 문을 열었다. 면적이나 관광 인프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의 유입으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진단과 함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시궁창’ 같다는 비판을 받고 문을 닫은 지 꼭 6개월 만이다. 항공사는 비행기를 다시 띄웠고 여행사도 보라카이로 가는 여행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벌써 보라카이를 다녀온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재개장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린다.
“바다와 해변은 확실히 아름답고 깨끗했어요. 물가에서만 한가롭게 노니는 거라면 문제없죠. 근데 레스토랑이나 클럽, 마사지숍 같은 시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더라구요. 해양스포츠도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고, 밤에도 놀거리가 별로 없었어요.”
재개장하자마자 보라카이에 다녀온 한 여행객은 보라카이의 자연환경이 깨끗해지긴 한 것 같다면서도 먹을 거리, 즐길 거리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여행자는 “화이트비치에 비치체어도 없고 맥주도 마실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현재 보라카이의 주요 해변인 화이트비치에는 파라솔이나 비치체어를 놓을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해변의 바와 클럽도 많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야자수가 대신한다. 해변음주나 바비큐 파티도 안 된다.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도 사용할 수 없다. 비치에 있는 나이트클럽도 영업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다. 밤이면 해변에서 벌어지던 일명 ‘불쇼’ 등의 이벤트도 사라졌다. 자연 그대로의 한적함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전보다 더 좋을 수 있지만, 여행객 취향에 따라서는 다소 심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폐쇄 전엔 보라카이로 가는 한국발 항공편이 하루 10편 정도였다. 필리핀 국적기와 저비용항공사(LCC)를 위주로 김포공항을 비롯해 부산, 인천, 대구 등에서도 운항됐다. 한때 허니문으로 각광받았고, 최근에는 저렴한 경비로 여행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여행지로 꼽혔다. 2018년 1월 한 달 동안 보라카이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4만 8839명으로 보라카이 전체 관광객 중 중국인 관광객과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재개장 후 현재는 세부퍼시픽, 팬퍼시픽항공 등 외항사 3~4편이 운항되고 있지만 승객 점유율은 50% 이하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아직 도로나 정화시설 등의 공사도 다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현지에서 들려온다. 내년 봄이나 되어야 정상적인 여행이 가능할 것 같다”며 보라카이행 항공편의 판매를 걱정했다.
필리핀 관광부 한국지사는 재개장 이후인 10월 28~31일 4일간 한국발 보라카이행 항공기 탑승 인원을 1258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보라카이 패키지 상품 판매가 많은 하나투어 역시 “아직 모객했다고 할 만한 수치가 나타나지 않는다. 현지에 확인해보니 주 도로 공사도 진행 중이고 해양스포츠도 제한적이라고 들었다. 항공편 역시 11월 말부터 서서히 풀린다고 예고됐다. 모객은 12월은 되어야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대부분의 보라카이 여행객이 개별자유여행객(FIT)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수의 여행사들도 아직 적극적으로 모객을 하지 않고 있다. 한 현지 여행사 대표는 “아직 모객이 조심스럽다. 단체 모객을 하더라도 관광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고객들의 불만이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며 모객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구나 현지의 쇼핑센터나 식당 가운데 아직 허가를 받은 곳이 많지 않아 단체 관광객들이 갈 만한 영업장이 많지 않다. 여행사 입장에서 보면 쇼핑이나 옵션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기에 수익을 내기도 좋지 않다.
한 현지 교민은 “필리핀은 일이 착수돼도 한국처럼 기간에 맞게 딱 끝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만만디’ 문화도 있어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공사기간이 연장되는 경우도 흔하다”면서 “더 문제는 정부의 영업 허가를 받지 못한 업장이 많다는 것이다. 호텔과 리조트를 비롯해 식당과 클럽, 바 등 보라카이에 있는 모든 관광 관련 업체는 이번 재개장을 맞아 모두 허가를 새로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까다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필리핀 관광부 한국지사는 10월 25일 현재 157개의 리조트와 호텔(총 객실 수 7308개)이 영업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보라카이로 가는 항공권을 구매해도 호텔 예약 바우처가 있어야 입국이 가능하다. 재개장 이후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호텔을 예약했다면 아예 입국을 못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앞서의 현지 여행사 대표는 “영업을 하는 현지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직 절반도 되지 않기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한국인 이용률이 높은 헤난(Hennan)그룹 계열의 호텔과 리조트가 아직 영업 허가를 받지 못해 한국인이 몰려온다고 해도 문제”라고 현지 교민과 여행사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다. 헤난 리조트의 환경시설 기준이 아직 규정에 못 미치기도 하고 현재 공사가 지연되고 있어서라고도 한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도 거론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보라카이는 제주처럼 특별자치구역이다. 필리핀의 다른 지역과는 별개로 특별 관광정책에 의해 운영된다. 이번에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면서 필리핀 정부가 관광업체에 좀 더 까다로운 자격 기준을 요구하고 있어 허가 과정 자체가 늦어진다는 것이 현지 업체들의 전언이다.
현지 식당 관계자는 “특히 보라카이에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외국인에 대한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식당 등 업장 주인은 물론 종업원과 관광가이드의 자격기준이 복잡해지면서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이 운영하는 영업장들이 영업 허가를 빨리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라카이의 해양스포츠 이용 제한은 서서히 풀려가고 있다. 11월 3일에 무동력 세일링보트가 운행을 시작했고 11월 8일에는 스쿠버다이빙, 11월 15일에는 호핑투어를 비롯해 시워킹 등 대부분의 해양스포츠가 공식적으로 가능해질 예정이다.
하지만 여행 업계 관계자들은 “애초에 6개월이라는 기간을 정해놓고 폐쇄한 것이라 섬의 정화작업이나 관광 인프라 등이 다 마련되기 전인데도 서둘러 문을 연 것 같다. 현지 상인과 주민들도 있으니 무한정 폐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상적인 여행을 하기엔 시기상조다. 내년까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보라카이 입국자 수는 하루 1만 9000여 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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