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래퍼 로직(Logic)의 팬 투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팬과 식사하고,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앨범을 들려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벤트였습니다. 로직 입장에서는 직접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로직은 팬들의 이야기에 감사함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당신의 음악이 저를 구했어요!’라는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자신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동시에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 영향력으로 누군가를 구하려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이 힘을 누군가를 구하는 데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로직은 1990년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신예 래퍼입니다. 아버지는 로직이 어릴 때 가족을 버렸습니다. 로직은 흑인 거주지역에서 백인과 흑인 모두에 인정받지 못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탈출구는 음악이었습니다. 영화 ‘킬빌’에 빠진 그는 킬빌의 음악을 담당했던 힙합 프로듀서 르자(RZA)의 음악을 찾아 들었습니다. 로직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비트와 랩을 쓰며 힙합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로직은 무료 믹스테이프를 꾸준히 발표하며 팬덤을 쌓아 나갔습니다. 첫 앨범을 발표하기 전 이미 투어를 진행했을 정도였죠. 에미넴을 연상시키는 명료한 발음. 흑인도 백인도 아닌 자신의 고뇌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사회적인 가사.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는 도전정신까지. 로직은 순식간에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힙합 레이블 데프잼과 계약하며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스타가 됐고, 스타가 된 후에는 직접 프로듀싱 주도권을 맡으며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려는 욕심을 보여줬습니다.
로직은 세 번째 앨범을 제작하면서 ‘누군가를 구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자살방지센터(National Suicide Prevention Lifeline)와 합작해 자살을 생각하는 이를 위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로직의 ‘1-800-273-8255’.
이 곡의 제목은 ‘1-800-273-8255’입니다. 자살방지센터 전화번호입니다. 힘든 이에게 망설이지 말고 자살방지센터에 도움을 청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가사 또한 희망을 노래합니다. 이 음악은 ‘죽고 싶다’는 외침으로 시작합니다.
I don’t wanna be alive
난 살고 싶지 않아
I just wanna die today
오늘 그냥 죽고 싶어
음악이 진행되면서 가사는 점차 희망적으로 바뀝니다.
I want you to be alive
난 네가 살아있게 하고 싶어
You don’t gotta die today
넌 오늘 죽어선 안 돼
로직의 ‘1-800-273-8255’ MTV VMA 라이브.
이 싱글은 처음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2017년 4월 발매 후 9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 라이브 공연 이후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피처링 아티스트인 칼리드(Khalid)와 알레시아 카라(Alessia Cara)는 물론, 자살방지센터 사람들까지 모아서 진행한 이 공연은 큰 화제가 됐고, 이 곡은 빌보드 3위까지 진입하며 로직의 성공적인 싱글이 되었습니다.
이 곡이 미친 영향도 컸습니다. 곡 발표 후, 자살방지센터 핫라인 번호 사용량이 27% 늘었습니다. VMA 라이브 이후에는 50% 늘었다고 합니다. 자살방지센터 웹페이지 방문자 수도 30~40% 늘어났습니다. 그의 음악 덕에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구한 셈입니다.
‘1-800-273-8255’은 로직의 가장 의미 있는 싱글일 뿐만 아니라 가장 성공적인 싱글이 되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 애써 만든 음악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만든 음악이 가장 성공적인 싱글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네요. 자신의 음악으로 좋은 일을 하려는 최근 힙합 음악의 경향을 보여준 의미 있는 시도, ‘1-800-273-8255’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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